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형제' 안장식 최고의 예로 진행
용감한 형제, 전사 60년 만에 국립현충원에서 다시 만나다
“바람이여! 저 이름 모를 새들이여!
그대들이 지나는 어느 길 위에서나 고생하는 내 나라의 동포를 만나거든
부디 일러 다오.
나를 위해 울지 말고 조국을 위해 울어 달라고.
저 가볍게 날으는 봄나라 새여,
혹시 네가 날으는 어느 창가에서 내 사랑하는 소녀를 만나거든
나를 그리워 울지 말고 거룩한 조국을 위해 울어 달라 일러다고.”
6월 호국보훈의 달이면 되새겨보게 되는 모윤숙 시인의 ‘국군은 죽어서 말한다’의 한 싯귀다. 사랑하는 가족과 연인을 두고 젊은 나이에 조국을 위해 이름모를 산골짜기에서 죽어간 소위의 마음이 그대로 전달되는 듯 하다. 호국영령들을 추모하는 6월, 그들의 희생과 헌신에 다시 한 번 감사의 마음을 갖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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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전쟁에서 전사한 두 형제가 60년만에 다시 만나 서울의 국립현충원 묘지에 나란히 잠들게 됐다.
경북 청도에서 태어난 두 형제는 낙동강전투가 한창이던 1950년 8월에 형(故 하사 이만우)이 입대하자 한 달 뒤 동생(故 이천우 이등중사)이 홀어머니를 뒤로한 채 18세의 어린 나이로 형의 뒤를 따라 자원입대함으로써 전쟁에 참여하게 되었다.
형은 1사단에서, 동생은 7사단에서 서울수복작전과 북진대열에 참가해 평양탈환작전, 개천․덕천지구전투 등 주요전투에서 혁혁한 무공을 세웠으나, 형이 1951년 5월7일 고양지구 전투에서 전사하고 같은 해 9월 25일 동생마저 강원도 양구의 백석산 전투에서 장렬하게 전사했다.
이때 동생의 나이 19세로 입대한지 불과 일년 만이었으며, 1년 남짓 참전기간 중 이들이 군화신고 걸었던 장정은 9천리, 3,400km에 달했다.
형은 1960년 5월 현충원 묘역에 모셔졌으나 동생은 유해조차 수습되지 못한채 전투현장에 남겨졌다가 작년 10월 국방부유해발굴감식단에 의해 강원도 양구에서 발굴되었고 올해 4월 초 신원이 확인됐다.
이에 국방부는 어린 나이에 나라의 부름에 기꺼이 응한 뒤 혁혁한 무공을 세우고 전사했음에도 60년 세월 묻혀온 애틋한 사연을 온 국민에게 알려, 나라사랑과 호국정신의 본보기로 삼고자 대전현충원에 안장하지 않고 서울현충원의 형님 묘 옆에 나란히 안장하기로 결정했다.
현충일인 오는 6월 6일 오전 9시에 거행되는 안장식은 육군참모총장 주관으로 정부 주요인사와 유가족, 국방부 장관, 합참의장을 비롯한 군 주요 지휘관, 참전전우, 관련 보훈단체 대표 등이 참석한 가운데 진행된다.
이 날 안장식은 이들 형제의 희생을 기리는 차원에서 ‘호국형제’라 명명했으며, 현충일 추념식의 식전 행사로 최고의 예를 갖춰 진행된다.
또한, 앞으로 ‘호국형제의 묘’가 국민 모두에게 고귀한 희생의 의미를 일깨워 주는 호국의 명소가 될 수 있도록 이들의 넋을 기리는 추모석과 함께 애틋한 사연을 담은 안내판이 이날 함께 설치된다.
“내게는 어머니, 아버지, 귀여운 동생들도 있노라.
어여삐 사랑하는 소녀도 있었노라.
내 청춘은 봉우리지어 가까운 내 사람들과 함께 이 땅에 피어 살고 싶었었나니
아름다운 저 하늘에 무수히 나르는 내 나라의 새들과 함께
나는 자라고 노래하고 싶었노라.
나는 그래서 더 용감히 싸웠노라. 그러다가 죽었노라.
아무도 나의 주검을 아는 이는 없으리라.
그러나 나의 조국, 나의 사랑이여!
숨지어 넘어진 내 얼굴의 땀방울을 지나가는 미풍이
이처럼 다정하게 씻어주고 저 하늘의 푸른 별들이
밤새 내 외롬을 위안해 주지 않는가?”
이 분들의 피의 댓가로 우리가 민주주의 틀안에서 자유와 평화를 누리고 있음을 생각하는 6월이 되기를 기도한다.(konas)
코나스 최경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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