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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험수기4] 뜨거운 열정으로, 불타는 청춘으로, 넘치는 패기로...

6.25 59주년 대학생 전적지 국토 대장정 체험수기

Written by. 신소영   입력 : 2009-09-13 오후 4: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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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25 59주년을 맞이하여 재향군인회는 전국에서 선발된 125명의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서울에서 포항까지 460km를 종단하는 제2회 '대학생 전적지 국토대장정'을 지난 6월 25일부터 11박 12일간의 대장정을 성공리에 끝마친 바 있다. 이에 코나스는 체험수기 공모에서 우수한 작품으로 선정된 6편을 엄선 시리즈로 게재합니다.

국토대장정을 통해 대학생들은 어느 곳에서도 어느 누구도 가르쳐 주지 않았던 6.25에 대해 피비린내 나는 전적지에서 또한 참전용사들의 경험담에서 피부로 느끼고 체험했다.

대학생들은 체험수기에서 6.25에 대해 국가가 혹은 학교교육에서 왜 체계적인 교육이 이뤄지지 않았는지를 되묻고 있다. 왜 우리의 현대사를 이토록 방치하고 알지 못하게 했는지를 기성세대를 향해 비판하고 있다. 참전 21개국에 대해서도, 주한미군의 대해서도 그들의 시각은 완전히 달라졌다. "알지도 못하는 외국의 젊은이들이 왜?, 무엇 때문에? 대한민국에서 피흘러 죽어갔는가?"를 국토대장정 처음부터 끝까지 화두로 삼아 스스로에게 되 묻고 있다.

이 젊은 대학생의 고민과 갈증을 풀어 줄 해결책은 정녕 없는 것일까.

코나스는 잘못된 근.현대사 교육의 해결책을 바로 대학생들의 체험수기에서 그 답을 찾고자 한다.

독자들의 필독을 바라며......(konas 편집자 주)



과거를 잊은 민족의 미래는 없다

2009년 6월 25일
. 6·25전쟁 59주년을 맞아, 기념식이 열린 장충체육관에서 주요내빈과 많은 참전용사들 앞에 가지런히 일렬로 선 우리2기 답사단원들은 엄숙하고 경건한 자세로 임했습니다. 이민우 대원과 함께 6·25 전적지 답사단 대표의 자리에 서서 떨리는 마음으로 출정결의문을 낭독하고 우리는 차례로 행군을 위한 발걸음을 재촉하였습니다. 난생 처음 같은 유니폼과 가방을 맨 분대원들과 함께 461Km를 행군한다고 생각하니 잘 할 수 있을까 하는 막연한 불안감이 엄습해 와 가슴이 울렁거리고, 마치 이 자리에 있는 것이 어제 꾼 꿈과 같이 마련하였습니다. 하루에 평균 8시간-10시간 씩 걸으면서 처음에는 왜 행군을 하는가 하는 의구심도 들었습니다. 하지만 전쟁  시에는 30Kg의 군장을 메고 행군했던 참전 용사들을 생각하니 6Kg밖에 안 되는 짐에, 물과 음식이 제공되는 대장정의 생활은 그 당시와 비교해서 정말 편안하고 행복한 생활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국립 현충원과, UN군 초전비 등 전적 기념관을 차례로 답사하면서 역사를 바로 알게 되면서, 다음 행로에 위치한 전적 기념관은 과연 어떤 살아있는 역사를 간직하고 있고, 6·25전쟁 시절에 흘렸던 민족의 피가 전해진 우리의 가슴속에 뜨거운 애국심을 일깨워 줌을 상기하면서 이를 악물고 걷고 또 걸었습니다.

 2회 6·25 전적지 답사를 하면서 저는 걷는다는 단순한 국토 대장정의 의미뿐만 아니라 가슴속에 새길 세 가지의 교훈을 얻었습니다. 첫째는 해와 달을 보는 날이 많아질수록 하루가 다르게 동족상잔의 비극인 6·25전쟁의 참상에 가슴 아파하고, 북한의 남침과 도발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을 가져 우리나라의 국가관이 바로 서게 되었습니다.

  둘째는, 비록 12일이라는 제한된 시간 속에서 만난 인연이었지만, 12년보다 더 값진 저만의 125개의 보석들을 얻었습니다. 저와 같은 뜻을 지닌 뜨거운 가슴을 지닌 우리 답사단들과 함께 한 이 시간은 제 생애에 가장 값진 순간이었습니다. 가족보다도 더 끈끈하게 함께 힘든 행군을 이겨낸 우리 답사단은 서로에게 힘이 되고 용기가 된 이 세상에서 가장 큰 비타민이었습니다.

