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볕정책과 국가안보 ①
서 언
한반도는 탈 냉전기의 유일한 냉전지역이다. 북한정권이 '남조선 적화통일'을 불변의 혁명목표이자 정권의 존재사유로 추구하는 한 남북한 관계는 '이기느냐! 지느냐!'의 '제로 섬 게임(zero-sum game)'의 성격을 띨 수밖에 없다.
북한의 통치체제인 수령독재체제의 특징은 극단적 경직성을 바탕으로 한 ‘철벽성’에 있다. 수령독재체제가 추구하는 북한사회의 모습은 전당·전군·전민이 철통같이 단결해서 전일화 사회를 구축하여 촌치의 착오도 없는 철벽성을 바탕으로 수령의 완전무결한 지시에 무조건 복종함으로써 혁명과업을 완수하는 사회다.
따라서 모든 인민을 수령과 혁명을 위해 자신의 목숨까지도 기꺼이 바치는 '주체형 공산주의자'로 인간개조를 하기 위해 종교적 신앙화 수준에 이르기까지 끊임없이 사상이념 교양사업을 전개한다. 따라서 장기간 철벽통치와 철벽통제로 북한사회를 이끌어 온 결과 수령도 인민도 탈출구 없는 '폐쇄회로'에 갇혀 파국점을 향해 관성적 질주로 내닫고 있는 것이 오늘날 북한사회의 모습이다.
북한당국이 남조선 적화를 위해 구사하는 전략은 ‘통일전선전략’으로 집약된다. 한국이 햇볕정책을 구사할수록 통일전선전략의 철벽에 부딪혀 개혁·개방은 사라지고 교류·협력만 남아 아무런 변화도 없는 북한사회에 대규모 경제지원만 쏟아 붓는 결과로 귀착된다.
문제는 수령독재체제의 철벽성으로 북한사회의 변화는 극히 미미함에 반해, 자유분방한 남한사회만 급격히 변화하는 점이다. 설상가상 공산주의 특유의 정치선전과 공작이 남한사회를 침투하면서 국민의 안보불감증이 만연되어 있는 것은 오늘날 한국사회의 우려되는 모습이다.
한국이 햇볕정책에 의해 북한을 도와줄수록 전쟁방지, 평화공존, 민족동질성 회복, 북 주민과의 고통분담, 통일기반 조성 등 햇볕정책의 목표는 사라지고 군사력 증강, 핵 개발, 위장평화, 민족이질성 심화, 인민고통 가중, 적화통일 기반조성 등 통일전선전략을 도와주는 역기능을 수행할 뿐이다. 한마디로 대북지원이 철저하게 안보위협으로 되돌아오는 격이다.
"햇볕정책에 의한 대북지원이 없었더라면 북한은 중국식으로 개혁·개방 했거나 소련식으로 붕괴했을 것이다"라는 황장엽 前 노동당 비서의 언급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
결국 한국의 대북지원은 원칙을 지키면서 북한에게 군사적 긴장조성의 빌미를 주지 않을 정도의 수준에서 유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한국이 북한을 도와줄수록 수령독재를 연장시키고 핵심 지배계층의 기득권을 강화하면서 인민의 기아상태를 오히려 통치수단으로 이용하는 수령독재체제를 강화시킬 뿐임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 햇볕정책이야말로 '선한 사마리아 인의 딜레마 (the good Samaritan’s dilemma)'로 표현하는 것이 적합하다.
햇볕정책과 좌경세력확대
김일성의 3대 공작 지침
김일성의 무력에 의한 적화통일 시도가 6.25 남침전쟁이지만 미국의 참전으로 실패했다. 전후 한미동맹에 의한 주한미군 주둔으로 재침의 기회는 사실상 사라지고 특히 탈냉전 이후 주한미군의 역할과 기능이 한반도 전쟁 억지에서 동북아 평화·안정을 유지하는 균형 역할로 확대되면서 세월이 갈수록 주한미군의 철수 가능성이 줄고 있다.
김일성이 평화적 방법, 특히 선거에 의한 적화통일의 가능성에 착안한 것이 4.19 학생의거였다. 4.19 의거 결과 이승만 대통령이 물러나고 정권이 바뀌는 것을 목격하면서 남한사회에 좌파세력을 상당 수준 확보할 수만 있으면 자유민주사회의 합법적 절차인 선거를 통해서도 적화통일이 가능하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을 것이다.
김일성은 4차 당대회(61.9) 시 남조선에 지하당 조직과 간첩망 구축에 최우선 순위를 두고 대남공작을 추진할 것을 지시하면서 소위 3대 공작 지침을 시달했다. 남한의 일반국민을 대상으로 3대혁명역량 강화사업을 전개하는 것이었다.
첫째, 남한 국민에 대하여는 정신무장을 약화시키고 북한동포와의 동족애를 강조하는 반면 북한 인민에 대하여는 정신무장을 강화하고 남한 국민에 대한 적개심을 고취시키는 공작이다. 남한 국민의 1인당 국민소득이 2만불을 넘으면서 웰빙추구, 전쟁기피 사고방식이 만연되는 현상을 이용하는 정치공작이었다. 남한 국민의 자유민주주의 정체의식과 한강의 기적에 대한 자부심과 역사의식을 소멸하고 망국풍조를 조성하는데 주력하는 공작이었다.
둘째, 반 독재 민주화 학생운동을 반미 자주화 북한 정치공작과 접목시켜 ‘주사파화’시키는 정치공작이었다. 장차 학생운동이 정계입문의 ‘등용문 화’될 것과 여야불문 한국의 정치권을 장악할 것을 내다보고 학생운동의 주사파화를 통해 한국의 정계를 장악하기 위한 중장기적 정치공작이다.
