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용일씨 귀환이 일깨워주는 교훈
장장 50년 4개월만의 귀환이었다. 그야말로 강산도 변한다는 10년 세월이 다섯 번이나 굽이쳐 흐른 기나 긴 기간이었다. 20세의 꽃다운 나이에 조국의 부름을 받고 입대하여 반세기의 만난신고(萬難辛苦) 끝에 칠순 노인이 되어 돌아온 국군포로 전용일씨-.
그는 2등병의 신분으로 휴전 직전 최대격전장이었던 중부전선 교암산전투에서 중공군에게 체포되어 전쟁포로가 된 후 인생의 황금기 대부분을 북한의 탄광에서 만난(萬難)을 견디며 보내야 했던 '불굴의 의지인'이었다. 바로 그가 지난 6월 탈북 이후 6개월여의 방황 끝에 드디어 꿈에 그리던 조국의 품에 안겼다.
전씨는 탈북 이후로도 조국으로 향한 길 문턱에서 국방부와 외교통상부의 무성의와 소홀로 인해 또 한 차례 좌절을 겪고, 다시 한번 위조여권을 만들어 '중국탈출의 드라마'연출을 감행했지만, 중국 공안에 체포되어 자칫 북송될 수도 있는 위기 속에서 40여일을 숨죽여가며 보내야 했다.
이처럼 무성의하고 불성실한 국군포로 확인절차 미비로 인한 혼선은 비단 국방부와 외교통상부만을 나무랄 일은 아니다. 그것은 이 정부의 총체적인 혼선이고, 국군포로에 대한 의지박약이 빚은 한 단면(斷面)이며, 분단과 고난으로 얼룩진 우리 현대사의 자화상이었다.
이 시대 이 땅에서 살아가고 있는 많은 젊은이들은 오늘의 번영과 발전이 6.25 한국전쟁 당시 무수한 전사자와 이들 전쟁포로의 희생 위에서 이루어진 것임을 잊고 살아왔다. 그들의 희생이 있었기에 자유민주주의체제의 혜택을 구가하고 있음을, 또 인류의 보편적인 가치를 누려오고 있음을 잊은 채 살아왔다.
전씨가 늦게나마 정부의 노력으로 돌아오게 된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에게서 이제 20세 열혈청년의 모습을 찾을 수는 없다. 만난(萬難)과 신고(辛苦)로 점철된 그의 인생을, 그의 그 오랜 세월을 무엇으로 보상할 것인가. 우리는 평생을 사지(死地)에서 고생한 국군포로에 대해 국가가 해야 할 도리와 책무를 다할 수 있어야 한다.
전씨의 귀환에 처음부터 좀 더 치밀하고 적극적으로 나섰어야 할 정부가 전쟁포로의 아픔을 미처 헤아리지 못하고 방관한 것은 아쉬움을 넘어 중대한 직무유기에 속한다. 한없이 부끄러운 일이다. 정부가 전씨의 딱한 사정을 뒤늦게나마 알고서 서두른 것은 그나마 '불행 중 다행'이다.
그러나 정작 문제는 '이제부터'이다. 국군포로 문제는 국가의 정체성(正體性)과도 직결되는 사안이 아닌가. 국군포로를 한 명이라도 더 구출하고자 하는 정부의 의지가 돋보일 때 대한민국의 위상(位相)과 존재의의는 그만큼 더 진일보할 것이다. 정부로서는 이 일을 재발 방지 노력만으로 그치지 말고, 국군포로 관련 업무를 전면 재검토하는 작업부터 강구해야 한다.
정확한 국군포로 인원과 명단을 수시로 수정 보완하면서 이들의 조기 입국을 위한 부처간 협조체계를 강화해야 한다. 또한 국군포로 출신 탈북자에 대한 정부 차원의 다각적인 지원책을 모색해야 마땅한 일이다.
94년 이후 입국한 국군포로는 전씨를 포함해 34명에 이른다. 대부분 홀로 또는 시민단체의 도움으로 귀환에 성공한 사람들이다. 지금도 이보다 훨씬 더 많은 국군포로가 중국 땅을 헤매고 있을 것이다. 6·25 한국전쟁으로 인한 국군포로는 4만2천여명이며, 이 가운데 북한에 생존해 있는 국군포로는 국방부가 확인한 숫자만도 500여명에 달한다.
미국은 지금까지 북한에 수백만 달러의 비용을 지급하고서 27차례에 걸쳐 미군 유해작업을 벌여오고 있고, 북한 독재정권 역시 이인모 등 60여명의 비전향 장기수의 송환을 집요하게 요구하여 성사시킨 바 있다. 이들의 극진한 '전쟁영웅 대접'과 햇볕정책 추진을 빌미 삼아 국군포로 송환문제를 북한당국에 거론조차 못한 우리 정부의 무관심'은 극명한 대비(對比)를 이룬다.
정부가 저지른 씻을 수 없는 '대우'(大愚)는 바로 이처럼 국군포로 송환과 같은 당연한 요구를 젖혀두고 북한과 '민족화해와 상호협력'을 논해왔다는 점이다. 이에 비하면 목숨을 걸고 조국을 찾은 전씨를 주중대사관이 문전박대한 것은 소우(小愚)일 뿐이다. 정부는 지금이라도 북한에 국군포로 송환을 공식 요구하는 자세 전환이 있어야한다. (konas)
정 준(코나스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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