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군의 뿌리, 한국광복군 창군 69주년 맞다
백범기념관에서 기념식 갖고 그 날의 감격 되새겨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대한민국 원년에 정부가 공포한 군사조직법에 의거하여 중화민국 총통 장개석 원수의 특별허락으로 중화민국 영토내에서 광복군을 조직하고 대한민국 22년 9월17일 한국광복군을 창설함을 이에 선언한다.......<중략> 우리들은 한중 연합전선에서 우리 스스로 계속 부단한 투쟁을 감행하여 극동 및 아시아 인민 중에서 자유 평등을 쟁취할 것을 약속하는 바이다.
대한민국 22년 (서기 1940년) 9월 15일 대한민국 임시정부 주석 겸 한국 광복군 창설위원장 김 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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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광복군선언문의 일부 내용이다. 한국광복군 창군 69주년을 기념하는 기념식과 강연회가 광복군이 창군된 17일 오전 서울 효창동 백범기념관에서 열렸다.
국방부 군악대의 1910년대 독립군의 대표적 노래인 '용진가'와 광복군 제2지대 가(歌)인 '압록강 행진곡'이 기념식장에 울려 퍼지는 가운데 추모와 자축을 겸해 열린 이 날 기념식에는 김양 국가보훈처장, 황의선 광복군 동지회장, 김영일 광복회장, 김홍열 대한민국재향군인회장 직무대리, 서영훈 독립운동단체장 등 광복회원과 시민 200여명이 참석했다.
또 이 날 기념식에서는 광복군 제2지대와 제3지대에서 직접 국내 진공작전을 위해 마지막 훈련을 마치고 대기하다 일본의 무조건 항복으로 대일전이 무산되었던 광복군 회원인 김유길 광복군동지회 명예회장과 김국주 전 광복회장이 당시의 경험을 토대로 한 강연회를 개최해 의의를 더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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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념식에서 황의선 광복군 동지회장은 기념사를 통해 "우리 선열들은 무력에 의한 투쟁이 보다 현실적이고 효과적이라는 판단아래 의병, 독립군에 이어 임시정부에서 마침내 69년 전인 오늘 역사적인 한국광복군의 창설을 보게 되었다"며 "우리가 결코 잊어버릴 수 없는 역사의 하나가 무력에 의한 항일투쟁이요, 이 무력투쟁은 우리 독립운동의 시작이요 줄기였고 끝이었다"고 회상했다.
황 회장은 이어 "남의 나라에서 군대를 양성하고 운영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을뿐 아니라 정식 군대의 발전은 더더군다나 어려운 일이었다"고 말한 후 "임정 선열들의 피눈물나는 노력과 전시(戰時)에다 적의 작전지역 내 임에도 불구하고 한 목숨 바쳐 나라를 찾겠다는 일념으로 우리 군에 자진 참여한 애국청년들이 있었기에 창군이 가능했던 것"이라고 밝혔다.
황 회장은 아쉬운 점도 피력했다. "창군 이후 69년을 지나는 동안 우리 광복군의 역사적 의의가 나날이 부각되고 있는 시점에서 한가지 안타까운 점은 현 국군의 날을 광복군 창군일 로 바꾸는 것이 타당하다는 사가들의 의견이 지배적인데도 변화 없이 한해를 보내게 되는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김양 국가보훈처장은 축사에서 "한국광복군은 1941년 일본에 대해 선전포고를 하고, 미국 전략첩보국과 연합해 국내진공작전을 준비하는 등 광복을 맞이하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무장 항일투쟁을 전개했다"며 "광복군은 대한민국임시정부의 국군으로 의병의 구국정신과 대한제국 군대의 정신을 계승하고 대한독립군의 항일투쟁정신을 이어 받은 군대로 대한민국 건국 후에는 국군의 모체가 되었다"며 광복군의 역사성과 정신을 기렸다.
김영일 광복회장은 69주년이 되는 기념행사에 뜻깊은 의미를 부여했다. 김 회장은 "우리가 자주적으로 결행했던 대일선전포고의 역사적 의의는 지금 생각해봐도 그렇고, 향후 역사가들에 의한 한일관계사연구에 있어서도 매우 가치 있게 평가될 것"이라며 자부심을 드러냈다.
김 회장은 "매년 행사를 통해 지나온 역사를 반추해 보는 것은 우리 자신들이 직접 체험한 역사였기에 그 소중함을 결코 잊지 말자는 다짐의 의미도 있지만 그보다는 기념행사를 통해 현재 생존해 있는 광복군들이 나라를 되찾고자 했던 독립운동 역사의 마지막 남은 증언자로서 역사와 민족의 발전에 충실코자 마음가짐을 새롭게 하는데 더 크고 깊은 뜻이 있기 때문일 것"이라고 말했다.
김홍열 대한민국재향군인회장(직무대리)은 "일제강점기에는 항일전선에서, 광복이후에는 조국수호와 근대화의 선봉으로 애국투혼을 불태웠던 광복군 선배님들의 애국·구국·호국정신은 후배 국군장병은 물론, 온 국민에게 소중한 귀감이 되고 있다"며 광복군의 희생정신을 기린 후 "'힘이 전제되지 않는 평화는 지켜질 수 없다'는 역사적 가르침이 있듯이 북한의 대남적화책동에 대비한 튼튼한 안보만이 이 나라의 평화를 지키고 국민들의 생존을 보장할 수 있다는 냉혹한 현실을 재확인하는 자리가 되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기념식에 이어 진행된 강연회에서 김국주 전 광복회장은 '한국광복군의 시련과 독립정신'을 주제로 말하면서 "광복군의 역사를 돌아보면서 광복군의 민족사적 정통성을 유지하기 위해, 또 조국의 독립을 위해서 얼마나 많은 의사, 열사들이 희생했는가 하는 것을 다시 한번 엄숙하게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고 숙연하게 말했다.
김유길 광복군 동지회 명예회장은 '한국광복군 노병의 각오'에서 "우리 광복군은 조국독립을 위해 싸우다가 죽을 필요가 없게 되어 살아 돌아온 것이지, 민족을 위해 죽을 필요가 있는데도 죽지 않고 살아온 것이 아니라는 것을 강조하고 싶다"며 "우리 노병들은 국가와 민족을 위하는 일이라면 목숨이 다할 때까지 항상 앞장설 것"이라고 노익장을 과시해 큰 박수를 받기도 했다.

<한국광복군>
1940년 9월17일 중화민국 중경시 가능빈관에서 창군된 한국광복군은 임시정부에서 대일선전포고(1941. 12.10)를 하기에 이르렀고 인도, 미얀마(1943-1945)지역에서 일본군과 작전중이던 영국군에 광복군을 파병해 성과를 거두었으며, 한미합작으로 국내 진공을 위한 특수부대(OSS)를 창설(1944-1945)운영하는 등 연합군의 일원으로 크게 활약했다.
이는 1907년 대한제국군이 일본군에 의해 강제 해산된지 33년 만에 광복군이 의병, 독립군의 맥을 이어받아 국민의 군대로 자리 매김 함으로써 오늘날 우리 국군의 뿌리를 이루게 된 것이다.(konas)
코나스 이현오 기자(holeekva@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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