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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훈이 바로 서야 안보가 바로 선다

Written by. 신원배   입력 : 2011-10-21 오전 11:0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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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18일, 이스라엘의 길라드 샬리트 상병이 텔노프 공군기지에 내렸다.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는 공항에 나가서 샬리트 상병을 환영했다. 1027명의 포로와 맞바꾼 단 1명의 병사, 이스라엘 국민은 1027명의 포로보다 샬리트 상병의 귀환을 선택한 것이다.

 단 한 명의 병사라도 지구 끝까지 쫓아가서 반드시 구해온다는 국민의 결의, 그러한 국민의 결의를 믿고 전쟁에 뛰어든 병사들, 그 병사들과 그 국민이 있기에 오늘의 이스라엘이 존재하는 것이다. 2000년 만에 잃어버린 나라를 되찾고, 불과 700만으로 1억이 넘는 아랍권과 싸우며 생존을 지키고 있는 것이다.

 최근 우리 정부는 경남 출신 6·25 전사자 김모 씨 유족에게 5000원의 보상금 지급을 결정한 바 있다. 요즈음 점심 한 끼도 5000원짜리를 찾아보기 어렵다. 하물며 나라를 위해 바친 목숨의 대가가 점심 한 끼 값도 안 된다니 소가 웃을 일이다.

 물론, 법률과 규정에 따를 수밖에 없는 공무원의 고충이 이해되지 않는 바는 아니다. 그러나 법이 현실을 따라가야지, 현실을 억지로 법에 맞출 수는 없는 게 아닌가? 신속하게 물가인상률과 이자까지 고려해 지급액을 400만 원 이상 받게 조정했다니 불행 중 다행이긴 하다. 그러나 400만 원이면 충분하다고 생각하는 국민이 과연 몇 명이나 될까?

 현재 생존해 있는 6·25 참전용사는 20여만 명이다. 그 중에서 매년 2~3만 명이 돌아가신다. 마지막 6·25 참전용사의 영결식을 치르게 될 날도 멀지 않았다. 참전용사들은 목숨 바쳐 지킨 조국이 이토록 잘살게 된 게 자랑스럽다.

 특히 수백만 명이 굶주림에 허덕이고 있는 북한의 모습을 보면 조국의 공산화를 막은 게 얼마나 다행스러운지 모른다. 그런데 이분들에게 주어지는 명예수당은 고작 12만 원이다. 손주들에게 과자 봉지 들려주기에도 빠듯한 액수다. 돌아가신 분들에 대한 예우와 보상도 물론 중요하다. 차제에 살아 계신 분들에 대한 예우는 소홀함이 없는지도 돌아봐야 한다.

 역사적으로 보면, 강대국일수록 보훈의식에 투철했다. 혹자는 강대국이기에 보훈제도 역시 잘 돼 있는 거라고 생각할지 모른다. 아니다. 보훈제도가 잘 돼 있기에 강대국이 된 것이다. 1027명을 주고도 한 명의 병사를 찾아오는 국민의식이 오늘의 이스라엘을 만든 것이다. 지구촌 끝까지 찾아가서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전사자 유해를 찾아오는 보훈의식이 오늘의 세계최강 미국을 만든 것이다.

전화위복이라고나 할까?

 5000원짜리 6·25전사자 사망보상금 논란은 우리나라 보훈제도의 취약점을 전면적으로 되짚어보는 계기가 되고 있다.

 국민소득 2만 달러가 된 대한민국이 이래서는 안 된다, 보훈 예산의 증액과 보훈처의 격상이 필요하다. 이러한 문제에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는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성서에‘친구를 위해 목숨을 바친 것보다 더 큰사랑은 없다’고 했다. 그렇다면 나라를 위해 자기 목숨을 바친 것보다 더 큰 애국이 어디 있겠는가.

 아무쪼록 나라를 위해 싸우다 돌아가신 전사자는 최고의 호국 영령으로 추앙받고, 살아남아 돌아오신 분은 국민적 영웅으로 예우받아야 한다. 그래야만 유사시에 젊은이들이 너도나도 전쟁터로 뛰어가려 할 것 아닌가. 모름지기‘보훈이 바로 서야 안보가 바로 서고, 안보가 바로 서야 나라가 바로 서는 것이다'.(konas) 
 
신원배(예, 해병대 소장. 재향군인회 사무총장)

안보가 바로서야 나라가 바로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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