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인택, "참전용사 숭고한 희생, 영원히 잊지 않을 것"
'UN군 참전용사 재방한 행사' 만찬...참전 노병 자작시 낭송으로 고귀한 희생 되새겨
우리는 거의 잊혀졌고,
우리가 어떻게 싸웠는지
기억하는 사람도 없습니다
세월이 흐르면서 우리 전우들의 숫자도 줄어들고 있지만,
아직도 우리를 기억해달라고
야단을 떨지 않습니다
그러나 한국전이란 엄청난 현실을 겪은
우리를 기억해 주기바랍니다.
6·25전쟁을 참전한 외국의 노병은 잊혀져가는 자신들의 희생과 헌신을 이같이 시로 승화시켰다. 6·25전쟁 60주년을 맞아, 국가보훈처(처장 김양)와 재향군인회가 주최하는 'UN군 참전용사 재방한 행사' 만찬에서 참전용사의 답사에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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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사를 한 예비역 美 해군 소령 로베르토 J. 프린실라(Roberto J. Prinselaar)씨는 "전쟁의 기억에서 오는 고통을 경감시키기 위해 마음속 깊은 곳에서 시를 쓰기 시작했다"면서 자작시 '한국'을 낭송해 참전용사들의 고귀한 희생을 되새기게 했다.
또한, 프린실라씨는 "한국정부와 보훈처, 그리고 재향군인회를 비롯한 한국국민들에게 우리를 환대해 주신 것에 대해 감사하다"며 오히려 고마움을 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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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일 오후 6시, 롯데호텔(서울 잠실) 홀에서 진행된 만찬에서 통일부 현인택 장관은 이같은 답사를 미리 예견했는 듯, "오늘날 우리가 누리고 있는 자유, 평화와 번영이 대가없이 주어진 것이 아님을 대한민국 국민들은 잘 알고 있다"면서 "여러분의 숭고한 희생을 영원히 잊지 않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대한민국의 영원한 친구"라고 환영사를 통해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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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현 장관은 올림픽, 월드컵, 금년 11월 G20정상회의 유치를 언급하면서 "이 모든 것들 또한 60년전 여러분들이 보여준 고귀한 희생정신이 없었다면 이룰 수 없는 일"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아울러 현 장관은 "(대한민국은)세계 최초로 도움을 받던 가난한 나라에서 다른 국가들에 도움을 주는 나라로 거듭났다"며 "대한민국의 성공의 역사에 대해 말씀드릴 수 있게 되어 무척 감격스럽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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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 재향군인회 김홍열 부회장은 "위대한 헌신에 마음 속 깊이 감사한다"고, 6·25전쟁참전유공자회 박희모 회장은 "6·25전쟁때 여러분들 은혜를 영원히 잊지 않겠다"고 건배사를 통해 고마움을 표시했다.
이날 행사에는 6·25전쟁 당시 UN군의 일원으로 참전한 미국과 태국 2개국 참전용사와 그 가족 80여명이 초청됐다. 지난 10일 입국한 참전용사들은 5박 6일 동안 전적지와 참전기념비 방문, 국립묘지 참배, 민속촌 견학 등의 일정을 마친 뒤 오는 15일 출국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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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6·25전쟁 당시 미국은 참전국 중 가장 많은 178만여 명의 병력을 파병했으며, 약 37,000명이 산화하는 등 13만 7천여 명의 인명손실을 입었다. 특히, 장진호전투에서는 40km가 넘는 협곡지대를 겹겹이 에워싼 중공군을 상대로 수많은 인명손실을 감수하면서도 효과적으로 적의 공세를 저지, UN군의 반격의 기틀을 마련함과 동시에 이후 전쟁에서 UN군이 주도권을 잡는 데 큰 역할을 했다.
태국은 아시아에서는 가장 먼저 지원의사를 표명, 약6,300여명의 병력을 파병했다. 태국군은 치열한 전투뿐 아니라 추위와도 싸워야 하는 이중고를 겪으며 129명의 전사자를 포함해 1,270여명의 인명손실을 입었다. 특히, 연천 서북쪽의 포크찹 고지 전투에서는 세 번에 걸친 중공군의 공격을 백병전과 역습으로 물리치며 끝까지 고지를 사수, 다른 참전국으로부터 “작은 호랑이”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다음은 이날 만찬장에서 낭송된 프린실라씨의 시 '한국' 전문이다.(konas)
코나스 강치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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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로베르토 J. 프린실라(Roberto J. Prinselaar)-
예비역 美 해군 소령
우리는 우리가 겪은 전쟁에 대해
많은 말을 하지도 않았고
우리를 기억해달라고
법석을 떨지도 않았습니다
그러나 한국전이란 엄청난 현실을 겪은
우리를 기억해주기 바랍니다
우리는 의무를 다했지만
승패가 결정되지 않고 휴전이 됐습니다
전쟁이 승리로 끝나지 않은 것은
우리가 선택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우리는 찌는 듯한 여름과 살을 에는
겨울을 보냈습니다
압록강에서부터 후퇴하면서 우리 발가락은
동상으로 검게 변하였습니다
밤이면 적들이 피리를 불며
파도처럼 몰려왔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거의 잊혀졌고,
우리가 어떻게 싸웠는지
기억하는 사람도 없습니다
세월이 흐르면서 우리 전우들의 숫자도 줄어들고 있지만,
아직도 우리를 기억해달라고
야단을 떨지 않습니다
그러나 한국전이란 엄청난 현실을 겪은
우리를 기억해 주기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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