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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환기에 할 남북대화

Written by. 송종환   입력 : 2011-11-30 오전 10:1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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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재 남북한 관계는 북한의「6. 15 선언」과 「10·4 선언」전면 이행 요구, 2008년 7월 11일 금강산 관광객 박왕자 씨 살해, 2010년 3월 26일 천안함 폭침, 11월 23일 연평도 포격으로 개성공단을 제외하고는 전면 동결되어 있고 군사적 긴장 고조도 계속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을 두고 북한 당국과 지난 1998년-2007년 기간 중 좌파정부의 대북정책 지지인사들은 "이명박 대통령 취임 후 남북한 관계가 긴장된 것은 이대통령의 강경 대북정책 때문‘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혁명’과 섬멸(殲滅)의 대상 한국

  이러한 주장은 전혀 사실에 맞지 않다. 1972년 8월 20일 남북대화가 시작된 이래 개시-중단-재개를 하면서 셀 수 없을 만큼의 회담과 합의 문서를 생산하였으나 이렇다 할 의미 있는 남북한 간 관계개선을 이루지 못한 것은 이명박 대통령 취임 후만도 아니고 그의 정책 때문만도 아니다.
 
 그것은 북한이 합의를 한 이후 합의 항목을 자의적(恣意的)으로 해석하여 주한미군 철수, 국가보안법 철폐와 같은 일방적 요구를 하고 우리가 이를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 대화를 중단시키면서 군사적 도발을 하는 강경태도들에 기인된다.
 
 이러한 양상은 북한이 남한을 통일혁명의 대상인 ‘공화국 남반부’로서, ‘민족해방’과 ‘인민민주주의 혁명과업’을 달성할 지역이고 섬멸의 대상으로 보기 때문이다. 이러한 대남인식에 근거하여 북한은 1950년 한국동란을 일으켜 적화통일을 기도하였으나 실패하자 ‘자주’(주한미군철수)-‘민주’(국가보안법 철폐로 공산당 활동 자유)로 남한에‘인민민주주의 정권’을 수립하여 북한 공산정권과 ‘연방제’로 통일하는 ‘평화적 통일방법’을 추구하고 있다.

 또한 북한 측은 남한에 ‘인민민주주의 정권’이 수립되지 않았을 경우 남한 정부와 평화적 통일을 논의, 달성할 수 있는 방법으로 연방제 통일과 주한미군철수와 공산당 활동 자유를 보장하는‘민주인사’정부와의 대화 등도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최근 북한 군부가 내부교양 자료로 발간한 “변할 수 없는 괴뢰놈들의 북침 야망”제하의 해설은 ‘햇볕정책’으로 남북 화해를 지향하고 대북지원을 하였던 김대중 전 대통령에 대해서도 “대통령 감투를 쓰기 바쁘게 민주투사의 너울도 다 벗어버리고 (미국)상전놈의 품에 달려가 안기였다”며 당시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을 비롯한 미국 정부 인사들과 나눴던 대화를 친미적‘추태’로 몰아갔다.

 이것은 북한이 전쟁으로 하든, 평화적으로 하든 공산화 통일 과정에  남한의 체제와 모든 지도자들은 반드시 타도되어야 할 혁명과 섬멸의 대상임을 보여주는 것이다.

 북한의「6. 15 선언」,「10·4 선언」일방적 해석과 이행 요구

   2008년 2월 이명박 정부 취임 후 북한은 “오늘의 시대는 6·15 민족자주통일의 시대”임을 강조하면서 새 정부의 이념을 초월한 실용주의에 대해 기대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3월 3일 유엔인권이사회에서 새 정부가 북한 인권 상황 개선 조치를 촉구하고 3월 26일 통일부의 청와대 업무보고에서「남북기본합의서」정신을 강조하자 즉각 반발하기 시작하였다.
 
 북한은 그 다음날 즉각 개성공단 소재 남북경협사무소의 남측 당국자 11명을 추방하고 4월 1일 이명박 대통령의 실명을 거론하면서 ‘역도’라고 비난하고 4월 5일 “민족공동의 통일강령인「6·15 남북선언」과「10·4 선언」을 떠나서는 남북관계와 조국통일과 관련된 어떠한 문제도 해결할 수 없다”고 하면서 이 두 선언의 전면 이행을 요구하였다.
 
