러시아 대선: 메드베데프의 출현
3월 7일 중앙선관위에 의해 공식결과가 발표되면 3개월 후인 5월 7일 메드베데프가 옐친(1, 2대), 푸틴(2, 3대)에 이어 러시아 제 5대 대통령으로 취임할 것이다. 임기 4년 중임이 가능하니 최소한 2012년, 최대한 2016년까지 젊은 메드베데프(43세)가 지구상 최대 영토, 미국과 견주는 핵전력, 에너지자원의 보고를 자랑하는 러시아의 최고 지도자로 군림하게 될 것이다. 러시아는 강력한 대통령중심제로서 대통령은 대내외 정책결정권, 군 최고통수권 등을 소지한다.
선거과정 불공정성을 거론해 온 서방정부나 선거조사단들 조차 메드베데프가 러시아 유권자의 선택이라는 사실을 부정하지 않고 있다. 의당 메드베데프가 당선될 것이라 예측은 하였지만 이토록 높은 투표율 및 지지율을 득할 것이라 생각하지는 못했던 것이다. 미국, 영국, 프랑스, EU 등은 즉각 향후 4년 메드베데프와의 협력적 관계를 기대한다는 성명을 내었다. 서방의 투자자들 역시 메드베데프의 압도적 승리를 환영하는 분위기이다. 이들은 메드베데프를 4명의 후보중 가장 기대에 부합되는 인물로 보아왔다.
사실 쥬가노프나 지리노브스키, 보가노프는 실무경험이 부족하며 서구와의 협력이 어려운 인물들이다. 나아가 투자자들은 러시아 정치 및 경제의 “지속성과 안정성” 측면에서 푸틴 대통령이 지난 12월 ‘단합러시아당’ 전당대회에서 메드베데프 정부하 총리가 될 것이라 약속한 사실에 오히려 고무되어 있다. 유럽회의(Council of Europe) 의회가 파견한 22명 선거참관단 역시 여하한 경우에도 메드베데프가 러시아 유권자의 선택임을 인정하고 있다. 다만 다원적, 경쟁적 선거가 아닌 ‘대통령신임투표’라고 꼬집는 정도에 그쳤다.
메드베데프는 누구인가. 푸틴 대통령과 동향이자 동창으로서 소위 ‘푸틴의 사람’이다. 1965년 레닌그라드(現명칭: 뻬쩨르부르그)에서 출생하여 1987년 레닌그라드 대학 법학부를 졸업하였으며, 1990년 모교에서 민법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1991-1996년, KGB동독지부 활동을 마치고 귀향한 푸틴 밑에서 뻬쩨르부르그 시청의 대외관계위원회 법사를 맡았다. 동시에 1993년부터 1999년까지 뻬쩨르부르그 소재 한 펄프회사의 법률자문을 역임하였다. 그가 소위 모스크바 내 뻬쩨르부르그파로 입성한 것은 1999년 12월 푸틴에 의해 대통령실 차장으로 임명되면서부터이다. 이어 2000년 푸틴의 선거운동본부장, 2000년 가스프롬(국영가스회사) 이사장, 2003년 대통령 비서실장, 마침내 2005년 11월 제1부총리로 임명되어 지난 2년여 경제, 사회 부문 주요 국가프로젝트를 지휘하여 왔다.
지금으로부터 두달 반전, 후보로 지명되기 이전 메드베데프는 역시 푸틴과 동향인이자 푸틴의 KGB동료였던 前국방장관 세르게이 이바노프와 함께 푸틴의 후계자로 나란히 하마평에 올랐었다. 푸틴이 이 두 사람을 공히 제1 부총리직에 앉혀 놓았기 때문이다. 서방은 내심 강경파인 안보전문가 이바노프보다는 보다 온건하며 실용주의적인 법학자, 경영자, 메드베데프를 선호하였다. 대통령직은 메드베데프에게 있어 최초의 민선관직이다. 현행법상 대통령은 다른 직책을 가질 수 없기 때문에 가스프롬 이사장직은 사퇴할 것이다. 가족으로는 부인과 12세의 아들이 있다. 수영과 웨이트를 즐기며 하드-록 팬이라고도 한다.
분명 러시아는 대통령중심제이고 대통령은 막강한 권한을 소지한다. 적어도 향후 4년 메드베데프가 그 권한을 행사하리라 기대하여야 하는데 현재 푸틴 대통령이 차지하고 있는, 그리고 차기정부하 그가 차지할 정치적 위상 때문에 이것이 쉽지 않다. 푸틴 대통령은 재임 8년을 거치면서 정치, 경제 안정화 및 국제무대에서의 러시아 위상 부각을 통해 국부적 존재가 되었다. 임기말 오히려 지지율이 80%를 넘나드는 등 여타 민주국가에서 나타나는 레임덕 현상은 찾아볼 수 없다. 뿐만 아니다. 헌법상 연속 3선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푸틴이 일단 대통령직에서는 물러서지만 약속대로 총리직을 수락할 경우 계속 영향력 있는 인물로 남게 된다. 현행 헌법상 대통령유고시 총리가 이를 대행하는 점도 상기할 수 있다.
또한 2012년 대선에 다시 나올 수도 있다. 이 경우 연속 3선은 아니기 때문에 헌법적 하자는 없다. 그렇게 되면 자신이 심혈을 기울여 유치한 2012년 블라디보스토크 APEC정상회의와 2014년 소치 동계올림픽의 주인 역할을 할 수 있게 된다. 물론 권력의 속성상 취임이후 메드베데프가 더이상 ‘푸틴의 사람’으로 머물지 않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현재로서는 어떠한 정치공학도 가능한데 그것이 오늘날 여타 안정적 민주국가에서 보기 어려운 러시아 정치만의 특수성이다.
한편 대선 직후 메드베데프 스스로 기자회견을 통해 시사한 바와 마찬가지로 여하한 경우에도 차기 정부하 대내외 정책은 지난 8년 푸틴 정부의 노선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단적으로 2001년 9/11사태이후 반테러리즘 차원에서 긴밀했던 서방과의 관계가 지난 3-4년 유럽재래식무기감축 조약을 둘러싼 NATO와의 관계악화, 유럽내 미국의 미사일방어망 구축을 둘러싼 갈등, 코소보 독립에 관한 이견, 러시아를 포함한 독립국가연합(CIS) 국가들의 민주화에 관한 이견 등 급격히 소원해진 것이 사실이지만, 21세기 국가생존에 있어 경제적 국익의 중요성을 메드베데프-푸틴은 경험적으로 잘 인지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예컨대 러시아가 세계 최대 천연가스 매장국이고 제 2대 원유생산국인 것은 사실이지만 지속적인 생산 및 개발을 위해서는 시장과 자본을 필요로 하는 것 역시 사실이다.
우리로서는 여하한 경우에도 러시아와 서방간 제로섬 게임을 전제로 대러정책을 펼치는 愚를 범해서는 안될 것이다. 현재 한-러관계 주요 현안으로는 북핵 6자회담과 다수의 경협사업들이 있다. 특히 아직 우리의 에너지수입원 중 러시아분이 차지하는 규모는 1.3% 정도에 그치고 있고 우랄동쪽 매장추정치나 개발경제성 측면에서 보다 신중해야 할 터이지만 양국간 에너지협력의 잠재력은 높다고 할 것이다. 각별히 메드베데프는 이명박 대통령과 연령차는 크지만 가스프롬 이사장직 경험 등 한러 양국간 “실용적” 공동의 이익을 도모하는 데에는 좋은 상대자가 되리라 기대해 본다.(konas)
정은숙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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