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술수에 휘말리지 말아야
원칙과 우선순위를 확고히 지켜 북한의 어깃장에 의연히 대처해야
지난 며칠 사이에 북한의 행태가 몽니 부리기를 넘어 남북관계 파탄을 결단한 듯한 양상으로 치닫고 있다. 북한은 개성 남북경협 사무소의 남측 요원들을 추방한 데 이어 서해상으로 단거리 미사일을 발사했다. 북한 군사당국은 뜬금없이 NLL을 들고 나와 '유령선'이라 비난하는가 하면 김태영 합참의장 발언을 취소하고 사과하지 않으면 모든 남북대화를 단절하겠다고 위협했다. 더 나아가 조선중앙통신 군사논평원은 그들 식의 선제 타격이 개시되면 불바다 정도가 아니라 모든 것이 잿더미가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노동신문은 이명박 대통령에 대해 처음으로 실명을 거론하며 '역도'라는 패륜적 표현까지 사용했다.
북한의 이런 어깃장을 보는 우리의 심정은 착잡하다. 남측의 새 정부 출범으로 북한이 하기에 따라서는 향후 5년간 좋은 관계를 설정할 수 있는 기회를 맞고 있지만 북한 스스로 이를 차버리고 있다. 또한 2007년 이래 북핵 문제를 보는 부시 행정부의 입장이 매우 유연해진 호기도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 6자회담 8월 시한설이 갈수록 설득력을 얻고 있는데, 현재의 상황이라면 북핵 문제가 8월까지 획기적인 해결의 실마리를 찾기는 난망하다.
북한은 핵 프로그램 신고는 물론 핵 불능화 과정도 거부하겠다는 의도를 내비치고 있다. 결국 북핵 문제는 앞으로 상당기간 소강상태에 빠질 가능성이 커졌고 그에 따라 남북관계도 경색이 불가피해졌다.
북한은 1990년대 초반 이후 고비마다 미사일을 발사하는 등 강수를 두면서 한반도에 긴장을 고조시켰다. 그러면서 위기가 최고조에 이르면 전격 회담을 제의하는 등 긴장을 통한 협상력 제고 수법을 써 왔다. 한국 역대 정부는 위기 끝 북한의 대화 제의에 감지덕지해하면서 끌려 다녔다.
이번 사태도 북한이 남측과 미국을 압박하기 위한 카드라는 것이 지배적인 분석이다.
만일 남측이나 미국이 북한의 위협에 타협하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으면 조만간 북한은 민간단체의 방북 금지, 개성공단 북측 근로자 철수, 군사분계선의 제한적 총격전, NLL 침범 등 충분히 예상 가능한 수순으로 한반도에 긴장을 더욱 고조시킬 것이다. 한반도의 상황은 변하고 있는데 북한의 인식은 변하지 않고 낡은 축음기를 틀 듯이 똑같은 레퍼토리를 되뇌고 있다. 북핵 드라마가 항상 '데자뷰(deja-vu)'인 까닭에 남측 관객들은 물론 국제사회의 관객들도 식상한 지 오래다.
이럴 때 우리 정부는 원칙과 우선순위를 확고히 지켜 북한의 어깃장에 의연히 대처해야 한다. 우리 정부가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따라 과거처럼 북한의 억지에 끌려 다닐 것인지, 아니면 남북관계에서 새로운 대화문화를 정착시킬 수 있을지가 판가름날 것이다. 정부 당국자는 북한의 도발이 이어지더라도 서둘러 당근을 내놓지는 않을 것임을 분명히 했다. 또 다른 당국자는 남북관계의 양적인 팽창보다 바른 방향으로의 발전이 더 중요하다고 언급했다.
정부의 이러한 방향은 근본적으로 옳다. 한국과 미국에 자신을 봐 달라고 심통을 부리는 북한의 술수에 말려 들어서는 안 된다. 앞으로 대북정책의 궤도를 수정하는 과정에서 어느 정도의 남북관계 경색과 진통은 불가피하다. 그것은 잘못된 정책을 바로잡는 과정에서 치러야 할 불가피한 비용이다. 북한 측 조치에 일일이 맞대응할 게 아니라 이번에야말로 바람직한 대화문화를 정착시킨다는 의연한 자세를 견지해야 한다. 우리 정부는 다음 두 가지 원칙을 견지하기 바란다.
첫째, 남북관계의 정상화를 목표로 하라. 남북관계에서 불만이 있다고 상대방 당국자들을 하루아침에 철수하라거나 상대방 국가원수를 '역도'로 지칭하는 것은 지극히 비정상적인 행태다. 남북기본합의서에서 남북관계를 '잠정적 특수관계'라고 규정한 이래 북한의 비상식적인 행태를 특수관계라는 이유로 용인해 온 것이 과거의 관례였다. 하지만 '특수관계'라고 해서 '정상적인 관계'가 되지 말아야 한다는 법은 없다. 이명박 정부는 남북관계에서 상식과 합리가 통하는 대화문화를 정착시켜야 한다.
둘째, 원칙과 우선순위를 확고히 지켜라. 핵문제와 경협을 병행하든 연계하든, 핵문제 해결이라는 대원칙을 포기하거나 우선순위에 맞지 않은 정책을 펴서는 안 된다. 참여정부 대북정책에서 임기 안에 반드시 뭔가 업적을 이루려는 조바심이 북핵 불용이라는 원칙과 우선순위 개념의 상실을 초래했음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konas)
이상현(세종연구소 안보연구실장)
출처:http://www.m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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