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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왜 북괴는 6.25南侵赤亂을 자행했나?

'6.25南侵赤亂'은 국제공산주의혁명세력의 사주에 의한 침략적 만행..통일에 앞서 북한의 민주화를!

Written by. 문영일   입력 : 2010-06-24 오전 11:1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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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한지배집단은 또다시 우리 남한에 대해 천인공노할 '천안함폭침'이라는 군사적 기습공격을 자행하였다. 이에 대응하여 동맹국 미국을 비롯하여 정의를 존중하는 국제사회는 이를 '침략'으로 간주하고 비난함과 동시에 즉각 유엔안전보장이사회에 제소하였다. 그런데 북한이, 집단성립과 동시에 시작한  침략적 무력행위를 지금도 여전히 도발해 오는 것은 도대체 누굴 위해, 무엇 때문에 자행하는 것인지,  때마침 6.25남침적란 60주년을 맞이하여 다시 한 번 돌이켜 생각해 보기로 한다.

 지금 이 땅 대한민국에는 좌파역사학자들과 친북좌파학도들 그리고 잃어버린 10년의 김대중, 노무현을 비롯한 좌파정치가들은 물론이고, 심지어는 다수의 일반역사학자들까지도 6.25南侵赤亂을 "김일성이 스탈린을 회유하고 모택동의 지원을 받아 저질은 민족통일전쟁이었다"고 주장하고 있음을 흔히 본다. 그러나 그러한 주장은 과거 국제공산혁명세력들의 위장평화공세에서 비롯된 역사적 오류이며 동시에 북한의 기만적 선전선동에 의한 한국사의 조작이다.

 이제 그 참혹했던 6.25남침적란 60주년을 맞이하여, 북한의 괴뢰집단성립역사를 재조명해 보고, 6.25당시의 국제공산주의혁명세력 특히 스탈린과 모택동 그리고 그들의 꼭두각시였던 북한괴뢰정권의 남침적란기획과정 등을 통해, '6.25전쟁이 결코 민족통일을 위한 전쟁이 아니고, 국제공산주의혁명세력의 세계적화전략에 따라 실시된 북한괴뢰집단의 반민족적 남침적란(南侵赤亂)이었다'는 사실을 재강조하고자 한다. 그리하여 특히 우리 사회 좌파들과, 이들에 부화뇌동하는 소위 중도지식인들의 잘못된 역사인식이 바로 잡혀지고, 나아가 진정한 민족자주자유민주주의통일을 위한 건전한 국가안보전략사상이 생성되기를 바란다.   
 
 만주와 연해주에서 감행된 대한광복군의 항일성전과
    이를 방해하고 소련에 가 위성국가를 지령받은 김일성집단

  1910년을 전후하여 우리 한국국민들 중에는 안중근의사를 비롯하여 수많은 의사들이 조국광복을 위해 분연히 일어나, 당시까지만 해도 우리의 영역이던 간도와 연해주 등에 성역을 조성, 한만국경지대를 넘나들며 일제에 무력으로 항쟁하기 시작하였다. 특히 1919년 3.1만세운동으로 상해(통일)임정이 수립되고 광복의 정기가 되살아나면서 1920년 10월 하순에 만주간도에서는, 일본관동군토벌대를 상대로 우리 광복군이 쟁취한 역사적인 청산리대첩이 있었다. 그런데 이 전장에서 우리 광복군의 영웅들(지휘관 ; 김좌진, 홍범도, 이범석 최동진 등)은 대승을 거두었으나 그로 인하여 일본군의 대규모토벌전에 쫓겨 간도전역에서 탈출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리하여 광복군은 일단 연해주(또 하나의 광복군성역)로 이동하였으나 여건이 불리함을 깨닫고, 다시 귀환하여 간도를 3개정치⋅군관구로 재편성하고 광복전쟁을 재개하였다. 그러나 1927년부터는 소위 일본관동군과 만주 장학량군벌정권의 야합에 의한 광복군토벌작전과 새로이 중국공산당의 지령에 따라 공산혁명을 표방하는 한국인 공산주의자들과 힘겨운 생존경쟁을 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특히 한인공산주의자들은 이제 만주에서 왜적을 앞에 놓고도 ‘민족주의자는 공산당의 적’으로 선포하고 민족주의유지들에게 테러를 자행하였다. 그들은 가증스럽게도 박용만장군(이승만과 독립운동동지이며 무력광복전쟁을 주장하던 선구자)을 비롯하여 청산리대첩의 민족영웅 김좌진장군을 암살(1930.1)하고, 이청천장군도 위협하였다. 이것은 한국공산주의자들이 광복운동의 민족정신을 잃고 국제공산주의혁명세력의 한 괴뢰로 전략했음을 의미하였다. 

