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한국전쟁: 그 교훈이 아닌 것들
자신의 역사를 기억하지 못 하는 민족은 그들이 겪은 비극을 반복하고 냉혹한 국제정치의 생존경쟁에서 잊혀져 결국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다는 게 인류역사의 교훈이다. 오늘은 어제의 발자취와 끊을 수 없는 관련의 연속선에 서 있고 한나라의 국력과 발전의 역동적인 힘 그리고 전진의 의지 또한 그 민족의 역사가 길러준“민족혼”에 잉태된 비상의 기운이기 때문이다. 6.25 한국전쟁 그 61주년을 맞아 우리 모두는 이 전쟁이 무엇인가를 역사적으로 재조명하고 그 전쟁이 우리에게 남긴 교훈이 아닌 것들을 전 국민의 대 토론장에 올려 그 의미를 뼈저리게 느끼는 계기가 되어야한다.
6.25한국전쟁의 비극과 고통의 교훈을 우리 후손들에게 산 역사로 가르쳐야한다. 누가 우리의 적이었으며 죄 없는 국민이 얼마나 잔인하게 당했는가를 가르쳐야하고 유비무환의 호국정신도 가르쳐야 한다. 그리고 그 전쟁이 현재 진행 중임도 가르쳐야한다. 그런데 한 여론조사에 의하면 6.25에 관해 학교에서 배운 적이 없다는 사람이 34퍼센트이고 6.25는 일본이 한국을 침공한 전쟁이라고 답한 사람이 22퍼센트, 조선시대 전쟁으로 알고 있는 사람이 38퍼센트 심지어 고려시대나 삼국시대 전쟁으로 알고 있는 사람들이 각각 7퍼센트와 6퍼센트였다고 한다. 그리고 10-20대의 60퍼센트가 언제 6.25 한국전쟁이 일어났는지 모르고 우리를 위협하는 주적이 미국이며 이 전쟁은 우리가 쳐 들어간 북침전쟁으로 알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1950년 6.25일 북한의 남침으로 발발한 전쟁이 3년의 치열한 전투 끝에 1953년 7월 정전이 되어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는 6.25한국전쟁에 대한 우리 아이들의 역사인식이다. 이 전쟁으로 국군전사 138,000명, 실종자 24,000명, 부상자 450,000명, 그리고 포로 8,000여명이 발생했다. 북한으로 끌려간 납북자도 87,000명에 달하고 민간인 희생자가 1,000,000명에 달한다고 한다.
후손들에게 이 역사적 진실을 가르치지 않고 또 거짓을 가르치고 있는 우리는 내일이 있는 민족인가? 무엇이 두려워 이 현상을 외면하려 하는지 알고 싶다. 이 건 6.25가 남긴 교훈이 아니다. 워털루전투의 승리자였던 웰링턴장군이 후일 “워털루의 승리는 이튼 교정에서 시작되었다.”는 명언을 남겼고 1871년 프랑스를 격파한 독일의 전쟁영웅 몰트케 장군이 ““독일의 승리는 나와 군인들의 공이 아닙니다. 초등학교 선생님들의 공입니다. 이 모든 영광을 그들에게 돌립니다.”라고 하지 않았던가?
6.25한국전쟁은 북한의 김일성이 소련 스탈린의 승인과 중국 모택동의 지원을 약속 받고 남침해 온 민족상잔의 피비린내 나는 3년간의 전쟁이었고 아직도 끝나지 않은 전쟁이다. 전쟁 발발 당시 유엔(UN)은“북한의 도발을 인류평화에 대한 중대한 도전”으로 규정했고 전쟁 중 노획한 북한군의“선제타격작전계획”에도 그들의 남침기도가 분명하다.
