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군에 미래전 승패 달렸다
여군 창설 62주년을 축하하며
여자와 전쟁의 관계는 가깝다면 가깝고, 멀다면 먼 거리감을 갖고 있다. 전쟁 하면 으레 남자들의 몫이라고 생각한다면 상당히 먼 거리에 있다. 전쟁에서 최고의 수난대상이 여자라고 한다면 상당히 가까운 거리에 있다.
그러나 현대전에서는 남성과 여성의 구별이 없어진 지 오래다. 나라가 위태로운데 여자라고 가만 있을 수 없다는 여성들의 의지가 남녀의 구분을 없애 버린 것이다.
지구상에 공식적으로 기록된 최초의 여군은 1901년 에스파냐 전쟁에서의 여군이다. 영국에서는 1949년에 여군이 정식으로 상비군에 편입됐다. 서독·덴마크 등 유럽에서는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직후에 여군을 창설했다.
세계 최강의 여군으로는 단연 이스라엘 여군을 꼽는다. 이들은 유대 임시정부 산하 비밀조직에서 남군을 도와 이스라엘의 독립을 이뤄냈다. 독립 이후에는 아랍과의 전투에서 용맹을 떨쳤다. 그래서 이스라엘 여군의 별명은 헨(Chen : 그리스어로 여군)이다.
그러나 공식, 비공식 가릴 것 없이 여군의 역사는 우리나라가 최초가 아닐까 생각한다. 진주 촉석루에서 왜장을 끼고 푸른 강물로 뛰어든 논개, 행주산성에서 치마폭에 돌을 담아 날랐던 우리 할머니들, 나라의 독립을 위해 17세의 나이로 일제에 맞서 싸우다 옥사한 유관순 열사 등 이들이야말로 군복을 입지 않은 진정한 여군이 아닌가!
6·25전쟁이 한창이던 1950년 9월 6일, 논개·유관순·행주치마 주역의 후손들이 임시수도 부산에서 여자의용군으로 결집한다. 글자 그대로 계급도, 봉급도 없는 의용군이다. 백척간두 위기의 조국을 생각하면 어찌 여자라고 해서 호미 들고 밭만 매고 있을 수 있겠는가? 이렇게 해서 시작된 여군의 역사가 올해로 62년째를 맞았다.
환갑 하고도 2년이 지난 우리 여군은 지금까지 2만5000명의 군인을 배출했다. 현역으로는 장교 3600여 명, 부사관 4100명이 모든 병과에서 여성 특유의 섬세함으로 남성 못지않은 능력을 발휘하고 있다.
2002년 여군 육사 출신 장교가 처음 배출된 이후 해사·공사에서도 사관생도가 탄생했다. 지금은 육사 195명, 해사 128명, 공사 160명의 장교가 전후방 각지에서 복무 중이다. 여성 장군만도 8명을 배출했다.
사회에 진출한 1만8000여 여군 출신은 각계각층에서 훈련되고 조직화한 역량으로 국가발전에 기여하고 있다. 전역한 여군들은 재향여성군인협의회(회장 민병숙 예비역 대령)의 이름으로 뭉쳐 또다시 국가안보 대열에 참여하고 있다. 현재 재향여성군인협의회는 2000여 명의 회원을 갖고, 전국 시·도회에 지부를 운영하며 활발하게 활동 중이다.
통상 21세기는 여성의 시대라고 한다. 여성인력을 어떻게 활용하느냐가 선진국의 잣대가 되고 있다. 우리 군도 얼마만큼 우수한 여성인력을 영입하고 활용하느냐에 따라 미래전의 승패가 달려 있다 할 것이다.
여군창설 62주년을 850만 향군회원과 더불어 진심으로 축하하며, 전후방 각지에서 국토방위에 여념이 없는 8000여 여군의 노고에 깊은 위로를 보낸다.
대한민국 여군 파이팅! 육·해·공군, 해병대 여군 장병 파이팅!
이정호(대한민국 재향군인회 홍보실장)
*국보법개정서명바로가기 : http://konas.net/event/signature.as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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