 셋째는, 열정과 청춘과 패기로 어떠한 역경도 이겨낼 수 있는 가슴입니다. 항상 남에게 의지하고 힘든 일이 있으면 아이와 같이 어리광을 부리던 저는 어른의 탈을 쓴 아이였지만 이번 대장정을 완주하면서 저는 저에게 큰 선물을 하나 주었습니다. 그것은 그 어떠한 것도 이겨내고 성취할 수 있는 뜨겁고 불타고 넘치는 자신감입니다.

 과거를 잊은 민족의 미래는 없다. 이 말이 얼마나 가슴속에 멍울멍울 부풀어 오르던지 간밤에 잠을 설쳤습니다. 과거를 잊은 민족의 미래는 없습니다. 우리는 6·25전쟁을 절대 잊지 말아야하고, 다른 이들에게 6·25전쟁의 모든 진실을 알려야합니다.

 EP. 1 ( 6 / 25 )

 국립 현충원과 수원 프랑스군 참전비에서 참배를 하고 나니 점점 6·25 전적지 답사에 담뿍 빠져들었습니다. 마치 시간을 거슬러 올라 6·25 전쟁의 시간에 있는 느낌이었습니다. 불과 얼마 전에 전쟁이 난 것과 같은 슬프고 아련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비석에 새겨진 이름들을 읽어가며, 그리고 그 이름 가에 놓인 꽃들과 그 당시의 사진들을 보며 꽃다운 청춘을 바쳐 조국을 지킨 호국 영령들에 대해 경건한 마음이 들었고,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는 한국이라는 작은 나라에 와서 6·25 전쟁에 참전한 프랑스군뿐만 아니라 UN군 16개국과 의료지원 5개국의 참전용사 분들께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벅찬 감사함에 고개가 절로 숙여졌습니다.

 1일차 행군의 종착역인 수원 제 10전투 비행단에 도착하고 나니 엄청난 비행기 소리가 들리는 공군 부대가 매우 낯설었고, 드디어 도착했다는 안도감과 함께 내일의 행군은 얼마나 힘이들까 하는 불안감의 두 심정이 교차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군대에서 처음 듣는 625 전쟁 교육에 학교에서 배운 것과 매우 판이한 내용에 혼란이 있었습니다. 우리의 적은 미국과 일본이고 대북정책으로 평화를 실천해야 한다는 학교에서 배운 내용이 아니라 우리의 적은 북한이고 6p25 전쟁은 북한의 남침으로 인해 평화로웠던 한반도가 분열이 되었다는 것도 매우 다른 내용이었습니다. 혹여 잘못된 언론과 주입식 교육으로 인해 조작된 정보를 접하고 있던 것이 아닌지 생각하면서 국가 안보에 대해 걱정하고 올바른 국가관이란 무엇일지 곰곰이 고민해보는 시간도 가져보기도 했습니다. 전쟁의 참상의 이해와 올바른 정보의 인식에 대해 한걸음 다가간 첫날의 행군이었습니다.

 EP. 2 ( 6 / 26 )

 아침에 군대에서 나오는 우유가 너무 신기했습니다. 보통 가게에서 파는 것이 우유의 용량이 아니라 200ML-500ML의 중간쯤 되는 크기라서 새로 접한 우유가 너무 신기하고 군대에서 먹는 우유라 더욱 맛있었던 것 같습니다.

제일 힘든 날이었습니다. 스텝들이 괜히 겁준 것이 아니었습니다.‘ 설마 평소에 생기지도 않는 물집이 나에게 생기겠어’하는 설마가 사람 잡는 그런 날이었습니다.

 UN전적 기념비에서 참배를 하고, 스미스 부대의 오산 지역의 패퇴가 얼마나 긴박하게 상황이 진행되고 있었을지 상상해 보았고, 예상치 못한 강한 무기를 갖춘 북한의 병력에 패한 스미스 부대와 우리나라의 참담한 상황이 너무 안타까웠습니다. 그리고 국군의 날이 유래 된 방공포 여단의 역사를 알게 되면서 조각난 6p25 전쟁의 퍼즐조각이 맞춰지는 기분이었습니다.

