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주권자 병역이행 수기①〕내 안의 또 다른 '나'를 찾아서
본 내용은 2012년 병무청(청장 김일생)이 실시한 ‘외국 영주권자 병역 이행’에 대한 군 생활 수기 내용임.(편집자 주)
90분을 쉬지 않고 뛸 수 있는 박지성처럼 두 개의 심장을 갖고 있진 않지만, 내가 만약 축구선수라면 미국과 대한민국 국가대표로 모두 뛸 수 있는 자격을 갖추었을 것이다. 나는 두 개의 국적을 지닌 이중국적자이기 때문이다.
1990년 미국에서 태어나 미국시민권을 취득한 나 ‘Jinsoon Hwang’은 3살이 되었을 때 한국에 돌아와 ‘황태순’이라는 이름의 한국인으로 중학교를 다녔다.
중학교를 다니던 중 학업을 위해 다시 미국행 비행기에 올랐고, 나는 미국인 ‘J.T. Hwang’으로 10여 년의 세월을 보내며 완전한 미국인이 되어가고 있었다.
주민등록증에 새겨진 황태순이라는 이름은 내가 미국인이자 ’한국인‘이라는 것을 증명해주는 것일 뿐 나는 언어도 생활방식도 사고방식도 미국인이었다.
대학생이 되었을 때 나는 이중국적자로서 군 입대에 대한 고민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많은 이들이 나와 같은 기로에 섰을 때 기꺼이 한국 국적을 포기하고 비겁한 미국인으로 살아가는 길을 택했고, 나 역시 미국에서 학업을 이어나가고자 하는 유혹에 휩쓸릴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나에게 있어 국방의 의무는 단순한 Duty가 아닌 숭고한 사명이었고 결국 그 운명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내가 가장 존경하는 인물은 고조부이신 故황학수 장군님이다. 한국에서 보낸 어린시절, 부모님은 나를 고조부님의 흉상이 있는 현충원으로 데려 가시면서 고조부님의 전설적인 일화들을 이야기해주시곤 했다.
대한제국 무관학교를 졸업하신 고조부님은 대한제국의 참위로 근무하시던 중 일제에 나라를 빼앗기자 독립운동에 뜻을 품고 항일 무장운동을 전개하셨다.
특히 한국독립군 총사령관인 故지청천 장군의 지휘하에 부사령관으로서 독립군 부대를 이끌고 일본군 제19사단 간도파견대를 몰살시킨 대전자령 전투는 어린 시절 나에게 큰 인상을 줌과 동시에 조국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치는 대한남아로써의 일생과 애국심이 무엇인지를 가슴에 새겨 주었다.
나는 오래 고민하지 않고 미국에서의 생활을 정리한 뒤 기꺼이 한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언론매체나 인터넷, 소문을 통해서만 접해왔던 군대이기에 막연한 두려움도 있었지만 나의 국방의 의무 이행이 고조부님을 비롯한 순국선열들의 숭고한 희생에 작은 보답이라도 될 수 있기를 바랬다.
2011년 7월 5일 사랑하는 이들과의 이별, 그리고 새로운 생활에 대한 두려움과 설레임이 교차하는 훈련소에서 나는 미국인 J.T Hwang이 아닌 ‘훈련병 황태순’으로 거듭났다.
결론적으로 군 생활은 나에게 있어 큰 도전이었고, 그 과제는 나를 더욱 더 성숙하게 했다. 내무부조리, 구타 가혹행위 등 내가 알고있던 군대에 대한 막연한 선입관은 자대생활을 통해 금방 사라졌고 개인주의적이고 상하동등관계에 있던 나에게 예의와 범절, 바람직한 언행, 솔선수범, 봉사와 희생정신, 배려 등을 익히게 해주었다.
또 ‘나만 아니면 되’라는 이기주의에서 탈피해서 ‘내가 더 하자’는 이타정신을, ‘저건 불가능해’라는 나약한 정신을 ‘할 수 있다’는 강인한 정신으로 한층 도약하게 만들었다.
그렇게 1년여의 시간동안 난 매순간 열정을 다했다. 사격장에서, 연병장에서 최강의 용사로 거듭나기 위해 구슬땀을 흘렸다. 그리고 일과 후에는 나를 더욱 다듬기 위해 개인운동과 자기계발을 꾸준히 하고 있다.
이렇게 군 생활은 나에게 있어 낭비의 시간이 아닌 나를 더 강하게 만드는 시간이었고, 고조부께서 그러하셨듯이 나도 어엿한 대한민국 육군의 일원으로서 조국을 굳건히 지켜내기 위해 젊음을 바치고 있다.
일년 전 나처럼 지금 이 순간에도 많은 젊은이들이 이중국적자로서 국방의 의무를 다해야 하느냐의 기로에서 고민하고 있을 것이며, 일부는 비겁한 도피를 자행할 지도 모른다. 나는 내 선택에 단 한 점의 후회도 부끄러움도 없다.
오히려 미국과 한국의 정서를 두루 이해 할 수 있었고 군 생활을 통해 하루하루 많은 것을 배우고 나를 다듬어 나가고 있기에 나는 감히 군에 있는 지금 이 순간을 ‘내 인생 최고의 배움터’에 있다고 말하고 싶다.
그래서 많은 이중국적자들이 한국인임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오늘날 우리가 있게 해준 순국선열에 보답하는 마음을 가졌으면, 그래서 나보다 더 멋지게 국방의 의무를 다했으면 좋겠다.(Konas)
상병 황태순 (32사단 505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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