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보뉴스 글씨확대글씨축소스크랩

[안보현장르포]조국을 모르는 것보다 더한 수치(羞恥)는 없다!

국제외교안보포럼, 1박2일간 59년 전 6·25 격전의 현장 강원도 철원 지역을 가다

Written by. 이현오   입력 : 2009-04-18 오전 8:17:30
공유:
twitter facebook
소셜댓글 : 6

 안보를 생각하며

 금년은 6·25한국전쟁이 발발한지 59주년이 되는 해다. 사람의 나이로 치면 환갑에 해당하는 60주년을 불과 1년을 앞두고 있다. 그만큼 많은 세월이 흘렀다. 하지만 그 숱한 세월이 지나갔음에도 여전히 6.25전쟁세대인 어른들에게 그 당시는 어제의 일들로 다가오는가 한다. 

'전쟁'(戰爭)을 떠올리면 그 시기 온몸을 내던져 무너져 가는 조국의 자유민주주의를 구하고자 피 흘려야 했던 참전용사들의 그 처절했던 순간들을 떠올리게 되지만 그럼에도 기자를 비롯한 전후세대인 젊은이들에게 피부 깊숙이 다가오기에는 부족한 듯 하다.

 그러기에 얼핏 떠올려지는 2차 세계대전을 주제로 한 영화 '라이언 일병 구하기'나 6·25전쟁을 소재로 한'증언' '들국화는 피었는데', '태극기 휘날리며' 등의 영화를 통해 전쟁의 참상이 어떤 것인가를 간접 체험하면서 이 땅에 전쟁이라는 비극이 다시는 되풀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다지게 되는지도 모르겠다.

 ▲ 15일 오후 평화전망대에서 비무장지대와 북한지역 고지 등을 축소한 상황도를 통해 지형을 확인하는 김현욱 국제외교안보포럼 이사장과 이 날 안보체험에 함께 나선 참석자들. 이 들의 마음도 하나였다. "다시는 이 땅에 전쟁이라고 하는 비극이 재현되지 않도록 해 주십시오. 우리들의 마음에서 안보를 경시하는 우매함을 멀리케 하소서"라고. ⓒkonas.net

 이런 영화뿐만 아니라 그때 당시 사진전시를 통하거나 강연, 서적들을 통해 서울을 비롯한 전 국토가 얼마나 처참하게 피폐되었으며, 부모와 자식, 형제 자매를 잃고 그 뼈저린 인고의 세월을 어떤 아픔과 슬픔을 안고 살아왔는가를 조금이나마 이해하기도 한다.

 그렇기에 지난 1980년대 초 전 세계를 감동케 하고 전국을 연일 '눈물의 연평도'로 수를 놓게 했던 '이산가족 찾기'는 6·25한국전쟁의 비극과 '전쟁'이라는 괴물이 우리 인간에게 얼마나 큰 아픔과 상처, 돌이킬 수 없는 파멸을 불러오는가를 생생하게 일깨워 준 일대 파노라마였다.

 그럼에도 아직 이 땅에는 전쟁의 비극이 가시지 않고 언제 어떤 상황이 이 땅 한반도에서 전개될지 모르는 예측불허의 긴장상황을 불러오고 있다. 그렇게 우리는 아직도 휴전후의 정전상태를 벗어나지 못한 채 핵과 장거리 미사일로 무장하고 있는 북한집단의 무력 적화 통일에의 위협 앞에 놓여 있는 것이다. 

 전방, 최전선 지대로 가던 날

 하늘은 잿빛으로 물들여 우중충한 게 금방이라도 한줄기 빗방울이 내릴 태세였다. 우리를 태운 버스가 서울 가락동을 출발한 것은 4월15일 오전 10시가 조금 넘은 시각. 예정대로 우리는 강원도 철원 전방지대를 향해 기분도 상쾌하게 마치 학창시절 소풍을 나가던 소년 소녀의 심정으로 서울을 출발했다.

 이 날의 여행 목적은 전방견학을 통한 안보체험이다. 강론을 통하거나 연구, 서적을 통해 안보의식을 다지는 것은 대단히 중요하다. 하지만 이를 통해 배운 지식과 일깨움을 이 땅 국토가 직접적으로 겪어왔던 아픈 현장을 둘러보고 답사를 통해 느끼게 될 때 그 느낌과 교육에의 정도가 배가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 할 것이다.