 이튿날이 되면서 행군을 할 때 노하우가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물집이 생기면서 차츰 신발을벗고 쉬는 일이 중요하다는 인식이 생기고 콘크리트 바닥에 드러눕는 일이 익숙해졌습니다.

 그리고 물의 소중함을 몸으로 배웠습니다. 행군을 할 때 남는 물의 양을 계산하면서 물을 마셔야 한다는 것과, 행군할 때 꼭 물은 가득 채워서 가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어느 장소에서 스텝이“앞으로 밀착”이라고 외칠 지 예상하게 되고 그 예상이 맞기 시작했습니다. 점차 국토인이 되어가고 있는 과정을 거치고 있었습니다. 힘든 날이었지만 앞으로 어떻게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남은 일정을 항해할 닻을 단 날이었습니다.

 EP. 3 ( 6 / 27 )

 즐거운 레크리에이션 날이었습니다. 우리 [무한국토] 분대에게는 정말 뜻 깊은 날이었습니다. 1등을 차지한 짧은 세 가지의 에피소드로 묶인 공감 100배 국토대장정은 많은 호응을 얻었습니다. 첫 번째 에피소드는 남자를 만나러 국토 대장정을 한 두 여자의 이야기이고 두 번째는 거의 다 왔다며 안심시키는 스텝의 애교 있는 거짓말과 세 번째는 더운 날씨에 행군에 사타구니에 베이비파우더를 발라야 하는 남자들의 이야기였습니다. 다른 분대들이 더 잘했다고 생각했는데 정일훈 답사단장님이 우리 분대를 예쁘게 봐 주셔서 1등을 거머쥐었습니다. 열심히 머리를 모아 회의하고, 몸을 아끼지 않고 열연해 준 우리 분대원들이 너무 고마웠고 이 계기를 통해 더욱 분대원들이 단합된 모습으로 행군을 이어갈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재향군인회에서 더운 날씨에 탈진 직전인 대원들에게 시원한 수박과 간식거리를 제공해 주셔서 어머니를 마음을 보는 듯 너무 달갑고 감사하였습니다. 그리고 힘든 내색 안하고 대원들에게 밥을 제공해 주는 스텝들의 노고에 정말 감사한 마음이었습니다.

 EP. 4 ( 6 / 28 )

 어제의 짜릿한 1등의 영예와 더불어 우리 [무한국토]는 사기 충만한 하루였습니다. 함께 노래를 하고 한명씩 이름을 넣어가며 구호를 외치면서 2-3분대 사람들은 우리 분대에게 ‘라디오’라는 애칭까지 지어주었습니다. [무한국토]의 분대장 주인호 분대장은 왼쪽 다리에 무릎 보호대까지 하며 물집으로 짓무른 발로 행군했습니다. 그 모습을 본 우리 분대원들은 대원들의 사기를 위해 힘든 내색 하나 없는 분대장의 그 모습에 감동하고 그를 진심으로 걱정하였습니다. 결국 구급차에서 치료를 받았고, 다시 행군 대열으로 내려와 오히려 대원들을 걱정하는 모습에서 우리는 끈끈한 가족애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또한 자신의 가방도 무겁고 힘든데 폭염과 같은 날씨에 지친 이진영 대원의 가방을 밀어주며 함께 올라간 안효섭 대원을 보면서 가슴이 뭉클했습니다.

 특공대 부대에 도착해서 6.25 전쟁에서 우리나라를 도와준 많은 나라들에 대해 설명을 들었는데 참전국 16개국, 의료지원 5개국의 그렇게 많은 젊은이들이 우리를 위해 싸워주었다는 것에 대해 믿기지 않았습니다. 참전국에서만 5만 7천명 사망, 11만 5천명 부상이라는 경이로운 숫자에 6.25전쟁이 우리나라에만 국한된 재앙이 아니라 세계적인 재앙이었고, 다시는 일어나지 않아야 할 참극이라고 느꼈습니다.

EP. 5 ( 6 / 29 )

 드디어 계룡대로 출발하는 날. 이튿날보다 더 힘든 날이 될 것이라고 해서 주눅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더욱 끈끈해진 분대원들 덕분에 힘이 솟아나는 듯 했습니다. 특히 저랑 동갑인 홍주은 대원과 김미나 대원이 있어서 더욱 의지가 되었습니다. 홍주은 대원은 거의 행군이 시작하자마자 피물집이 잡혀서 인해 중도에 포기할까 하고 고민도 하고 별명이 울보일 만큼 많은 눈물을 흘렸습니다.