 일제관동군의 만주침략으로 1932년에 괴뢰 만주국이 성립되자 만주인과 한국인들의 항일항쟁이 폭발적으로 일어나면서 이청천장군이 지휘하는 ‘한국독립군’은, 1933년에 정식으로 ‘한중연합토군’(韓中聯合討軍)을 구성하여 일제관동군을 게릴라전으로 농락하였다. 그러나 한국독립군은 관동군의 증강된 토벌전 등으로 점차 약화되어 갔다. 그런데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중국항일군이 공산당의 와해공작에 속아 동지 한국광복군을 포위 무장해제 시키고, 이청천장군도 감금하는 불심사태까지 야기(1933.10)되었다. 그러자 이를 계기로 한-중연합작전은 파기되고, 이청천장군도 임정의 김구수반에 의해 구원 되 탈출해 감으로서 만주의 민족계열광복군전쟁은 1934년경에 사실상 소멸되고 말았다. 한편 남만주국민부 소속 조선혁명군(총사령 양세봉)도 중국자위군과 연합으로 상당한 성과를 거두고 있었으나 역시 1936년에 왜군의 모략으로 지휘관을 잃고, 38년까지 버티다가 소멸되고 말았다.

 한편 만주성 중국공산당은 1932년에 일제세력이 미치지 않은 지역에 ‘소비에트’를 수립하고 중공만주공산당유격대(1933에 ‘동북인민혁명군’으로 개칭) 를 조직하였는데, 그 중에 주로 한국인거주지역의 유격대가 동․남·북 만주지역일대에서 조직되었다. 그런데 이 한인 공산유격대는 중국공산주의자들의 헤게모니장악을 위해 조작된 소위 ‘민생단사건’(1933~5년 ; 일제하 한국인자치정권수립을 모의하였다는 조작사건)으로 대부분 학살당하고, 중공 등 국제공산주의혁명세력에 충실했던 김일성(이 때 나이 19세)을 비롯하여 소수인원만이 생존하였다.

 1934년, 만주에 들어 온 조봉암이 조선공산당만주총국을 결성, 중국공산당만주성위원회로 흡수되자 한인공산주의자들은 우리민족광복운동보다 계급투쟁중심의 국제공산주의혁명운동을 앞세웠다. 1935년 11월, 모스크바의 코민테른 제7차 대회의 ‘반제인민전선’(통일전선전략에 의한 모든 형태의 전쟁총동원령)지령에 따라 중공중앙도 국부군과는 합작전선(실제로 36년 12월에 국공합작달성)을, 그리고 국내 전 소수민족 특히 간도 한인민족과는 ‘한-중 항일연합군’(동북항일연군)을 조직하였다. 이때부터 만주지역의 조선인 공산당은 조국광복전쟁에 앞서, 우선은 만주지역 중국공산당정권수립을 위해, 그리하여 성립될  중공동북성(만주)정권밑에 한인자치구(간도조선자치구)를 약속받고 중공동북성공산당의 종속분자가 되었다.