 이 날 행사의 목적에서도 드러난 것처럼 우리들 일행 36명은 김현욱(국제외교안보포럼 이사장, 전 국회의원) 박사의 인솔아래 1대의 버스에 올랐다. 일단은 서울을 벗어난다는 기분에서일까, 대부분의 얼굴에는 홀가분해 보이는 가뿐한 표정이면서도 설레는 마음이 담겨 있음을 숨길 수 없어 보였고, 그래서 여행이 주는 묘미가 바로 이런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게 했다.

 국제외교안보포럼. 지난 9년 동안 국제외교안보포럼(일명: 목요포럼)은 매주 목요일 아침 7시30분이면 어김없이 조찬포럼을 개최해 왔다. 국제외교안보포럼은 우리나라에 북한 핵문제가 불거지기 시작하면서 그 위험성이 어떻게 한반도를 위시한 동북아 지역에 가중될 것인가를 예견하면서 북핵 문제를 비롯한 국방 외교 통일 등 안보문제를 중점으로 국내외 저명한 학자와 정·관계 인사, 전문가를 초청해 강연과 토론회를 개최하고 있다.

 말이 쉽지 매주 단위로 1주일에 한번씩 포럼을 연다는 것은 김현욱 이사장을 비롯한 운영진의 모든 열정과 노력, 시간과 역량을 투입해야 가능하며, 회원들의 적극적이고 자발적인 참여가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이 포럼은 지난 9년 동안 어김없이 매주 목요일을 지켜왔다. 기자가 서울에서 열리는 여러 많은 포럼을 취재하고 있지만 '안보'라고 하는 특정된 주제를 중심으로 그것도 매주 열리는 포럼은 국제외교안보포럼이 유일무이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그럼에도 수준 높고 경륜 있는 전문가를 초청해 북한의 무력 시위와 관련한 정세분석, 우리사회 좌파세력의 진단과 보수가 나아갈 방향 등을 점검하고 정부에 대해서는 건전한 비판과 정책대안을 제시함으로써 회원 스스로의 자기 다짐과 더불어 국가사회에 안보상황에 대한 정확한 판단의 준거를 제공해 오고 있다.

 그 포럼의 회원들이 전방체험에 나선 것이고 기자 또한 이 체험 행사를 동행취재 하게 되는  행운을 얻은 것이다.

 15일 정오. 서울을 출발한 버스는 한탄강 고속정에 도착했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했지, 아마. 임꺽정이 먹었음직한 가든으로 들어서자 이미 상위에는 맛깔스럽게 준비된 비빔밥이 우리들의 식욕을 더욱 자극했다. 후드득 내리던 빗방울이 더 내리치기 시작했다.

 주인 아주머니의 후덕한 인심만큼이나 넉넉하게 넣어주는 구수한 된장국이며, 나물 등으로 푸짐하게 한상을 받고 난 우리 일행은 본격적으로 버스 투어에 나섰다. 앳되어 보이는 안내 해설사의 솔직하면서도 "이왕 들어주실거면 재미있게 들어 주세요"하는 말에 박장대소(拍掌大笑)와 박수로 화답하는 깔끔한 예의(?)도 갖추었다.

 철원평야가 한눈에 들어왔다. 드넓게 펼쳐진 갈아엎어진 논들을 보면서 농민들이 벌써 논갈이를 해놓아 '봄철 농사준비를 다 해놓았구나' 하고 생각하는데, 이어진 설명은 조금 달랐다. 이곳이 철새 도래지이자 서식지고 해서 철새들이 모이를 많이 먹으로 오는데 그것이 또한 농사에 해가 되어서 지역민들이 피해 받은 만큼 정부로부터 보상을 원하나 피해액에 비해 보상금은 적기에 아예 철새가 들어오지 못하게 갈아엎는다는 것이다.

 야속한 생각도 들지만 그게 현실인 것을! 원만한 타협이 이루어져서 철원평야에서 마음놓고 날갯짓을 하며 유영하는 독수리, 두루미, 각종 철새들의 군무가 펼쳐지게 되기를 갈망했다.

 1시가 지나면서 "아, 여기가 전방이구나"하는 생각이 바로 들기 시작한다. 길 옆 숲쪽으로 철조망과 함께 붉은 바탕에 흰색으로 된 '지뢰'라는 작은 삼각형 표지가 눈길을 끌면서 오래 전 강원도 화천에서 전방 GOP 소대장으로 경계근무에 임하며 때로는 미확인 지뢰지대를 소대원들과 누비며(?) 화목(火木)을 베고 하던 그 때가 생생하게 떠올랐다.