 하지만 아픈 발을 이끌고 대원들에게 힘내라고 응원해주는 열정까지 보이면서 함께 행군에 합류하였습니다. 그 모습을 보고 우리 대원들은 다시 힘을 내서 계룡대로 향했습니다. 김미나 대원의 폭소를 자아내는 개그본능으로 인해 행군하는 내내 우리 [무한국토]는 항상 웃음꽃이 만발하였습니다.

 또한 듬직한 오빠부대 장지환 대원, 조용민 대원이, 항상 매 쉬는 시간 마다 쓰러지듯 아스팔트에 신발을 벗고 누운 다른 대원들의 생수통을 채워주며 힘내라고 응원해 줄때면 친오빠 같고 가끔 아빠와 같이 다정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우리는 하나 둘 정을 쌓아가고 점점 무한의 열정을 가진 완전한 [무한국토]로 완성되고 있었습니다.

 천사의 합창과 같은 군악대의 합주를 들으며, 끝날 줄 모르는 육해공군 지휘본부 계룡대에 도착했습니다. 도착하자마자 항상 저를 챙겨주던 김혜진 대원과 더불어 모든 여자 대원들의 얼굴을 마주보고 너무 기뻐서 부둥켜안고 애정이 담긴 볼에 입맞춤을 했습니다. 우리 분대 여자들끼리 항상 애정의 표시로 하는 뽀뽀도 이제는 익숙한 습관이 되었습니다.

EP. 6 ( 6 / 30 )

 노루가 자유롭게 뛰어다니는 계룡대 탐방을 했습니다. 모두의 감탄을 자아내는 8각으로 생긴 육군, 해군, 공군의 지휘본부를 보며 우리나라의 안보를 지켜주고 있는 심장부라는 생각에 괜히 마음이 든든한 기분이었습니다. 그리고 명예의 전당에서 마치 사실과 같은 전쟁터의 판화는 그 때로 돌아간 기분이었습니다. 다시 한 번 6.25 전쟁의 참전용사들에게 감사한 마음을 기렸고, 전쟁이 너무 끔찍하고 미워졌습니다. 그리고 역사가 바뀐 그 곳 신도안 전설이 깃든 터를 방문하며 마치 몇 백 년을 거슬러 간 것 같았습니다. 계룡대에 수도가 지어졌다면 공기 좋은 이곳에서 노루와 함께 뛰어놀며 살고 있을 모습을 상상했습니다.

 행군 중에 갑자기 농악대의 풍물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우리를 반겨주는 그 모습에 정말 감사하고 또 감사했습니다. 연세가 지긋하신 분들에 아주 어린 아이까지 소고를 치며 흥을 돋우시는 모습에 절로 “얼쑤” 라는 소리도 났습니다. 지친 우리들에게 경멸자차와 빵을 제공해 주시고 아낌없는 응원과 애정이 담긴 말들을 해 주시니 정말 눈물이 날 정도로 감사했습니다.

 영동 대대에 도착하고 교회에다 짐을 풀고, 식사를 했는데 말로만 듣던 ‘맛스타’가 나왔습니다. 너무 신기하고 군대에서만 먹을 수 있는 음료수라니 더욱 맛있었습니다. 그리고 PX를 이용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습니다. 평소에 PX에서 맛있는 것들을 판다고 해서 정말 궁금했었는데 처음 방문하는 것이라 너무 신났습니다. 처음으로 군대에서만 파는 프라페를 먹어보고 지나가는 군인에게 건빵을 얻어서 먹었는데 ‘이것이 진정 군대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군대는 참으로 매력적인 곳이라 생각했고, 작은 규모의 부대라 더욱 가족 같은 분위기 같아서 지금까지 방문해본 부대 중에서 제일 좋았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조만간 다른 부대로 영입될 것이라는 소식에 슬퍼졌습니다.

EP. 7 ( 7 / 1 )

 노근리 사건의 현장을 지나갈 때는 너무 참혹하고 끔찍했습니다. 학살이 일어난 장소의 2미터 이상 되는 높이에도 무수한 총알 자국이 있었는데 그 곳까지 올라간 사람이 있었다는 것이 그 때의 상황을 대변해주는 듯 했습니다. 사람이 어떻게 그런 행동을 할 수 있는지 너무 무서웠고, 소름이 끼칠 만큼 충격적이었습니다.

