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군창설 60주년, 국난극복, 조국근대화의 주역
■ 보람과 영광의 향군60년
◆ 향군의 창설과 발전
대한민국재향군인회가 오는 10월 8일로 창설 60주년을 맞이한다. 6·25전쟁이 막바지에 이르던 1952년 2월 1일, 전시(戰時) 임시수도였던 부산에서 역사적인 창설식을 가진 이래 60년이 지난 것이다. 6·25전쟁 당시 치열한 전투가 연일 계속됨에 따라 수많은 전상자들이 발생했다. 이에 정부는 1951년 1월 12일 제1차 명예제대를 비롯해 매월 한차례씩 명예제대 조치를 시행했고, 향군 창설 직전에는 30여만 명의 제대군인이 발생하게 되었다. 이들이 바로 최초의 향군회원들이다. 30여만 명의 회원과 국방부 병무행정의 집행을 보조하는 예하단체로 출범한 향군은 60년이 지난 지금 격세지감을 느낄 정도로 발전했다. 850만 명의 회원과 13개 시·도회, 222개 시·군·구회, 3,288개의 읍·면·동회, 19개의 해외지회를 갖춘 국내 최대의 안보단체이자 명실상부한 국가안보 제2보루로 발전한 것이다.
◆ 재향군인회의 주요 안보활동
지난 60년간 향군이 우리나라의 안보에 공헌한 것은 헤아릴 수 없이 많다. 그 중 대표적인 것만 몇 가지 요약해 보면 다음과 같다.
• 재향군인의 날 제정
국민이 함께하는 향군으로 발전하기 위해서 ‘재향군인의 날’ 제정이 필요하고 판단한 본회는 세계재향군인연맹에 가입한 5월 8일을 기념일로 제정해 줄 것을 정부에 건의해 승인을 받았고, 1965년에는 이 날이 법정기념일로 공포되었다. 이 기념일은 30여년간 이어져 왔으나 2000년 12월에 개최된 이사회의에서 기존의 5월 8일이 가정의 달 및 어버이날, 그리고 농번기와 중복된다는 의견이 개진되어 심층검토 끝에 1953년 국방부로부터 ‘대한민국제대장병보도회’로 명칭이 변경된 10월8일을 재향군인의 날로 변경해 줄 것을 정부에 재건의했고, 2002년 6월19일 대통령령 17628호에 의거 오늘에 이르고 있다.
• 독도의용수비대 창설
울릉군 향군을 모태로 창설된 독도의용수비대의 맹활약은 놀라웠다. 홍순칠(당시 23세, 육군상사 전역) 독도수비대장은 울릉군 향군 초대회장이었다. 당시 일본 순시선은 6·25전쟁 혼란기를 틈타 독도를 침범하며 우리 어선들을 괴롭혔다.
이에 홍 회장은 1953년 4월 20일 지원자 10여 명과 함께 독도에 상륙, 독도를 지키면서 일본 어선들과 10여 차례 전투를 치렀다. 그 후 1년 뒤인 1954년 4월 27일 정식 발대식을 열었다. 조직과 장비 편성이 완료된 독도의용수비대의 독도 경비는 역사적 관점이나 국제법상으로 실효적 지배라는 관점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띤다.
• 향토예비군 창설의 모체
향토예비군의 모체가 향군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북한의 연이은 도발로 남북간에 긴장이 고조되던 1960년대 후반 북한은 청와대 습격을 목적으로 무장공비 31명을 침투시켰다. 1·21사태로 불리는 이 도발을 계기로 박정희 대통령은 “전국에 있는 250만 재향군인을 무장시켜 향토를 지키게 하겠다”는 결심을 했고, 향군의 조직을 주축으로 향토예비군을 조직하고 편성했다. 이렇게 창설된 향토예비군은 1968년 10월에 발생한 울진·삼척무장공비사건으로부터 강릉무장공비침투사건에 이르기까지 각종 대침투작전에 동원되어 혁혁한 전공을 세웠다.
• 총력안보운동 전개
1971년 미국과 중국이 수교를 하고, 주한미군 2만명이 철수하는 등 한반도 안보정세가 급격히 변화하기 시작했다. 이에 향군은 그해 10월에 ‘자주국방운동본부’를 설립하고 총력안보운동을 전개했다. 이듬해 2월에는 ‘자주국방운동본부’를 ‘총력안보운동본부’로 개칭하고, 시·도회별로 운동본부를 설치해 안보강연을 비롯한 총력안보계몽활동을 전국적으로 전개했다. 1975년에는 월남을 비롯해 크메르, 라오스 등이 잇따라 적화되었고, 이에 총력안보국민협의회를 결성해 강력한 안보활동을 전개했다. 향군의 총력안보운동은 국민안보의식 제고를 통한 국가안보 체제 확립은 물론 카터 대통령이 추진한 주한미군 철수 결정을 철회하는 핵심역할을 수행했다.
