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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주권자 병역이행 수기②〕'3번 훈련병'

Written by. 노재홍   입력 : 2013-01-11 오후 5:0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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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내용은 2012년 병무청(청장 김일생)이 실시한 ‘외국 영주권자 병역 이행’에 대한 군 생활 수기 내용임.(편집자 주) 

 3번 훈련병 노재홍. 3월, 논산훈련소에 입소하는 순간 주어진 새로운 나의 신분이었다. 미국에서 대학을 다니고 사회생활을 하던 나는 더 이상 없고, 수많은 젊은 남자들 속에서 나는 정말로 생소한 계급에 생소한 관등성명을 배우는 어리버리한 훈련병들 중 하나가 되었다.

 가족들이 갑자기 그리워진 것은 중학교 시절 미국유학을 위해 공항에서 떠날 때 이후로 처음이었다. 어디에서 살았고 무엇을 하고 나이가 몇이고 사회신분이 어떤지 알 필요가 없는 곳에 들어온 것이다.

 낯선 곳에서 낯선 사람들과 생활하고 낯선 사람에게 명령을 받으며 지내게 된 나의 삶이 두렵고 막막한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조교들의 거친 말투와 갑자기 생긴 수많은 규칙은 답답하고 솔직히 비인간적이고 비효율적인 처우로만 생각되었다. "내가 이런 고생을 하려고 군대를 선택했는가?"라는 생각이 자꾸 들고 부정적인 상상이 머릿속을 뒤흔들었다.

 10년이 넘는 미국유학 생활과 함께 얻은 영주권으로 나에게는 군복무에 대한 선택(미국에 계속 남는가? 아니면 한국으로 돌아가 군복무를 하는가?)의 기회가 주어졌고, 이 문제에 대해서 많은 생각 끝에 군 입대를 결정하였다.

 영주권자원입대자라는 타이틀을 가진 나는 입소할 때부터 영주권자 소대로 들어가 나와 같은 해외자원입대자들과 훈련소 생활을 하였다. 세계 수많은 국가에서 모인 우리 소대는 이 타이틀을 가지고서 늘 똑같은 질문을 받았고 서로에게도 물어보았다.

 "군대에 왜 왔냐?" 이 질문에 우리 영주권자들은 각각 조금씩 다르지만 결국은 "대한민국의 남자이기 때문에 왔습니다." 라는 뜻의 멋들어진 답을 내놓았다. 이런 답을 내놓으면 질문했던 대부분의 훈련조교나 다른 소대 훈련병들은 '멋있다. 부럽다'는 모습을 보였다.

 몇몇은 한심한 선택이었다고 비웃거나 동정하였다. 물론 자원해서 입대하였고 남들이 보기에도 멋져 보이는 이 자원입대자라는 타이틀 때문에 나는 어쩔 수 없이 나를 더욱 포장하였고 자원입대자들 속에서 당당해 보이기 위해 애썼다.

 그러나 솔직히 그 답이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건지는 아직도 모르겠다. 그만큼 군 생활은 힘들고 특히 훈련병 생활은 앞으로도 기억에 깊이 남을 정도로 힘들었다. 그리고 반년 넘게 군 생활을 하면서 고민하고 매번 바뀌는 것이 이 질문에 대한 확고한 답이다.

 지금의 나는 대한민국 국군장병들에게 최고의 진료를 제공하는 국군수도병원의 본부근무대 병사로서 군 복무를 하고 있다. 매일같이 오는 전국의 환우들의 치료와 편의를 위해 일하는 이곳에서 나는 군대를 택한 나의 선택이 틀리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군 생활에 조금씩 익숙해지고 내가 모르던 군대라는 곳을 서서히 배워가면서 내가 변하고 있음을 느끼고 있다. 선택이었기에 더 힘들었던 군 입대, 이제는 더 이상 부정적이지만은 않다. 오히려 남은 시간을 아끼고 아껴 내가 더욱 인간적으로 성장하고 강해지길 기대하고 있다.

 대학시절의 나를 되돌아보면 늘 이론적인 수업만 가르치는 전공을 불평하고 시간을 허비하며 놀았던 내가 있고 졸업 후에는 불확실한 미래와 자신감의 부족함으로 소극적인 자세로 살아가던 내가 있었다.

 미국에서 지낸 12년간의 유학생활이 나에게 좋은 교육과 유창한 영어능력 등을 주었지만 나의 소심함과 수동적인 자세까지는 바꾸지 못하였다.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어색하고 귀찮아서 쉽게 포기하던 나에게 회의감을 느꼈고 스스로 변화되기를 원했었다.

 군 입대 후, 최초로 느낀 것은 시간의 소중함이었다. 그리고 이 소중함이 나의 변화의 시작이었다. 매일같이 업무, 훈련, 청소 등으로 인해 제한된 개인시간은 나에게 시간관리 습관을 주었고 그 아까운 시간을 생산적으로 활용하는 법을 가르쳐 주었다.