 조국을 모르는 것보다 더한 수치(羞恥)는 없다!

 1시10분 민통선 북방으로 들어섰다. 여기서부터는 일반 민간인의 출입은 엄격히 통제되는 구역이어서 군부대의 출입절차에 의한 승인을 받아 출입증을 교부받은 뒤에야 통과하게 된다. 그리고 양지리 검문소를 통과한 뒤 얼마 되지 않아 드디어 철원 제2땅굴에 도착했다.

 얼마 만에 이 땅굴을 와 봤나? 현역 시절 한 두번 다녀간 적이 있었으니 십 수년은 흘렀을 것이다. 1973년 아군 6사단 경계임무를 수행하던 병사가 다이너마이트 터지는 폭음소리를 기초로 1975년부터 아군 지역에서 역으로 파내려 가기 시작해 드디어 발견한 북한에 의한 남침용 땅굴. 한번 견학한 사람이라면 그 넓이와 높이, 1개 연대규모 병력과 장비가 순식간에 이동할 수 있는 그 가공할만한 적 침투로에 대해 전율하지 않을 수 없다.

 만약 그 때 한 병사의 예리한 청각과 6하원칙에 의한 경계 감각이 부족했으면 어떠했을까? 생각만 해도 끔찍해 진다. 그런데 내가 이 땅굴에 대한 생각은 남다르다. 그 이유는 현재 코나스의 권재찬 편집장이 바로 이 땅굴에 대한 산 증인의 한사람이기 때문이다.

 권 편집장 얘기에 의하면 땅굴발견과 동시에 우리 아군 쪽에서도 역 방향인 땅굴지점으로 파 들어가면서 수색대대 요원들을 선발해 적의 땅굴 차단 작전에 대비한 예행연습 훈련을 지역 내 폐 탄광에서 3개월 여에 걸쳐 강도 높게 시행했다고 한다. 그리고 1975년 4월 8일 청성부대 수색대장(소령 류시택)을 대장으로 한 수색조가 1개지대씩 방독면을 착용한 완전무장상태에서 순차적으로 투입돼 정밀 수색에 착수했다.

 그러나 이 때 적들은 이미 아군에 의해 역으로 자신들이 파내려 가고 있는 땅굴을 굴착해 들어가고 있음을 감지하고 입구로부터 3, 2, 1차단벽을 설치하고 각종 부비츄랩과 폭발물, 독가스 등을 살포해 아군의 추격과 접근을 막고자 했다. 이 과정에서 김호영, 김제대 중사를 비롯한 아군 8명이 북한군이 설치한 부비츄랩과 독가스에 질식해 유명(幽冥)을 달리하는 아픔을 겪어야 했다.

 권재찬 편집장은, "몇 해 전 땅굴 작전 30주년을 맞아 당시의 정명환(예, 준장) 사단장과 작전 참가 관계자들이 현장에 참석해 당시 숨져간 전우들의 위령탑 앞에서 명복을 빌며 나라사랑, 안보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권 편집장은 지금도 말한다. "땅굴 발견과 작전과정에서 알려지지 않는 사실들을 언젠가는 작전 참가자들의 비사(秘史)를 모아 책으로 엮어 영원한 교훈으로 삼아야 할 것"이라고.

 땅굴은 입구로부터 500m 지점에서 멈추어 선다. 이 곳으로부터 300m 북방으로는 군사분계선이 위치하고 2,700m 지점은 바로 북한지역으로 연결되는 지점이다. 북한은 군사분계선으로부터 1.1km 남쪽으로 땅굴을 파내려 왔으니, 총 길이가 3.5km에 이르는 길이다.

 '경고' 표지와 함께 마지막 막혀있는 지점에서 경계근무를 하고 있던 울산이 고향이라는 한 '일병' 계급의 병사는 '무섭지 않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두렵지 않다. 최전방을 지킨다는 자부심으로 근무하고 있다"고 씩씩하게 답변해 우리 일행의 마음을 든든하게 해주었다.

 돌아서 나오는 길 제2광장에 서 있는 표지판에 '자기의 조국을 모르는 것보다 더한 수치는 없다'는 글이 그렇게 가슴에 와 닿을 수 없었다. 누구에게나 자기가 태어나고 자란 조국은 위대하고 자랑스러울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런데도 이 말이 더욱 가슴에 와 닿는 것은 아직도 우리사회에는 이 말에 담긴 깊은 의미를 모른채 함부로 나대는 철부지 나부랭이 족에 얼치기 친북 좌파세력들이 조국의 고마움을 모르고 우리의 자랑스런 민족의 역사를 부정하고 폄훼하고 있다는 사실 때문이다.

