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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61돌-對北解法은 힘과 원칙밖에 없다

정치적·이념적 잣대에 의해 6.25의 진상과 실체가 뒤바뀌게 해서는 안 된다

Written by. 조흥래   입력 : 2011-06-24 오전 11:3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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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25전쟁 발발 61돌을 맞는다. 6.25전쟁은 구 소비에트 연방 스탈린과 중화인민공화국 마오쩌둥의 지원을 약속 받고 김일성이 일으킨 남침이다. 이것은 대한민국과 미국의 기록, 공개된 구소련의 비밀문서를 통해 그 타당성과 객관성이 증명되었다. 소련공산당의 니키타 흐루쇼프 전서기장은 그의 회고록에서 6.25 한국전쟁은 김일성의 계획과 스탈린의 승인으로 시작되었다는 점을 밝혔으며, 중국에서도 1996년 7월 한국전쟁의 기록을 남한의 북침에서 북한의 남침으로 수정하는 역사 교과서 개정을 하였다.

 결국 구소련 비밀문서의 공개에 따라 남침은 김일성이 주도한 것으로 밝혀졌고, 중국의 지원을 약속받은 것도 김일성이라는 것이 밝혀져 그동안 친북, 종북주의자들에 의해 주도된 전쟁 유도설, 내란 확전설, 이승만 주도설 등은 그 설득력을 잃었다.

 6.25는 1950년 7월27일 휴전협정이 이뤄지기까지 3년 2개월간 총과 포탄에 죽은 민간인이 244,633명이고 북한인민군과 좌익에 의해 학살당한 민간인은 122,799명(1952년 대한민국통계연감)에 달하며 납북자 수만도 84,532명이다. 한국군 전사자는 227,800명이고 미군의 전사자는 33,747명이다. 그 외 영국, 프랑스 등 참전 21개국 전사자가 4천여 명에 달한다(육사 한국전쟁사 교재 현황). 북한 인민군은 52만이 사망하고 중공군은 90만이 손실되었다. 북한 주민의 사망, 실종은 2백만에 이른다.

 아직도 끝나지 않은 전쟁-6.25이후 북한의 주요도발 사례

<도표:휴전이후 북한의 대남 주요도발 일지>

도발일자

도 발 내 용

피 해 내용

1967.1.19

해군 당포함(PCE-56함) 초계함 북한군해안포에 격침

승조원 39명 전사/실종,

부상 40명

1968.1.21

김신조 포함 30명 북측 무장공비 침투 청와대 기습

군경 7명, 민간인 다수 사망

 

1968.1.23

미국의 80톤급 푸에블로 호 나포

승무원 83명 나포

1968.10.30

울진삼척 무장공비 120명 침투(113명 사살, 7명 생포)

군경 20명 사망, 이승복 등 민간인 다수 사망

 

1969.4.15

미해군 정찰헬기(EC-121) 한국영공 정찰 비행중 북측 대공포 공격으로 추락

승무원 31명 전원 사망

 

1969.12.21

KAL기 강제 피랍

승무원 전원 북에 잔류, 승객 30명 다음해 귀환

1970년

해군 방송선 서해안 연평도해상에서 북에 피랍

 

1974년

해경 경비정 제863호가 북해군 공격으로 침몰

 

1974.8.15

북 공작원 문세광 육영수 여사 총격

육영수 여사 피살

1976.8.18

판문점 자유의 다리 도끼 살인사건

미 장교 2명 살해, 인부

8명 중상

1980.11.3

전남 횡간도 3명 침투간첩 사살사건

사망 1명, 부상 6명

1983.10.9

미얀마 아웅산 테러만행

서석준 국무총리 등 장관, 외교관, 수행원 등 17명 사망, 13명 부상

1983.12.3

부산 다대포 침투간첩 생포사건(간첩선 격침,

3명 사살)

 

1987.11.29

KAL 858기 폭파사건(공작원 김승현, 김현희)