셋째, 전교조 등을 종북화하고 이들 종북조직을 앞세워 초중고생을 대상으로 좌편향 의식화 교육을 통해 앞으로 한국사회의 좌경화의 주도세력으로 육성하기 위한 공작으로서 세대교체까지 내다보는 중장기 공작이다.
북한의 3대 공작 지침이 한국사회에서 기대 이상의 성과를 거둔 것은 상당 부분 좌경정부 10년 간 정부의 묵인 내지 음성적 지원이 있었기 때문에 아무런 제약 없이 종횡무진 구사될 수 있었다.
좌경정부의 햇볕정책과 좌경세력확대
김대중 정부가 들어서기 전 까지 한국사회에 좌파세력은 미미했다. 김대중 정부가 들어서면서 무조건적인 대북유화와 경제지원을 추진한 햇볕정책은 적화통일을 지상과제로 추구하는 통일전선전략의 철벽에 부딪혀 북한을 개혁·개방으로 유도한다는 본연의 목적은 사라지고, 교류·협력만 남아 무조건적 대북 퍼 주기식 지원에만 집착하는 식으로 본말이 전도되고 말았다.
1차 남북정상회담(2000.6)의 극명한 사례로 남북한간의 최대 현안인 북핵과 인권문제는 제외된 채 교류·협력의 이름으로 경제지원 문제가 주 의제로 다루어지면서 북한사회는 촌치의 변화도 없음에 반해 남한 사회에는 ‘평화 유포리아’가 난무했다.
남북정상회담을 계기로 북한의 남침가능성이 69%에서 37%로, 주한미군 지지가 89%에서 56%로 급락한 여론조사가 남한사회의 근거없는 평화무드를 반영하고 있다. 1차 남북정상회담은 친북 좌경세력이 한국사회에 진출하고 햇볕정책이 더욱 탄력을 받는 계기가 되었다.
김대중 정부의 좌파세력 확대 기도는 여중생 사망 촛불시위에서 극명하게 드러났다. 2003년 대선을 앞두고 정치적으로 민감한 시기에 반미감정을 조성하는 촛불시위가 7개월 간 서울 도심을 마비시킬 정도로 극렬히 전개된 결과 미국 국민들의 반한감정을 유례없이 격앙시켰다.
그 결과 2003년 한미동맹 체결 50주년 기념결의안이 美의회에서 부결된 것은 한미동맹의 결속력이 밑바닥 수준임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건이었으며 같은 해 미·일 수교 150주년과 미·대만 특별법 제정 25주년 기념결의안이 美의회에서 만장일치로 채택된 사실과 극히 대조적이었다. 여중생 사망 촛불시위의 반미감정에 편승하여 노무현 정부가 출범한 것은 김대중 정부 5년 간 한국 사회에서 좌파세력이 우파세력과 맞먹을 정도로 급성장했음을 보여 주는 것이었다.
탄핵역풍이 작용한 17대 총선(2004.4)에서 북한 공작당국의 반정부 민주화 학생운동의 주사파화 정치공작의 결과로서 주사파화된 ‘386 종북세력’이 대거 당선되면서 청와대와 여의도를 사실상 장악하고 법조계, 언론계, 학계 등 한국사회 요로요로에 대거 진출하면서 기득권층화 하고 정국을 주도하면서 한국사회는 ‘좌경화 쓰나미’에 휩쓸렸다.
노 정부 5년 동안 북한당국이 안보와 관련하여 한국정부에게 집요하게 요구해 온 연례적 요구사안이 대부분 실현되면서 국가의 안보체제가 상당부분 무너지고 국민의 안보의식이 크게 저하되었다.
주적개념을 삭제하고, 전시작전통제권 환수와 한미연합사 해체를 합의하고, 안기부와 공안부서 등 국가안보기구를 대폭 축소하고, 국민의 안보의식을 해이시키고, 국가보안법을 유명무실화하고, 법원의 종북단체 판결을 받은 민노당·전교조 등의 친북활동을 정부가 묵인하고, 미국의 핵우산 보호의 제거를 시도하는 등 소위 ‘민족 대단결’을 명분으로 남한사회에서 정치공작의 자유를 확보코자 하는 북한 노동당의 기도를 좌파 정부 스스로가 사실상 대행했다.
자유민주주의 정체성 확립과 종북세력 척결의 국민적 염원에 힘입어 집권한 이명박 정부는 ‘중도실용’을 표방하며 안보·이념 문제에 대해 방관적 자세를 취함으로써 386 주사파 세력이 기득권과 정계주도권을 온존한 채 2012년 대선을 맞게 되었다.
연 이은 반미 촛불시위를 주도한 종북세력이 좌파세력을 사실상 장악하고, 정통야당이 득표 차원에서 ‘반보수 진보연합’에 합류하고, 시위에 가담하면서 좌파세력의 이니시아티브를 종북세력이 쥐게 되고, 여당은 색깔론 시비에 휘말릴까 두려워 이념 문제를 회피하면서 안보가 경제의 뒷전으로 밀린 채 이면에서 북한 공작당국이 안보 분위기를 ‘원격조정’하는 상황에서 2012대선을 맞게 된 것이 심히 우려된다.
햇볕정책 추진으로 북한의 대남공작에 햇볕이 들면서 대한민국의 안보에 짙은 그늘이 드리워 졌다 할 것이다.(Konas)
김명배 (호서대학교 초빙교수, 전 주 브라질 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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