 또한 조금이라도 많은 개인시간을 갖기 위해 일과와 그 외 기타의 스케줄을 앞서 준비하고 체계적으로 실행하며 차질이 생기지 않도록 미리 파악해 두는 습관을 가지게 되었다. 이렇게 얻을 수 있는 소중한 개인정비시간을 이용하여 그동안 미루었던 자격증 공부나 제2외국어 공부 등을 하게 되었다.

 재미있는 사실은 지금 하는 공부가 대학시절 공부하던 그 어떤 수업들보다도 즐겁다는 것이다. 공들여 얻은 소중한 시간에 하는 공부이다 보니 집중은 물론이고 배움도 매우 빠르다.

 군 생활을 하면서 배운 또 다른 것은 임기응변의 능력이다. 제한된 지급품과 여건 속에서 어떤 문제를 해결해야할 때 군인들은 정말로 놀라운 기지들을 발휘한다.

 이등병시절, 사회에서는 쉽게 구할 수 있는 청소도구가 없는 여건에서 나의 선임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치약, 종이, 신문지, 막대기 등을 활용하여 청소도구 이상의 청소효과를 내는 놀라운 성과를 내고는 하였다.

 이런 임기응변의 자세를 매일매일 배움으로써 여러 문제에 직면한 나에게도 큰 도움을 주었다. 문제에 부딪혔을 때에 "어떡하지"?라는 막막한 걱정에 앞서 "어떤 방법으로 해결하지?" 라는 논리적인 사고를 하게 되는 나를 만들어 주었고 이런 마음가짐이 나에게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자신감에 더불어 능동적인 자세로 변모할 수 있게 지금도 도와주고 있다.

 2012년 3월, 나는 논산훈련소에서 훈련병으로 '대한사람 대한으로 2012'를 읽었다. 당시 영주권자 소대에게 일일이 지급된 그 책 속 영주권자 선임들의 글을 읽으면서 공감되는 부분도, 안 되는 부분도 많았었다. 그 책을 훈련병 신분으로 읽고 있던 나의 감상은 "이 사람들은 얼마나 열정적으로 군 생활을 하기에 이런 수기를 자원해서 썼을까?"였다.

 그런 열정적인 선임들의 글을 읽으면서 비관적인 내 자신이 씁쓸하기도 하고 부럽기도 했다. 그랬던 내가 정확히 반년 후 이 글을 쓰고 있으니 참 아이러니하다고 생각한다. 확실히 군 생활은 사람을 바꾸는 마법을 부린다.

 지금은 군대에 왜 왔냐고 물으면 예전처럼 멋진 답이 나오지 않는다. 해외영주권자이전에 이미 뼛속까지 대한민국 사람인 내가 당당하게 "대한민국 남자이기에 군대에 왔습니다!" 라고 해도 당연한 얘기를 거창하게 말해보려는 것처럼 보일뿐이다.

 저런 멋진 답은 한국어를 잘 못하거나 한국문화를 제대로 접하지도 못한, 그러나 나보다 훨씬 훌륭하고 열정적으로 군복무를 하고 있을 해외영주권자들을 위한 것이다. 나는 "한국에서 살고 싶어서, 가족들이 있는 우리나라에 머물고 싶어서 군대에 왔습니다."라고 말한다.

 그게 가장 진솔한 나의 답이라고 생각한다. 군 입대를 선택하였음에 이제는 큰 후회나 괴로움은 없다. 다만 가끔씩 "만약 다른 선택을 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상상을 하게 되고 그 상상속의 나를 부러워 할 때는 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지금의 선택이 만들어 줄 더욱 당당하고 멋진 나를 그린다. 그리고 이런 마음가짐으로 하루하루를 보내면서 나는 강해지고 있다고 믿는다.

 군 생활은 사람에게 반드시 변화를 준다. 생활이 변하고 태도가 변하고 사고방식도 변하게 된다. 나는 지금 겪고 있는 이 새로운 삶을 감사히 여기고 있다. 스스로를 외부의 방해 없이 마음껏 단련시킬 수 있는 최고의 시간은 바로 군 복무기간이라고 생각한다.

 지금도 수많은 국내·외의 대한민국 젊은 사나이들이 군 복무를 앞두고 걱정과 고민을 하고 있을 것이다. 걱정은 당연하다. 누구나 똑같은 걱정을 가지고 들어온다. 그러나 너무 두려워하지 않았으면 한다. 이곳은 인생 최고의 단련장이다.

 무협소설 속의 영웅들이 자신을 갈고 닦기 위해 속세를 잠시 떠나 산으로 올라가듯, 우리는 이곳에서 스스로를 단련하는 것이다. 그리고 밖으로 나갈 우리는 마치 무적불패의 영웅의 모습으로 당당하게 걸어 나갈 것이다.(Konas)

일병 노재홍 (국군수도병원 본부근무대)

안보가 바로서야 나라가 바로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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