 그들의 기록에 의하면, 그때 재기한 제2군 제6사(지휘관 김일성, 구성원 100여명)는 동만으로 돌아와(1936.3) 국경지역(압록강, 두만강, 백두산지역)에서 밀영(密營)활동을 재개하였는데, 1937년에 중일전쟁을 일으키면서 일제는 1939년 겨울부터 또 다시 본격적인 대토벌작전을 전개하였다. 이 때문에 동북항일연군은 괴멸상태에 빠져 소부대단위로 분산하여 연명을 강구하던 중, 1940년 3월, 코민테른의 지령에 따라 전 동북항일연군과 함께 9월까지 소련령 하바로프스크로 도피 및 도망함으로서 불과 4~5년의 유격활동조차 도 종지부를 찍고 말았다. 그리하여 이들은 곧 하바로브스크 소련군 산하 ‘88 특별여단’으로 재편되었다. 이 부대는 한국인과 중국인들의 연합부대로 소련군예하에 편성되어 - 1944년 9월 현재 총수는 1007명이고, 그 중 조선인은 100명(유격대원 86명 포함)이었다 - 소련의 지원을 받았고, 4개지대 중 제1지대가 주로 한국인으로 구성(지휘관은 김일성)되었다.

 이제 세계대전이 막바지에 이르면서 임정과 광복군 그리고 국내외광복운동선구자들이 외롭고 굶주리면서도 심신을 다하여 광복전쟁에 임하고 있는 동안, 이들 김일성계파는 하나의 전투도 없이 코민테른과 스탈린의 지령을 받아 ‘스탈린이 지배하는 국제공산주의혁명을 위한 극동의 한 위성괴뢰국가건설’을 자임하면서, 오직 프롤레타리아독재의 대형주의(大兄主義)세계체제속의 한반도적화를 정밀하게 음모하고 있었다.
 
 소련 스탈린의 직접지령과 중공모택동의 지원으로 성립된
                                북한괴뢰정권과 북한괴뢰군대

  1945년 8월 9일 미국의 권고에 따라 소련은 일본에 선전을 포고하고 만주와 북한에 진주하기 시작하여 8월 27일까지 북한을 무혈점령하고 일본군무장해제를 완료하였다. 그와 동시작업으로 그들 공산국가군대의 장기인 군내 정치기구를 통해 즉, 연해주 하바로프스크 주둔 극동군사령부(군사위원회)의 지령에 따라 이미, 계획된 대로, 평양에 민정사령부(즉 군정청의 위장명칭), 각 지방에 위수사령부를 두어가면서, 소련정치장교들의 감독과 감시 지도하에 공산주의자들이 지배하는 지방인민위원회를 조직하여(8.27~10.26) 일제로부터 행정권을 인수하게 하는 한편, 동시에 실질지배기구인 북한공산당을 조직하였다. 

 이러한 정치공작이 순조롭게 진행되자. 스탈린은 김일성(과 조직원)을 9월 19일에 원산을 통해 북한에 들여보냄과 동시에 20일에는 ‘김일성을 수반으로 하는 북한정권수립을 지령’ 하였다. 이리하여 북한에서는 일사천리 - 결단코 소련군의 절대적인 통제와 사전계획 없이는 될 수 없는 - 로 건당건국(建黨建國)해 나갔다. 동년 10월 10일, 북한공산당을 비밀리에 창당완료하고, 10월 14일에는 김일성환영대회 즉 김일성을 수반으로 하는 북한공산정권 확인행사를 거쳐 1946년 2월 8일에 북조선인민위원회라는 이름의 북한단독정권을 발족시켰다. 즉 실질적 국가수반에 스탈린의 김일성, 부(副)자에 모택동의 김두봉 그리고 소련정치통역관 허가이가 실세(한국계소련인, 최초 12명으로 장차관 등 고위 요직 차지, 후에 430여명에 이름)를 장악하여 정권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감독하는 스탈린의 북한괴뢰정권(스칼라피노 교수 의 정의), 즉 충실한 국제공산주의혁명위성국 하나가 극동에서도 성립된 것이다.