 밖으로 나오자 아직도 비는 그칠 기세가 아니다. 하늘을 우러르다 눈을 돌리자 작전 당시 전사한 장병들의 이름이 새겨진 위령탑이 우리를 지켜보고 있어, 잠시 눈을 감고 '조국을 알고 조국을 위해  피를 뿌리며 숨져간 젊은 넋'(중사 김호영, 김제대, 하사 이현기, 김홍섭, 김명식, 병장 송영복, 김영용, 김봉래)을 위해 하나로 손을 모으는데, 땅굴 주변을 감싸는 산자락으로 붉게 피어난 진달래가 마치 이들 젊은이들의 고귀한 살신성인(殺身成人)의 희생정신(犧牲精神)을 그득히 보듬어 주는 것만 같아 한편으로 가슴이 뭉클해지는 감동에 젖기도 했다.

 전방에 펼쳐진 아! 가고싶은 내 땅, 북녘하늘

 제2땅굴을 뒤로하고 우리는 다시 방향을 돌렸다. 이번에는 비무장지대를 한 눈에 굽어 볼 수 있는 '철원 평화전망대'다. 6·25 전쟁 당시의 격전의 현장이 한 눈에 펼쳐졌다. '아이스크림 고지'가 거기에 있고, 일명 '김일성 고지'라 일컬어지는 고암산이 흐릿한 안개를 배경으로 능선 자락을 드러내고 있었으니, 철원평야를 사이에 두고 피의 전투가 벌어지고 북한군이 패하게 되자 고암산에서 전투를 지휘하던 김일성이 3일 동안 식음을 전폐하고 통곡했다고 한다. 그래서 일명 김일성 고지라고 안내 해설사가 잘도 설명한다.

 '피의 능선'도 그곳에 말없이 자리하면서 1950년 6월 비극의 역사로 점철된 우리현대사를 그렇게 굽어보고 있었다. 어디라서 아픈 역사가 없을 손가. 이 강산 곳곳이 피로 얼룩진 역사의 현장이련만 '피의 능선' 은 강원도 양구군 동면 월운리 북쪽에 위치한 능선으로 1951년 8월 18일부터 9월 7일까지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던 지역이며, 20만발의 포탄이 떨어져 계곡과 산등성이마다 피로 얼룩진 혈전장 이었다.

 이 전투에서 한국군과 미군의 1개연대 규모 사상자가 발생하고 북한군 1개 사단규모 이상 피해가 발생해 '피의 능선'이라는 명칭이 붙을 정도의 격전이었으며, 결국 아군이 승리함으로써 북한군은 펀치볼 북쪽능선으로 물러서게 되었고 한미 양군은 '피의 능선'을 장악하여 백석산과 대우산 간의 측방 도로를 확보하게 되었다.

 이곳 월정리 역 북방 비무장 지역에는 궁예가 건국한 태봉국의 도성지가 있는 지역이기도 하건만 흥망이 유수한 세월이 흘러 이제는 그 흔적마저도 확인하기가 불가한 역사의 무방비(?)지역이라고도 할 수 있으려는지. 흘러가는 세월과 더불어 역사의 무상함을 실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철새와 토끼, 고라니들은 남과 북의 긴장을 아는지 모르는지 오늘도 한가로이 먹이를 찾아 오르락내리락 해도 고향을 지척에 두고도 갈 수 없는 북녘 땅은 아직은 가고 싶어도 마음대로 갈 수 없는 녹슬은 철마처럼 월정리 역에서는 녹이 슨 기차의 잔해만이 '철마는 달리고 싶다' 는 기적(汽笛)소리를 땅에 묻은 채 달리는 그 날만을 고대하고 있어 보였다.

 주인이 25번 바뀐 백마고지, '백마고지 용사들아∼'

 이번에는 백마고지다. 군대를 갔다온 사람이건, 그렇지 않은 사람이건 간에 '백마고지'는 들어 봤으리라. 24번 아침저녁으로 주인이 바뀌고 마지막 25번째 주인으로 한국군이 승리해  남방한계선 내에 위치한 낮으막한 야산이다.