• 호국종(護國鐘)과 호국영현판독기 헌납
향군은 국립묘지에 안장된 호국영현들의 넋을 기리기 위해 1973년5월8일 창립21주년을 계기로 280만 회원들의 성금으로 무게2톤, 직경 122.1cm의 호국종과 종각을 제작해 국립묘지에 기증했다. 이듬해인 1974년10월22일에는 영현들의 명단을 신분별, 성씨별, 계급별로 수록한 호국용사명단 판독기를 국립묘지에 기증함으로써 국립묘지 참배객들이 분묘의 위치를 쉽게 확인할 수 있도록 했다.
• 국내 최초 전시방공호 준공
월남의 패망으로 안보정세가 긴박하게 돌아가던 1975년, 정부는 민방위기본법을 제정하고 전국적으로 민방위대를 조직했다. 이에 향군은 1976년 6·25전쟁 발발 제26주년을 맞이해 45평 규모에 1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철근 콘크리트 구조의 전시방공호를 국내 최초로 준공했다. 이 방공호는 지근탄(至近彈) 방어는 물론 화생방 오염제독, 자가발전(自家發電)의 기능을 갖춘 것으로서 전국적으로 지하방공망을 설치하는 계기가 되었다.
• 해외 안보활동
향군의 최초 해외지회는 1962년8월7일 창설된 일본특별지회로서 올해로 창설 50주년을 맞이했다. 이 지회는 1966년 7월에 정식지회로 승격되었다. 그 후 1969년에 미동부지회가 설치되었고, 1970년대에는 월남지회, 1980년대에는 중화민국지회(대만지회), 호주지회, 캐나다지회 등이 잇따라 창설되는 등 2008년까지 총 6개국 11개 지회를 창설했다. 2009년 9월 제33대 향군회장으로 취임한 박세환 회장은 ‘안보에는 국내와 해외가 따로 있을 수 없다’는 소신으로 해외지회 창설을 적극 추진했다. 그 결과 2010년 독일과 브라질, 미국서부지회를 창설했고, 2011년에는 영국과 프랑스, 뉴질랜드, 태국, 필리핀에 해외지회를 창설함으로써 향군의 해외지회는 13개국 19개 지회로 확대되어 재외동포의 안보역량을 확대하는 계기가 되었다.
• 서울올림픽 성공 지원활동
1980년대에 들어 제24회 서울올림픽 개최권을 획득한 이후 북한은 이를 저지할 목적으로 무력도발책동을 자행하기 시작했다. 이에 향군은 서울올림픽이 민족도약의 결정적인 계기가 된다고 판단하고, 5월8일 전국적으로 개최된 재향군인회 날 기념행사를 통해 향군안보대회를 개최하고 서울올림픽 지원과 국가안보태세 확립, 사회 안정 기여를 골자로 하는 결의문을 채택하고 실천에 옮겼다. 이어서 수도권과 전국 대도시에 ‘88올림픽 향군봉사단을 발족했으며 연인원 1만4천여명이 참가한 가운데 안보계도 및 홍보활동, 친절운동, 환경개선 활동 등 다양한 활동을 전개했다.
• 향군중앙회관 및 별관 건립
향군은 숙원사업이던 회관 건립을 위해 1964년부터 기금을 적립하기 시작했고 국고보조금과 사업수익금의 일부를 꾸준히 적립했으며 이러한 기금을 바탕으로 회관건립을 추진했다. 그 결과 1988년2월23일 서울 강동구 신천동에 대지 4,668평에 지상12층, 지하3층, 연건평 7,643평의 중앙회관을 건립했다. 그리고 1992년에는 본관 동쪽 1,900평 대지에 연건평 6,408평, 지상 10층, 지하 3층의 별관을 준공함으로써 마침내 숙원을 이루었다.
• 전쟁기념관 건립기금 지원
1989년 호국영령의 위훈과 충정을 기리고 전쟁의 교훈을 일깨우기 위한 전쟁기념관 건립 기념사업회가 출범했다. 이에 향군은 이사회를 통해 이 사업에 적극 협조하기로 결의했다. 그리고 각급회를 통해 전쟁기념관 건립의 취지와 목적을 전파해 참전용사를 비롯한 회원 참여를 확산시키고 소장(所藏)하고 있던 각종 자료를 헌납토록 하는 한편, 1990년 중순부터 모금운동을 전개해 당시로서는 거금인 1,200만원의 성금을 기탁함으로써 전쟁기념관 건립에 크게 기여했다.
• 호국묘지 조성 사업
향군은 호국용사와 가족들의 명예를 고양하기 위해 1994년부터 향군호국묘지 조성계획을 수립하고, 1997년 영천에서 첫 기공식을 가졌다. 영천호국용사묘지 건립사업은 착공 3년2개월만인 2000년10월31일, 11만5,036평의 규모에 납골묘 2만2천기, 납골당 3만기의 수용능력과 함께 부대시설을 완비한 가운데 준공되었다. 2001년11월30일 준공식을 가진 임실호국용사묘지는 총5만기의 수용능력과 부대시설을 갖추고 있다. 이들 묘지는 2001년12월에 개정된 ‘참전유공자예우에관한법률’에 의해 2002년 말 국립묘지로 각각 승격되었다. 이와 함께 향군은 경남 산청지역에 산청호국용사묘지 설립계획을 수립해 공사를 진행 중에 있다.