승무원20명, 승객 115명 사망

1996.9.18

강릉해안 잠수정 침투(승조원24명 전원 사살)

군경 13명 전사, 민간인 4명 사망

1998.6.22

북 잠수정 동해안 침투(그물망 표류 9명 사살)

 

1999.6.15

제1연평해전 유발(북 어뢰정1척, 경비정4척)

해군 경비정 일부 파손

2002.6.29

제2연평해전 유발

해군6명 전사 19명 중상

2006.7.5

북한대포동 2호 미사일 발사

북한 핵 실험(10.9)

2008.7.11

금강산 관광객 박왕자씨 총격

박왕자씨 피살, 금강산 광관 중단

2008.8.27

북한 원정화 위장탈북 간첩행위

군내 장교 등 포섭

2009.4.5

대포동 2호 발사

북한 핵실험(5.25)

2009.9.6

임진강 상류 황간댐 기습방류

피서객 6명 사망

2009.11.10

대정해전 유발

 

2010.3.26

천안함 초계함(1200톤급) 북 어뢰공격

천안함 폭침 46명 전사

2010.11.23

북한군 연평도에 해안포 공격

해병2명전사, 민간인2명 사망

 휴전협정 이후 북한에 의한 무력도발은 총 470건에 납치·사망된 인원이 4,119명에 달한다. 북한은 또 정전협정을 42만5천 여 차례나 위반했다. 이처럼 우리는 61년간 철저하게 당하기만 했다. <도표>에서 보는 바와 같이 주요 도발만 보드라도 전쟁행위에 버금간다. 1968년에 발생한 1.21 사태와 울진삼척 무장공비 침투사건, 1983년 10월에 일어난 아웅산 폭탄 테러 사건과 87년에 발생한 대한항공(KAL) 여객기 폭파 사건 등 천인공노 할 무력도발 등이 그 증거이다. 미군을 겨냥한 도발도 서슴지 않았다. 1968년의 푸에블로 호 나포사건, 1969년 미 해군정찰기 격침, 1976년 판문점에서의 미군 장교 2명을 도끼로 살해하는 만행을 저질러 일촉즉발의 전쟁위기로 몰아가기도 했다.

 북한 도발을 분석해 보면 1980년대까지만 해도 육상을 통한 무장간첩과 테러 활동이 많았지만 90년대 이후에는 해상 도발과 대량살상무기를 동원한 도발로 변화시키고 있다. 예를 들어, 지난 96년과 98년에는 북한의 잠수정이 동해안을 연달아 침투하였으나 실패를 거듭하자 서해상에서의 NLL 무력화를 기도하는 도발을 본격화하기 시작했다. 1999년 6월 1차 연평해전이 발생한 이후 2002년 6월, 그리고 2009년 11월 등 세 차례에 걸쳐 해상 충돌이 일어났다. 작년 3월에는 북한이 잠수정으로 한국의 천안함을 공격해 해군 장병 46명이 목숨을 잃었고 11월에는 백주대낮에 민간인이 거주하는 연평도를 향해 무차별 포격까지 감행했다.

또한 북한은 핵을 무기삼아 체제유지를 위한 대량살상무기에 의한 협박과 위협도 멈추지 않고 있다. 지난 98년 8월 대포동 1호 미사일을 발사한 데 이어 2006년 7월에는 대포동 미사일과 노동미사일을 발사하고 지난 2006년 10월에는 첫 핵실험을 실시한 데 이어 지난 해 5월 2차 핵실험까지 실시했다.