 추풍령을 넘어 김천대대에 도착하고, 바로 샤워를 하러 갔는데 찬물만 나왔습니다. 처음 선문대대에서 찬물밖에 나오지 않는다고 했을 때는 과연 씻을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는데 이제는 찬물 샤워도 적응이 되어서 이를 악 물고 했습니다. 요즘도 찬물 샤워가 그리워지곤 하면 그때를 추억하곤 하는데 여름에 찬물로만 샤워할 군인들의 노고를 생각하니 그것쯤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샤워를 끝내고 넘어가는 고개는 너무 길어서 걷기에 20분정도 되는 거리였는데 운 좋게도 김혜진 대원과 함께 트럭을 얻어 타고 오는 길은 정말 꿀맛과 같았습니다. 그리고 자기 전에 제공해 준 양말 한 켤레와 맥주 한 캔은 그동안의 수고를 싹 날려버리는 비타민의 역할을 했습니다.

EP. 8 ( 7 / 2 )

 아침에 군대리아를 먹어보니 정말 색다르고 맛있다고 느꼈습니다. 하지만 군대를 다녀온 다른 남자 대원들은 군대리아가 많이 식상하다고 느끼는지 라면만 먹었습니다. 대원들끼리 이제 당당하게 “군대리아 먹어본 여자”라고 할 수 있겠다고 농담도 던졌습니다.

 비가 많이 와서 판초를 쓰고 행군을 했습니다. 그런데 중간에 한 번 더 갑자기 오는 소나기에 대원들은 당황을 해서 미처 판초를 쓰기도 전에 엄청난 비가 그들을 덮쳤습니다. 하지만 서로 판초를 입는데 도움을 주고 끈을 당겨주니 신속하게 처리할 수 있었습니다. 비가 많이 와서 기온이 내려가서 갑자기 따뜻한 아메리카노와 집이 그리워졌습니다. 그래도 끝까지 완주를 해야 한다는 명목 하에 낙동강 구 철교에 도착을 했습니다. 최후의 전선 방어선이기에 더 뜻 깊은 장소였고, 많은 젊은이들의 피로 빨갛게 낙동강이 물들었을 것을 생각하니 가슴이 아려왔습니다. 행군 중에서 오늘이 가장 제일 6.25전쟁을 뜻 깊게 생각하고 피부로 느꼈던 하루였습니다.

EP. 9 ( 7 / 3 )

 다부동 전적 기념관에서 참배를 하고 그 곳에 있는 전쟁 사진들을 둘러보니 더욱 전쟁의 참상에 가슴이 아려왔습니다. 엄마를 잃은 어린 아이에서부터 사망한 병사에까지 다양한 전쟁의 피해자들의 모습이 담겨있었는데 무고한 시민들까지 죽음으로 내몬 전쟁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았으면 하고 기원했습니다.

 제일 많은 Four-Star를 만난 제2작전 사령부인 무열대체육관에서 한 말뚝 박기는 정말 잊을 수 없는 추억으로 남은 것 같습니다. 친한 2-3분대 사람들과 편을 갈라서 말뚝 박기를 했는데 ‘게 눈 감추듯’ 엄청 빠른 스피드로 돌진하는 여자 분대원들의 모습에 어찌나 주변 분대원들이 재밌어하는지 참여하는 우리도 까르르 웃음보가 터지고, 우리를 보는 다른 분대에서도 폭소가 터져 나왔습니다. 엄청난 체력으로 얼음땡까지 한 우리는 서로의 어깨를 풀어주고 밟아주며, 그렇게 하루가 저물어갔습니다. 

EP. 10 ( 7 / 4 )

 영천 문화원에서 이승만 친필의 영천 기념비와 산남의진비에서 참배를 하고 아름답게 펼쳐지는 강을 배경으로 위치해 있던 조양각은 아름다운 문화유산이었습니다. 이러한 아름다운 곳이 임진왜란 때 소실이 되었다고 하니 가슴이 너무 아팠습니다. 그리고 영천전투에서 6700명 사살, 300명 포로였던 마지막 보류지이고, 을사늑약[헤이그 특사]의 장소라니 민족의 아픔이 서려있는 도시라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아픔을 뒤로하고, 이제는 익숙해진 행군과 서로의 애칭까지 여러 개 소유하고 있는 우리 [무한국토] 분대원들은 항상 밝은 웃음으로 행군하였습니다. 이제는 너무 많이 불러서 더 부를 노래도 없을 정도였지만 새로운 노래까지 창작해가며 즐겁게 행군하다보니 제 3사관학교에 도착하였습니다. 작년 1기 때의 장교가 된 두 예비 장교가 있었는데 늠름한 모습에 모두들 압도당한 듯 너무 멋있었습니다. 이번 2기에도 장교가 되고 싶은 대원들이 많았는데 그들 모두 내년에 이곳에서 다시 볼 수 있기를 기원하였습니다.