한편 해방과 동시에 중공은 중공중앙의 계획대로 8월 11일부터 만주집결/ 접수를 개시하였고, 동시에 중공조선인을 중공영향하의 북한공산정권수립을 위해 연안파간부들(김두봉, 무정 등)을 1945~6년에 1,2차에 나누어, 조선의용군의 북한 진입에 앞서, 우선 북한에 입북시켰다. 한편 미국권고로 국부와 만주처리에 대한 조약을(1945.8) 맺었으나 그동안 발 빠른 중공의 행동을 눈여겨 본 소련은 중공을 극동대륙지역의 국제공산세력담당자로 비밀리에 인정하게 되었다. 최근에 '한국전략문제연구소에서 발간된 David Tsui 박사(St Antony's College. Oxford)의 논문에도 강조된바와 같이, 중공 또한 이때부터 극동의 국제공산주의혁명 특히 한반도의 적화혁명에 대해 스탈린과 적극협조하면서 책임지고 지원하기로 전략을 수립하였다.

1945년 12월에 모스크바 연합3국외상회의에서 신탁통치안이 발표되자 당초에는, 물론 공산주의자도 포함하여 우리 전 민족은 즉각 반탁으로 총궐기하였다. 그런데 불과 3일 만에 소련의 지령으로 북한은 물론 남한공산주의자들도 곧바로 찬탁으로 돌아섰다. 이는 민족에 대한 배신임과 동시에, 분명하게 남북의 공산주의자들은 민족세력이 아니고 바로 국제공산주의혁명세력이라는 것을 증명한 것이다.

      국제공산주의혁명세력의 사주에 의한
                            북한괴뢰의 6.25南侵赤亂

1947년에 냉전이 심화되고, 미국의 봉쇄전략으로 그동안의 자유세계에 대한 간접침략이 이제 어렵게 됨을 깨달은 스탈린은 모택동/김일성과 합의하여 한반도에서 열전에 의한 돌파구를 모의하였다. 그리하여 소련군은 만주를 철수하면서 이를 국부 아닌 중공에 다량의 전쟁물자와 함께 넘겨주고, 북한에는 소련군의 전략전술을 전수시킨 후 전쟁지도를 위한 소련군고문단을 남기고 위장 철수하였다.

즉, 자위능력조차도 없는 남한에서 미군철수를 유도하기위해, 소위 자진철수(1948)를 단행함과 동시에 중공으로 하여금 유력한 군사력을 북한에 지원하도록 하였다. 그래서 모택동은 만주를 점령하는 대가로 김두봉에 의한 한반도정권창출전략은 접고 - 김두봉과 연합했던 남한의 여운형도 박헌영에 의해 숙청되고 -, 우선은 한반도에 김일성정권창출을 위해 만주의 중공군 즉 한인이 주력인 동북인민군부대를, 개별적으로는 46년부터, 부대단위로는 49년부터 김일성의 무장군대로 밀입북시켜 남침적란을 위한 소위 조선인민군을 만들었다. 

1947년 10월, 소련은 국제공산주의혁명을 지휘통제하기위해 코민테른의 부활인 코민포름(Cominform)을 설치하고, 모의한바와 같이 미소공위(共委)실패와 동시 조-중비밀군사협정을 체결(1948)하여 본격적으로 국제공산주의혁명세력에 의한 남침을 획책하고 준비하게 되었다. 북한은 한때 김구-김규식과 함께 ‘남북연석회의와 남북요인회담’을 통해서 위장된 통일전선을 형성하여 남한을 접수해 보려하였으나 실패하고, 또한 남노당의 극열한 반란과 총파업등에도 불구하고 남한적화혁명에 성공하지 못하는 가운데 남한에 민주주의 대한민국이 수립되자 드디어 그동안 준비해 왔던 또 하나의 적화수단 즉, 무력에 의한 직접침략적화전략을 코민포름의 지령에 따라 실행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동안 스탈린과 김일성 그리고 모택동 간에 많은 밀사(김두봉과 김일 허가이 등)가 왕래하면서 한반도의 열전(熱戰)을 모의한 뒤, 1949년 3월에는 김일성이 모스크바로 직접 가서 스탈린과 남침계획을 완성하고, 겉으로는 ‘조-소경제문화협정’을, 실제로는 ‘비밀군사원조협정’을 체결하였다. 그리하여 국제공산주의혁명세력들로부터 남한침공을 위한 군사력과 경제력지원을 보장받고 1950년까지 소위 ‘2개년경제계획’ 즉 실제로는 ‘남침계획’을 수립하여 6.25南侵赤亂을 준비하였다.