 이처럼 북한은 지난 58년간의 휴전 기간 중 한시도 대남적화노선을 포기한 적이 없다. 6.15 공동선언에 의한 햇볕정책과 대북 퍼주기 지원은 북한의 도발을 줄이기는커녕 더 큰 도발을 불러 왔을 뿐만 아니라, 적국에게 핵무장까지 시켜준 국가 반역적 정책이었음이 여실히 들어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도 김정일을 옹호하고 권력세습을 정당화 하며 북한을 지원하라고 하는 세력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이들의 논리는 마치 ‘골목 깡패가 무서우니까 자진해 용돈을 갔다 바치자’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좌파들의 집요한 종북 마케팅 경계해야

우리는 효순·미선 두 여중생 죽음을 빌미로 한 '추모 촛불시위'를 기억하고 있다. 바로 그 전위로 나섰던 '여중생 범대위'가 시류에 따라 평택 미군기지 '범국민대책위원회'를 표방하고 나서더니, 노무현 정부가 들어서자 '보안법폐지 국민연대'를 출범시켰다. 보수 정권이 들어서자 ‘광우병대책위’로 나라를 혼란의 도가니로 빠뜨렸고 최근에 와서는 ‘천안함 미국책임론’, ‘구제역 환경오염’과 ‘반값 등록금’ 투쟁에 편승해 제2의 거리촛불광란을 기도하고 있다.

 이들 세력들의 종북마케팅과 반미운동을 위한 기획·관리는 매우 치밀하다. 전면에 노출된 '시위대 따로', 계획·지휘하는 '중추 따로', ‘행동화 그룹’ 따로 이다. 촛불 뒤안길에서 움직이는 '숨은 얼굴'은 어디에서도 보이지 않는다. 이들이 투쟁해왔던 '을지훈련 반대'는 대북 군사적 대응을 포기하라는 것이고, '국가보안법 폐지'는 대한민국 체제 전복운동에 대응하는 법적 보호 장치를 철거하라는 것이며, '맥아더 동상 철거운동'은 북한의 남침에 의해 발발한 6·25 민족 살육전쟁의 반민족성을 외세 탓으로 돌리기 위한 전술인 것이다. 천안함 의혹을 끈임 없이 제기하며 우리 국군을 피로하게 하는 것도 반미·반군 사상을 확대 재생산시켜 국력을 혼란으로 몰아가 궁극적으로 북한의 강성대국 건설의 밑거름을 제공하자는 전략에서 비롯된 것인지도 모른다.

 보수애국세력은 예나 지금이나 '명분론'에 집착하지만, 이에 반해 종북좌파들은 시위 전개에 있어서 그들의 선전술을 젊은이들의 감성에 호소하는 '정치·이념 마케팅'을 구사할 정도로 조직화되고 전략화 되어 있다.

 월남 패망 당시 월남 사회의 밑뿌리를 뒤흔들었던 계층은 전체 인구의 0.5% 안팎인 공산당원 9,500명과 인민혁명당원 4만 명이었다. 한국의 친북 좌파사상을 지닌 인구는 얼마나 될까? 2003년 모 월간지에 의하면 한국의 친북·좌익세력 규모를 전체인구의 8.95%인 4백30여만 명(핵심분자 1만2000명, 동조분자 32만 명, 뇌동분자 4백만 명)이라고 보도했었다. 이 기사는 8년 전 이야기니까 지금 그 수는 대폭 늘어났을 것이다. 남한에서의 이 같은 친북·좌익세력의 규모는 의외로 매우 심각한 의미를 지닌다고 할 수 있다.

 세계 최초로 사회주의혁명에 성공한 러시아의 경우 혁명이 일어나기 전의 공산당원 수는 러시아 인구 1억5천만 명의 0.026%에 해당하는 약 4만 명(1905년)이었다. 한 줌밖에 안 되는 공산주의자들이 치밀한 혁명 전략으로 나라를 혼란에 빠트린 후 사회주의 정권을 수립했던 것이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종북 좌파'들의 집요한 적색 마케팅을 경계해야 하는 이유이다.

 종북주의 철학 속에 김정일 추종 해바라기로 살아온 ‘정신적 386세대’들이 전략과 전술을 구사하여 ‘반값 등록금’에 불을 부처 철없는 젊은 층에 파고들어 제2의 월남, 제2의 러시아 혁명처럼 번져나갈 수도 있을 수 있음을 유념해야 한다. ‘여중생 범대위’로 시작된 종북세력들이 작금에 와서 '천안함 대책위'로 바꿔 집요하고도 끈질긴 반미·반국가 행태를 벌이는 것이 심상치 않기 때문이다.