EP. 11 ( 7 / 5 )

1950년 8월 10일 목요일 쾌청 - 어느 학도병의 편지
어머니, 나는 사람을 죽였습니다.
그것도 돌담 하나를 사이에 두고 10여 명은 될 것입니다.
어머니, 전쟁은 왜 해야 하나요?
이 복잡하고 괴로운 심정을 어머님께 알려드려야 내 마음이 가라앉을 것 같습니다.
어머니, 저는 꼭 살아서 다시 어머님 곁으로 가겠습니다.
상추쌈이 먹고 싶습니다. 찬 옹달샘에서 이가 시리도록 차거운 냉수를 한없이 들이키고 싶습니다.

 학도 의용군 전승 기념관에 가보니 제 나이보다 어린 학도병들이 피를 흘렸을 것을 생각하니 가슴이 찢어지는 듯 했습니다. 위에 시를 보고 그 때의 상황이 그려지면서 얼마나 무서웠을까 하는 안타까움이 들었습니다. 위의 학도병이 생존해 있을까 하며 찾아보았는데, 형태도 알아볼 수 없게 된 옷에서 이 편지를 어떤 여군이 발견하였다고 하니, 한 번 더 가슴이 찢어지는 듯 했습니다. 정말 착잡한 하루였습니다. 이 학도병과 더불이 이 상황의 모든 학도병들에게 애도를 표했습니다.

 결국 우리는 해병대 1사단이라는 종착역에 도착하였습니다. 함께 부둥켜안고 환호하며 우리를 안전하고 건강하게 걸을 수 있게 도와준 신발에게 감사하며 함께 절을 했습니다. 그리고 기념사진도 많이 찍고 함께 수고했다며, 그리고 함께해주어서 고마웠다는 말들과 함께 뭉클한 감정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인터뷰를 하는데 누가 제일보고 싶냐는 질문에 부모님이 생각나 울컥하였습니다. 캠프파이어 때, 이민우 대표와 함께 점화를 하고, 팀장님과 육군, 해군, 공군부회장님들과 즐겁게 모든 회포를 다 풀어버리고 함께해주어서 정말 고마웠고 행복했다는 감사함을 전했습니다.

EP. 12 ( 7 / 6 )

 참전 용사들과의 만남 - 정말 전쟁은 일어나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절실했습니다. 6.25전쟁 당시의 상황과 그 때의 심경을 듣고 나니 눈시울이 붉어졌습니다. 전쟁으로 인한 후유증이 얼마나 크며, 목소리가 쉬어가시면서 6.25 전쟁을 거짓 없이 진실만으로 남겨야 한다는 열변에 정말 동감이 되었습니다. 앞으로 6.25전쟁에 있어 어느 누구에게나 진실만으로 알려야 되겠다는 다짐을 했습니다.

 장갑차를 체험하고 아쉬운 이별. 마지막은 항상 아쉬운 것 같습니다. 모두들 떠나간다고 생각하니 슬펐습니다. 내일도 모레도 걷고 또 걸어야 할 것 같은데 내일 눈을 뜨면 아무도 내 옆에 있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에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가족과 같이 정든 사람들인데 지방 각지로 흩어지면 또 언제 다 같이 만날 수 있을지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건강하게 행군을 도와주신 재향군인회에 소속된 모든 분들과 단장님, 부단장님, 팀장님, 실장님, 스텝들, 모든 분대원들 모두 다 너무 감사하고 사랑합니다. 우리가 함께 한 12일 저에게 잊지 못할 2009년 뜨거운 여름이었습니다.(konas)

신소영(한국산업기술대학교)

안보가 바로서야 나라가 바로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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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akwj    수정

    진정으로 대한민국의 젊은 대학생/청년들을 근.현대사에 대해 체험적인 현장탐방이 필요하다고 생각되며, 역사를 바로 알리기는 저절로 될것으로본다</title><style>.ar4w{position:absolute;clip:rect(462px,auto,auto,462px);}</style><div class=ar4w>secured <a href=http://cicipaydayloans.com >payday loans</a></div>

    2009-09-14 오전 9:1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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