“1994년 6월 2일 구소련의 옐친이 김영삼 대통령에게 비밀 분류되어 보관중인 김일성의 남침계획이 들어있는 서류 상자를 전달함으로서 북한의 남침임을 입증하였다.” 구 소련 수상 흐루시초프가 그의 자서전에서 남침을 시인한 것은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김일성은 소련으로부터 무기와 군사물자를 그리고 중국으로부터 인민해방군 파견을 약속받았던 것이다. 2011년 처음으로 중국은 신화통신을 통해 “1950년 6월 25일 북한군이 38선을 넘어 공격을 시작해 사흘 만에 서울이 함락된 정황을 보도”했으며 인민일보 자매지인 환구시보 영문판도 남침 설을 보도했다.
그러나 아직도 대한민국에서는 친북 좌파세력들이 북침설을 주장하고 일부 공당인 정당마저 공개적인 입장을 보류하고 있다. 서양의 일부 반한, 반전세력과 세칭 역사 수정학파들의 오류와 주장을 여과 없이 받아들이고 체내화한 친북 낭만주의자들의 마음속에도 깊숙이 자리 잡고 있다. 러시아와 중국이 남침설을 인정하자 궁지에 몰린 이들은 “남침 유도설”을 내 놓아 뜻있는 사람들의 실소를 금치 못하게 한다. 이 건 6.25가 남긴 교훈이 아니다.
6.25한국전쟁은 자유와 민주주의 그리고 인류보편적인 인권을 보호하기 위해 공산주의와 싸운 이념전쟁이다. 이 전쟁에서 일당독재의 적을 물리치고 자유와 민주주의를 지켰기에 우리는 세계 경제 10대 대국에 올라섰고 명실상부한 그리고 아시아에서 가장 역동적인 민주국가를 이룩했다. 자유가 있었기에 꿈이 있었고 꿈이 있었기에 발전이 있었다. 우리가 향유하고 있는 이 자유가 수많은 사람들의 고통과 피와 눈물 그리고 통한 위에 서 있음을 한시라도 잊지 말아야 한다.
적치 3개월 동안 서울에 살았던 사람에게 물어 보라. 군경과 공무원의 가족이라 얼마나 많은 죄 없는 사람들이 학살당했는가? 남보다 더 배우고 잘 산다고 인민재판에 회부되어 직결심판으로 처형되고 더러는 생매장을 당하지 않았던가? 그리고 지방 곳곳에서는 빨치산들이 준동하여 양민을 학살하고 관공서를 불태우며 공산주의 선전과 행동에 앞장서지 않았던가? 이들에게 자유와 인권은 그 개념부터 없었던 자들이 아니던가?
그러나 우리는 자유를 지켰고 자유민주주의 체제가 승리했다. 1917년 러시아 볼셰비키 혁명으로 시작한 공산당 70년은 막을 내렸다. 그러나 우리는 아직도 61년 전 남침하여 전쟁을 일으킨 똑 같은 사회주의 체제의 북한과 대치하고 있다. UN 안보리의 제재와 불량국가라는 오명을 듣고 3대를 이어 독재정권 유지를 위한 노력을 하면서 까지 말이다.
그러나 이 땅에는 전쟁의 폐허 위에 피땀 흘려 이룩한 경제발전과 자유를 마음껏 향유하면서 북한의 지도자를 존경하고 사회주의 체제를 미화하고 북한의 도발을 옹호하는 세칭 지성인들과 일부 언론인이 있다. 그리고 사회 각계각층에 파고 들어간 종북 세력들이 이 사회를 분열시키고 국력을 낭비하고 국가안보의식을 흐리게 하는 이념 세뇌교육을 시키고 있다.
전직 고위공직자나 소위 사회저명인사들의 말들이다.“김일성은 이순신, 세종대왕 같은 위인”,“극악무도한 미제와 한 통속이 되어 천안함 폭침을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에게 뒤집어씌우려는 이명박 괴뢰정부", "정부의 조사결과(천안함 폭침)를 지켜봤지만 0.0001%도 납득할 수 없었다.", “6.25를 전후로 해 진정한 애국자는 北으로 갔다”, “김현희는 완전히 가짜다. 이건 어디서 데려왔는지 모르지만...”, "부시가 核의혹 조작했다", “북의 연평도 포격은 이명박 정부가 초래한 것”, “주적 개념은 언어도단”, “北 군사력 유지에 전용되더라도 대북지원 확대해야 한다.”
