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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정부보훈지청에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Written by. 서경민   입력 : 2013-04-11 오후 2:4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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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릴 적 동네친구들과 지칠 줄도 모르고 신나게 뛰어놀았던 놀이 중에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가 있었다.

  솔직히 그 당시에는 무궁화 꽃이 어떻게 생긴 줄도 모르면서 언니, 오빠들이 하는 말을 따라서 그냥 노래처럼 부르기만 했었다. 학교에 들어가서도 교과서에서 사진으로 보는 무궁화가 전부였다.

  학교에서 우리나라를 상징하는 꽃이 무궁화라는 것을 배웠지만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꽃이 아니었기 때문에 ‘정말 무궁화 꽃은 어떻게 생겼을까?’하는 의문이 들었던 것은 나뿐이 아니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무궁화에 대해 살펴보니 작은 키 나무로 2~3미터의 높이에 팔목 정도의 굵기로 자라는 아욱과의 낙엽관목이고 중국 인도가 원산지로 알려졌으며 꽃잎은 길이가 4~10센티미터이며 달걀모양으로 깊게 3갈래, 보통 5장으로 되어있다고 한다.

 7월에서 9월에 꽃이 피는데, 새벽에 꽃이 새로 피었다가 오후에는 오므라들기 시작하고 해질 무렵에는 꽃이 떨어지기를 반복하며 무엇보다 무궁화는 8월 15일 전후로 꽃이 활짝 피어난다고 한다. 광복절 즈음에 무궁화는 가장 흐드러지게 고운 자태를 보여주는 것이다.
  무궁화는 ‘영원히 피고 또 피어서 지지 않는 꽃’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는데, 옛날 기록을 보면 우리민족은 무궁화를 고조선 단군시대 이전부터 하늘나라의 꽃으로 귀하게 여겨왔다고 한다.

 무궁화 꽃에 대한 가장 오래된 기록은 춘추전국시대에 저술된 지리서 ‘산해경’에서 찾아볼 수 있다. ‘군자의 나라에 훈화초가 있는데, 아침에 피었다가 저녁에 진다’라는 기록인데 군자국은 우리나라를 가리키는 것이며, 훈화초는 무궁화의 옛 이름이다. 신라는 스스로를 근화향, 즉 무궁화 나라로 불렀다.

  근현대사에서 무궁화가 더욱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친숙해진 계기는 애국가 노래가사에 무궁화가 들어가면서부터였다. 조선말 ‘윤치호’등의 발의로 양악대를 비롯하여 애국가를 창작할 때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이라는 노랫말이 삽입된 것이다. 항일 독립군도 여러 문서나 문양에 무궁화를 자주 사용했고, 그래서 일본 제국주의는 무궁화를 싫어했다고 한다.

 일제 강점기 동안 일본은 무궁화가 대한민국의 국화라는 이유로 무궁화를 뽑아버리는 일이 비일비재했고 일제가 한글을 사용하지 못하게 한 것처럼 무궁화도 정치적 이유로 탄압을 받았다. 그래서 요즘 세대까지 무궁화가 주변에서 자주 볼 수 없는 꽃이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무궁화는 우리나라가 일제로부터 해방되면서 자연스럽게 나라꽃이 되었다. 이어 태극기가 국기법에 의해 만들어지면서 국기봉의 윗부분은 무궁화 꽃봉오리 모양으로 정해졌고, 정부와 국회의 표장도 무궁화 꽃의 도안으로 만들어져 사용됐다.

 하지만 우리 선조들이 친근하게 생각하고 민족의 강인함과 동일시했던 무궁화가 우리 세대에 와서는 실제로 경험해보지 못하는 관념의 꽃으로 변해가고 있는 것이 안타깝다.그래서 의정부보훈지청은 식목일을 맞아 의정부 현충탑과 의정부보훈지청 청사 앞마당에 무궁화 꽃나무를 심었다.

 현충탑과 청사 앞을 오가는 많은 학생, 시민들에게 나라꽃 무궁화를 알리고 자주자주 무궁화 꽃을 접할 수 있도록 하여 우리나라에 대한 자긍심을 일깨우기 위함이다.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이 그저 생각으로만이 아니라 나라꽃 무궁화의 아름다움을 경험함으로써 향기를 맡음으로써 커져 나가기를 바라는 마음이다.(konas)

서 경 민 (경기북부제대군인지원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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