 북한이 이명박 정부의 두 선언 전면 이행을 계속 요구하고 있는 것은 첫째 김대중 정부와 이를 계승한 노무현 정부 재임 중 이들 정부의 호응으로 주한미군 철수와 국가보안법 철폐 후 남한에 공산정부를 수립하여 북한과 합쳐 북한식 연방제 통일을 실현하고자 하는 대남전략과 통일정책을 줄기차게 전진시켜 온 성과를 고수하기 위한 것이다.
 
 둘째, 제17대 대통령 선거를 두 달 앞두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평양을 방문하여 합의한 「10ㆍ4 선언」에서 북한은 1953년 이후 한국이 실효적으로 지배해온 서해 북방한계선을 무실화하여 해군력으로 남한의 수도권을 위협할 수 있게 된 서해평화수역 조성을 원하고 있다.
  셋째, 북한이 두 선언 이행을  둘러싼 남한 사회의 갈등을 지속적으로 조장하면서 두 선언을 지지하는 남한 내 정당·단체·개별 인사들과 연계하여 반 한나라당 투쟁을 2012년 대선 때까지 끌고 나가려는 것이다.
 
「6·15 선언」과 「10·4 선언」올바른 해석으로 남남갈등 해소 후 자유민주주의 통일해야

  이명박 정부는 물론 과거 정부를 대표하였던 현재의 야당 지도자와 그들을 지지하는 학자들은「6ㆍ15 선언」과「10ㆍ4 선언」 제1항“우리 민족끼리 통일”이 주한미군철수가 아니라 민족당사자 해결이며, 제2항 연합제와 연방제 통일 관련 부분은 북한 측의‘고려민주연방공화국 통일’ 포기를 전제로 합의하였음을 분명히 함으로써 국민 여론 분열을 막는데 힘을 모아야 한다.
 
 이러한 해석을 분명히 하는 것은 김대중 전 대통령이 2000년 6월 15일 평양에서「6ㆍ15 선언」을 합의한 후 서울로 돌아와 국무회의에서 설명한 후 북한 자극을 두려워 침묵함으로써 증폭시킨 우리 사회의 갈등을 풀고 앞으로 자유민주주의 통일의 기초가 된다.  
 
 대내체제를 선진화하고 북한의 추가 군사 도발을 억지할 수 있는 능력을 강화하고 동맹국과의 관계를 긴밀히 하는 한편 인터넷 사이트 122개나 되고 법정에서‘위대한 김정일 장군 만세’를 외치는 종북 세력을 척결하여야 한다.
 
 한반도에 평화를 정착시키면서 남북한 관계를 교류·지원 →상호 감사와 보람을 느끼는 선순환 관계로 바꾸고 북한 급변사태 시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체제에 의한 ‘올바른 통일’의 기회를 잡도록 대비해 나가는 것이 오늘을 사는 우리가 할 일 이다.
 
 북한에 의한 천암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으로 인한 국민의 희생을 잊을 수 없다. 그러나 61년 전 북한의 기습 남침으로 인한 전국토의 초토화, 1983년 10월 9일 버마 아웅산 묘소 테러로 인한 장, 차관의 희생(17명 사망과 14명 부상), 1987년 11월 19일 KAL 858기 폭파테러 등이 있었을 때 아픔을 딛고 한 것처럼 더 큰 목표를 향한 전략적 사고에서 북한에 접근하고 대화를 개시하여야 한다.
 
 그 접근과 대화는 단호하고 원칙 있는 대북정책의 일관성을 유지하면서 유연하게 북한 행동 변화를 유도해 나가는 것이어야 한다. 그 하나의 방안으로 김정일 정권과 주민을 분리, 북한 주민에 다가가는 교류·협력을 하기 위해 또 2011년  5. 24 조치로 민간 기업들이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도 감안하여 민간 기업의 대북 경제협력 금지만큼은 해제하여 꽉 막힌 남북한 관계의 돌파구를 여는 것이 바람직하게 보인다.(konas) 

송종환 편집위원 (명지대 북한학과 초빙교수)

*** 이 칼럼은 미래한국위클리 407호에 게재된 내용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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