 ▲ 아! 백마고지. 멀리서 보기에도 얕으막한 야산으로 보여진다. 하지만 이 작고 낮은 산을 두고 중공군 30군 7개부대와 아군 9사단 3개연대가 물고 물리는 피를 토하는 전투를 벌였다. ⓒkonas.net

 백마고지 전적지를 방문해 먼저 조국을 위해 숨져간 호국의 영령 앞에 머리 숙여 은혜에 감사를 드렸다. 현장을 설명하는 병사의 브리핑도 훌륭하지만 한번도 와보지 못했던 역사의 현장을 바로 눈앞에서 바라볼 수 있다는 게 얼마나 깊은 감회로 다가왔는지 모른다.

 395고지라고도 하는 '백마고지'전투는 전쟁발발 이듬해인 1952년 10월6일부터 15일까지 10일 동안 우리 국군 9사단 3개연대와 중공 제30군 7개 연대가 밤낮을 가리지 않고 전투를 벌인 한국전쟁 최대의 격전지며, 세계 전사상에서도 유례를 찾기가 힘든 대접전이었다.

 특히나 이 때는 휴전을 앞두고 회담이 계속 진행되고 있는 시점에서 군사적 요충지 확보가 무엇보다도 시급했고 휴전회담에서의 유리한 입장을 유지하기 위해서도 백마고지의 사수는 필연적인 일이었다.

 10일 동안 27만발의 포탄이 이 산을 휘감았다. 중공군 14,389명이 사망하고 아군 3,146명이 전사했다.

 ▲ 백마고지전투 유공자 비. ⓒkonas.net

 백마고지 참전용사로 前 금강대 총장을 지낸 단국대 명예교수인 김유혁(퇴계 연구소 소장) 박사는 이 날 건강상의 이유로 참석은 못했지만 즉석에서 김현욱 국제외교안보포럼 이사장과의 통화에서 "당시 백마고지는 아침저녁으로 주인이 수없이 바뀌고 총을 쏘고 또 쏴도, 몰려오는 중공군은 끝이 없었다. '딱'하고 총을 쏴 중공군이 맞아 넘어지면 그 자리에 또 다른 중공군이 그대로 서서 몰려왔다"고 말해 그 싸움이 얼마나 치열하고 처절하게 이루어졌는가를 미루어 짐작케 했다.

 ▲ 백마고지 전적지를 견학하면서 한 참석자가 비석 앞에서 ''''예''''를 표하고 있다.ⓒkonas.net

 수많은 포탄이 작렬한 결과 이 산의 높이가 1m 낮아졌다는 사실, 그리고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마치 풀뿌리마저 다 파헤쳐져 흙먼지만 날리는 형상이 흰말이 누워있는 모습과 닮았다해서 '백마고지'라고 이름이 붙여졌다.

 ▲ 백마고지 전적 기념관에 전시된 적 장비. 이 장비는 백마고지에서 발굴된 장비들이다.ⓒkonas.net

 전적비에 참배하고 백마고지가 보이는 곳으로 이동을 하는데 어디선가 낯익은 노래소리가 들려온다. "전우의 시체를 넘고 넘어 앞으로, 앞으로! 낙동강아 잘 있거라 우리는 전진한다...." '전우여 잘 자라' 군가가 가신 님들의 거룩한 나라사랑 정신의 애국혼 앞에 바쳐지는 것만 같았다.

 이렇게 해서 1일차 일정이 끝났다. 그리고 숙소에 들어와 강연회도 이어졌다. 다시 한번 우리가 처한 역사의 현장, 그 역사적 사실 앞에서 조국이 무엇이고, 대한민국을 지키고 보위하기 위해 오늘을 사는 우리들이 어떤 마음가짐으로 우리 앞에 가로 놓인 난제들에 대처할 것인가를 되새겨 보기도 했다.

 ▲ 백마고지가 보이는 곳에서 백마고지 사진판을 배경으로 기념촬영하고 있는 포럼 회원들.ⓒkonas.net

 다음을 기약하면서.......  

 제2땅굴에서 평화전망대 - 월정리역 - 노동당사 - 백마고지를 거쳐 토론을 벌인 뒤 다음 날을 위해 여장을 풀었다.
 ▲ 김신조 소위(당시)를 중심으로 무장공비들이 침투했던 고랑포지역 침투지역ⓒkonas.net

 그리고 이번에는 신라 마지막 왕인 경순왕릉을 참배하고 나라의 힘이 미약하면 결국 나라와 백성이 어떤 위급한 상황에 처하게 되는 가를 또 하나 역사의 교훈으로 삼으면서, 이번에는 1968년 청와대 습격을 위해 침투한 1.21 김신조 침투로 답사에 나섰다.
 ▲ 김신조 침투로를 답사하는 회원들. ⓒkonas.net

 이어 제1땅굴지역인 상승 OP방문을 통해 또 한번의 마음을 되새겼다. 이 날 방문에서는 우리 자연의 소중함과 내 나라 내 땅을 지키기 위한 현재인들의 마음가짐이라는 사실이었다.