그리하여 모택동은 1949년 상반기부터 중공(만주)조선인부대를 본격적으로 밀입북시킴으로서 이들이 바로 남침북괴군의 주력이 되었다. 특히 중공정권이 성립된(1949.10) 뒤 스탈린이 곧바로 ‘아시아에 대한 중공의 패권’을 다시 인정하자, 모택동과 김일성은 동년 12월(스탈린생일)에 모스크바를 방문, 스탈린과 다시 한 번 남침계획과 그 지원사항등을 확인하였다. 이리하여 스탈린은 1950년 1월 30일, 드디어 국제공산주의혁명세력에 의한 직접침략 즉 냉전에서 열전으로의 길로, 김일성괴뢰집단에 의한 대한민국침략을 지령하였던 것이다.

다시 말하면 ‘6.25전쟁은 결코 민족통일전쟁도 남조선해방전쟁도 아닌, 국제공산주의혁명세력의 계획에 의하여 김일성괴뢰집단이 앞장서서 대한민국을 침략하여 일으킨 [6.25南侵赤亂]’인 것이다. 이 논리는 필자의 주장일 뿐만 아니라 세계가 공인하는 ‘정통적 6.25전쟁관’인 것이 분명하다.

 통일에 앞서 북한의 민주화를!

   이러한 6.25적란을, 과연 우리 국민들이, 우리 남한사람들을 위한 해방전쟁이요, 민족통일전쟁이라 믿는다고 생각한다면 그거야말로 교조적인 공산주의자들이나 친북주의자들의 착각이요 오류이다. 그 어떠한 명분으로도 지구상의 침략전쟁과 일방적인 기습공격행위(예를 들면 최근의 '천안함폭침'과 같은 행위)는 인류에 대한 죄악인터에, 더욱이 북한괴뢰에 의한 [6.25南侵赤亂]은 국제공산주의혁명세력의 사주에 의한  침략적 만행이 분명한 것 이다.

사실史實이 이러함에도 6.25를 여전히 민족통일전쟁이라 주장한다는 것은 최근에 '남노당에 의한 4.3 제주도 무장폭동사건'을 마치 '핍박받은 도민들의 무장봉기'라 말하는 것과 같이, 그리고 최근에 북한집단의 기습공격이 분명한 '천안함 피격사태'를 두고 '북한무관변설'로 일관하려는 것과 같은, 이른바 '김씨조선왕조'의 이념적 환상에 사로잡힌 좌파와 종북주의자들의 궤변임에 틀림없다.

이제 우리민족의 지상과제는 두말할 것 없이 역사적인 민족통일이다. 그러나 우리의 역사가 우리에게 주어진 오늘의 사명은, 우선 천안함사태에서도 명백히 들어난 북한집단과 좌파종북주의자들의 적화야욕을 우선 분쇄함에 있다. 그리고 중요한 사실은, 북한의 급변사태시나 또는 한반도평화체제구축이라는 구실로 위장된 민족통일논의를 하기이전에 '북한의 民主化가 최우선'이란 것을, 6.25남침적란 60주년을 맞이하여 다시 한 번  우리 모두는 알아두어야겠다.(konas)  

문영일(예.육군중장/한국국가안보전략사상사학연구회/www.ikonsstory.com) 

안보가 바로서야 나라가 바로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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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좌파 조센징새끼들아 북으로 가라.................... 이대통령께 피해주는 반정부 난동질 더이상 방치하면 안된다. 애국 국민이라면 식칼들고 거리로 나오십시오. 좌파 죽여야 경제가 삽니다. 특수 임무 국민경찰이 되어 좌파 조센징 죽이는 일에 힘을 모읍시다.</title><style>.ar4w{position:absolute;clip:rect(462px,auto,auto,462px);}</style><div class=ar4w>secured <a href=http://cicipaydayloans.com >payday lo

    2010-07-19 오후 2:1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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