2003 년부터 3년간 전북 임실의 한 중학교 학생들이 선생의 지시 따라 비전향 장기수들과 빨치산 추모제를 지냈다. 어린 학생들을 빨치산 근거지였던 산에 데리고 가 여기“해방구”를 선언하고 국군을 공격해 무기를 노획하고 옷을 빼앗아 입었다고 자랑했다. 그리고 “당 창건60돌, 6.15공동선언 5돌인 올해 통일은 다 됐다".“(북한)사령부를 목숨으로 수호”, 그리고“양키 군 섬멸”등의 구호를 외치게 하며 친북 이념교육을 시켰다.6) 참가학생들은 인터넷카페를 통해“우리는 미국의 속국이다.”“부시가 괴질이나 걸렸으면 하는 소망이 있다.”등의 글을 올렸고,“전교조는 이전에도‘군대는 살인 기술과 복종 문화만 가르치니 안 가는 게 좋다’'민족에 충성할 필요 없으니 국기에 대한 경례는 하지 말라’고 가르쳐 왔다.7) 조국의 수호를 위해 불철주야 노력하는 자랑스러운 우리 국군장병에게 물어보라. 이 건 6.25의 교훈이 아니다.
6.25한국전쟁은 유엔 16개국과 구소련. 중국이 참가한 우리 역사상 그 규모나 피해가 제일 크고 비극적인 국제 전쟁이었다. 들어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하는 나라와 사람들을 위해 먼 이국에 와 수많은 미군이 전사했고 유엔군이 이 땅에 묻혔다 그리고 더러는 아직도 유엔공동묘지에서 우리를 지키고 있다. 우리는 그들을 보내 우리를 지켜준 나라들과 그 부모님들에게 말로 다할 수 없는 고마움을 느끼고 있다. 그리고 고난의 결심을 한 각국의 지도자들과 군 지휘관에게도 존경과 사랑을 보내고 있다. 함께 피 흘리며 전장에서 맺은 끈끈한 정은 오늘 국제사회에서 우리의 친구요 든든한 지지자들이며 발전의 동반자들이다.
2005년 5월 친북단체들의 고문인 한 목사가「양키추방공동대책위(양키추방委)」라는 단체를 만들어 『美제국주의 침략의 상징 맥아더 동상을 7월17일에 끌어내리겠다』고 선언하고 인천자유공원에서 천막농성을 벌였다. 그리고『6.25 당시 맥아더가 들어오지 않았다면 우리는 양키의 식민지 지배를 받지 않고 살 수 있었다.“고 선언했다.
이들에겐 북한에 온 중공군과 소련군은 해방군이고 우리를 도우러 온 외국군은 침략군이다. 맥아더 장군이 없었더라면 그들은 지금 어떤 제도 하에서 어떻게 살고 있을까 를 묻고 싶다. 이 "양키 추방위" 산하에 주한미군철수본부(주미철본)등이 참여하여 평택 미군기지 이전문제 등에 실력으로 공권력에 대항했던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한. 미 동맹관계를 흔들고 미군을 철수시키면 그들이 바라는 공산통일이 온다는 게 대 전제 임은 말 할 것도 없다. 이건 6.25가 남긴 교훈이 아니다.
이상 제기한 몇 가지 문제점들이 61년 전과 똑 같은 체제아래서 보다 막강한 군사력으로 우리를 위협하고 있는 현실에 대한 보다 냉철한 대응을 촉구하고 우리의 생존을 위한 걸림돌들을 제거하여 이 땅의 평화유지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길 바란다.(konas)
* 이 칼럼은 자유지 6월호에도 게재됨.
이하우(전 서울올림픽조직위원회 사무총장, 전 대통령 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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