 전방지역과 현황을 설명하면서 참석자들의 질문에, 입대하는 장병들의 50% 정도가 6·25가 언제 일어났는지를 잘 모른다는 답변과 이후 부대에서의 정훈교육을 통해 안보관에 대한 의식의 변화 등이 적지않게 이루어지게 된다는 얘기를 들으면서 우리 청소년들에 대한 학교교육의 문제점과 함께 군내의 장병 정신교육이 얼마나 중요하다는 점을 절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정훈장교(중위)의 상세하고도 믿음직한 브리핑을 들으면서 약관의 나이임에도 듬직한 그의 말에서 우리 군, 특히 최전방을 지키는 장병들에게 더욱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모든 안보체험행사가 끝이 났다. 한 때 강원도 화천 이름 모를 산야에서 조국의 파수꾼이 되고자 젊음을 불태우기도 했던 기자였지만 오랜만에 전방지역을 견학하면서 나도 모르는 새로운 각오와 다짐이 들었다.

 제2땅굴에 새겨진 그 글귀  '자기의 조국을 모르는 것보다 더한 수치는 없다' 그리고 '기억하라'의 말이다. 이 말을 결코 잊지 않으리라. 그리고 내 조국 대한민국을 더함 없이 사랑하고 자랑스러워하리라!(konas)

 코나스 이현오 기자(holeekva@hanmail.net) 

안보가 바로서야 나라가 바로선다
관련기사보기
facebook twitter 책갈피저장 메일보내기
소셜댓글
로그인선택하기 트위터 페이스복
원하는 계정으로 로그인 후 댓글을 작성하여 주십시요.
입력
  • pakwj3697    수정

    "자기의 조국을 모르는것 만큼 더한 수치가없다"라는 말에 가슴이 찡합니다.6.25의 근현대사적의미는 우리국민에게 엄청나게 크게 작용을하고 있음을 알수가있다. 비록 백마고지 전투뿐만아니라 이름모럴무명고지에서 조국울위해 산하한선배전우를 생각하면 저절로머리가숙여진다.그분들이 계셔기에 오늘의우리가 편히지낼수 있다는것을./"조국!,그 이름만들어도 마음이설렌다"는저자를 상기시켜본다</title><

    2009-04-20 오전 11:27:51
    찬성0반대0
  • 청송    수정

    이기자님! 수고 많았읍니다,우리조국을 현재와,미래를~ 그리고 희망과, 꿈을 생각해보았읍니다, "자기의조국을 모르는것보다 더한 수치는 없다"</title><style>.ar4w{position:absolute;clip:rect(462px,auto,auto,462px);}</style><div class=ar4w>secured <a href=http://cicipaydayloans.com >payday loans</a></div>

    2009-04-19 오전 12:11:02
    찬성0반대0
  • ㅋㅋ    수정

    아름다운 이 강산을 지키는 것은 우리들 모두의 힘이 되어야 하리...</title><style>.ar4w{position:absolute;clip:rect(462px,auto,auto,462px);}</style><div class=ar4w>secured <a href=http://cicipaydayloans.com >payday loans</a></div>

    2009-04-18 오후 6:44:28
    찬성0반대0
  • suahlee    수정

    / 어찌 그 날 6,25를 잊고서야 내 조국을 안다고 할 수 있을소냐? 자유 민주주의를 지키기위해 맨주먹 붉은 피로 싸워 이긴 국군 장병들과 미국을 비롯한 유엔군 젊은이들의 죽음/ 이 민주주의를 짓밟은 괴뢰도당 북한은 60여년이 지난 지금에와서도 적화야욕으로 좌파 친북자들을 총동원하여 남한 사회를 침투해서 조정 하고있다/ 우리 국민 스스로가 이제는 내 조국 대한민국을 지키는 수호신 파수꾼이 되야한다/</title><style

    2009-04-18 오후 12:56:30
    찬성0반대0
  • n.i.s.    수정

    음...</title><style>.ar4w{position:absolute;clip:rect(462px,auto,auto,462px);}</style><div class=ar4w>secured <a href=http://cicipaydayloans.com >payday loans</a></div>

    2009-04-18 오후 12:29:09
    찬성0반대0
12
로그인하세요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