• 국가보안법 개폐 반대활동
2000년 들어서 당시 정권은 국가보안법 개폐를 추진하기 시작했다. 향군은 국가보안법 개폐문제는 국가안보에 심대한 위해를 초래함으로 절대로 좌시할 수 없다는 요지의 성명서를 발표하고 반대투쟁에 나섰다. 이와함께 당시 집권여당인 새청년민주당의 ‘보안법개정기획단’ 의원들을 초청해 보안법개정 반대 입장을 전달하고 추진유보를 촉구했으며, 새천년민주당사를 방문해 항의했다. 2000년 12월부터 이듬해 4월까지 전국 3,477개의 읍·면·동회를 시작으로 224개 시·군·구회와 13개 시·도회, 본부 전국총회에 이르기까지 보안법 개폐 저지 궐기대회를 개최하고, 3당 대표 초청간담회를 개최하는 등 강력한 반대운동을 전개함으로써 국가보안법 개폐 추진을 무력화시켰다.
• 전시작전통제권 전환 연기
지난 정권은 ‘민족 자존심의 문제’라며 2012년4월17일부로 전작권을 환수하고 한미연합사를 해체한다고 천명함으로써 애국단체의 반발을 불러 일으켰다. 향군은 전작권은 자존심의 문제가 아니라 생존권의 문제라며 전작권 전환 연기에 총력을 경주했다. 전작권 전환 연기 1천만명 서명 운동을 재추진하고 한미양국대통령에게 호소하는 등 각고의 노력을 경주함으로써 전작권전환 연기 합의를 이끌어내는 주역이 되었다. 당시 북한이 2012년을 적화통일을 달성한다는 강성대국 완성의 해로 선포하고, 천안함폭침과 연평도 포격도발 등 도발의 수위를 높여가고 있었다는 점과, 2011년12월17일 김정일의 사망과 김정은 체제의 등장에 따른 극심한 혼란기에 처해 있다는 점 등을 고려할 때 전작권 전환 연기는 한반도 전쟁억제의 핵심역할을 수행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 종북세력 척결활동
6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향군의 안보활동은 오늘까지 계속되고 있다. 이에 향군은 종북세력과의 전쟁을 선포하고 종북세력 척결활동에 앞장서기 시작했다. 향군이 종북과의 전쟁을 선포하기 이전까지만 해도 국내에서는 ‘종북’이라는 용어자체가 생소하게 받아들여지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향군은 성명서와 기고문을 비롯해 전국을 대상으로 향군 율곡포럼과 특별강연회를 개최하는 등 종북세력 척결에 앞장 선 결과 지금은 국민 대부분이 종북세력 척결 대열에 뜻을 같이하고 있다.
■ 오늘의 향군, 젊고 힘있는 새로운 60년 건설에 진력
현재 향군은 ‘젊고 힘있는 선진향군’ 건설을 목표로 100억 장학금, 200만 정회원 확보, 300억 보훈성금 달성하기 위해 ‘향군발전 1·2·3운동’을 전개하고, 수의계약 연기와 2013년 3월 완공을 위해 잠실회관 재건축을 추진하는 등 향군 도약을 위해 혼신의 노력을 경주했다. 그러나 이러한 활동들은 향군의 재정위기가 발생함에 따라 큰 난관에 봉착할 수밖에 없었다.
향군 재정위기는 국가보안법 폐기와 전작권전환에 대해 향군이 끊임없이 대립각을 세우자 지난 정권이 향군 고사정책을 구체화한데서 출발했다. 당시 향군 지휘부는 자구책의 일환으로 사업개발본부를 설립해 수익사업을 추진했으나 국제적으로 부동산경기가 침체되면서 큰 손실을 입게 되었다. 2011년8월15일 모TV방송사의 보도 이후 금융권의 압력이 가중되면서 재정위기가 확산되기 시작했다. 박세환 회장은 밤잠을 이루지 못할 정도로 고민하면서 청와대와 국회, 금융계 등 각계의 인사들을 만나 향군을 살려야 한다고 호소했다.
이러한 노력으로 향군은 최악의 위기를 넘길 수 있었고, 지금은 어려운 가운데서나마 정상을 찾아가고 있다. 이제 향군은 새로운 60년을 역사를 써내려갈 수 있도록‘젊고 힘있는 향군 건설’을 슬로건으로 재정위기 극복을 위한 종합대책을 추진하는 한편 ‘향군개혁60위원회’를 구성해 본회장 임기를 4년 단임으로 개정하는 등 새로운 개혁안을 제시했다. 비 온 뒤에 땅이 굳는다고 한다. 오늘의 재정위기는 또 하나의 새로운 향군 60년사를 써내려 나가는데 쓰디쓴 보약이 될 것이다.
이정호(대한민국재향군인회 홍보실장)
*국보법개정서명바로가기 : http://konas.net/event/signature.as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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