 막강 국방력으로 대북원칙 지켜야

 6·25 당시 북한공산주의자들의 만행은 이제 직접 보고 겪은 ‘70대 80대의 흘러간 옛 이야기’로만 남아야 하는가. 젊은 세대들은 6·25 한국전쟁의 발발연도와 상대가 누구였는지조차 제대로 모르고 '공산당이든 민주주의이든 빨리 통일이나 됐으면 좋겠다'고 답한 이들이 10명중 3명 이상이라는 통계까지 나오고 있음은 그야말로 통탄할 일이 아닐 수 없다. 우리 민족에게 엄청난 희생과 고통을 안겨준 동족상잔의 비극, 6·25의 실체와 진상이 이토록 왜곡된 것은 무엇보다 정치적·이념적 잣대 때문일 것이다.

 김대중 정부의 햇볕정책은 북한당국의 '민족공조론‘과 맞물려 그간 북한에 지난 10여 년 동안 대북한 경제지원 규모는 비료와 쌀 등 모두 33억 4200만 달러 상당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금강산관광과 관련하여 북한에 건너간 금액만도 5억6800만 달러(약 6610억원)에 이른다.

 우리는 '평화비용' 명목으로 이 엄청난 경제지원을 하면서도 북한의 근본적인 변화를 이끌어내지 못하고 있다. 남북대화와 남북교류가 물꼬를 텄다지만, 북핵문제·생화학무기·120만의 군병력·엄청난 수의 장사정포를 휴전선 근접배치 등 ‘군사적 긴장상태’는 여전하다.

 6.25남침전쟁이 있은 지 61년이 지났지만, 그들의 기만과 허위에 찬 대남 전략전술과 군사적 대치상황 역시 달라진 것은 전혀 없다. 우리의 대북지원에 따라 저들이 남북대화와 교류에 응하고 있다고 해서 북한이 남침야욕을 포기했다고 보는 시각은 망발이다.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 도발을 당한 것을 두고 ‘북한에 굴복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며 선동하는 종북세력들의 작태는 결코 용서받지 못할 것이다.

 6.25전쟁은 우리가 적의 말만 믿고 안보를 게을리 했을 때 그 결과가 얼마나 혹독한가를 우리에게 일깨워주었다. 평화와 통일에 대한 막연한 기대와 열망 속에서 남북교류 빈도는 높아졌을망정, 김정일의 대남 적화폭력혁명 노선도 그대로이고, 남북한 불신과 군사적 대치 역시 그대로이다. 달리 말해 현시점의 한반도 안보환경은 61년 전과 다를 것이 전혀 없다는 것이다.

 때문에 북핵문제나 대북 정책은 오로지 막강한 힘을 바탕으로 한 원칙을 지키는 것이 첩경이다. 예컨대 주한미군의 전력 가치를 돈으로 환산하면 235억 달러 상당이고, 우리가 그 자산을 대체하려면 290억 달러(약 35조원)의 예산이 필요하며, 한반도에 유사시 미군이 동원하는 장비까지 포함할 경우 그 가치는 3470억 달러(464조원)에 달한다고 한다. 이런 막강한 전력을 이용하는 것이 과연 친미매국노이고 자주적이지 못한 것일까.

 우리에겐 다른 길이 없다. 막강한 국방력은 한미동맹과 주한미군 전력이다. 여기에 국방개혁을 성공적으로 이끈다면 북한은 더 이상 선택의 폭이 없어질 것이다. 우리 정부가 명심할 것이 있다. 대북정책은 북한이 먼저 머리 숙이고 나올 때 성공한다는 것을.(konas)

조흥래(재향군인회 안보문제연구소장)

안보가 바로서야 나라가 바로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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