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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전협정 이후를 걱정한 클라크 장군

클라크 장군이 퇴역 후 쓴 회고록 ‘다뉴브에서 압록강까지’ 에서 이승만 대통령을 ‘빛나는 아시아의 별’ 로 칭송했다

Written by. 강신일   입력 : 2013-07-29 오전 8:5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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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50년 7월27일 오전10시 개성부근 판문점에서는 역사적인 사건이 진행되고있었다.그것은 3년 동안 치열하게 벌어진 6.25 전쟁을 종식시키기 위한 정전협정 서명식이었다. 북한에서는 김일성이, 중국을 대표하여 팽덕회가, 유엔군을 대표하여 당시 유엔군총사령관이었던 마크 클라크(Mark Wayne Clark) 미 육군대장이 서명한 정전협정서는 그날 오후 10시에 정식으로 발효되었고 155마일 휴전선에서는 일제히 총성이 멎게 되었다.

 정전협정서에 서명하기 전 클라크 장군의 마음은 착잡하였다. 그것은 한국의 자유와 평화를 지키기 위해 한국전에 뛰어들어 공산군과 싸우다 희생된 5만 4,900여 명의 유엔군과 13만 7,000여 명에 달하는 한국군의 고귀한 희생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완전한 승리는커녕 국제정치적 결정에 의해 휴전이 결정되었고, 이제는 군인으로서 명예롭지 못하다고 생각한 정전협정서에 서명하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서명 후 “승리 없는 전쟁에 서명한 것은 미군 역사상 내가 처음이었다” 라는 말로 참담한 심정을 피력하였다. 클라크 장군, 그는 왜 정전협정을 ‘승리 없는 전쟁’ 으로 생각하면서 휴전 이후에 전개될 일들을 걱정하였을까? 그리고 과연 그가 걱정한 일들이 휴전 이후 현실로 나타나게 되었는가?

 결론적으로 보면 클라크 장군의 걱정은 휴전 이후 그대로 대한민국과 미국의 현실적인 문제로 등장하였다. 클라크 장군은 휴전이후 한반도에 전개될 미래, 즉 정전협정이 한국인에게 완전한 자유와 평화를 주는 것이 아니라, 공산 측과의 또 다른 대립과 갈등, 그리고 전쟁의 가능성을 키워주는 불씨가 될 것이라고 예측하였다.

 이러한 판단은 유태인 출신으로 당시 최고의 계급에 올라 있던 클라크 장군이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시기에 유엔군총사령관으로 부임하여 공산군과 싸우면서 체득한 다양한 경험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그는 전쟁기간 동안 공산주의 종주국인 소련과 신흥 공산국가였던 중국이 공산주의를 확산하기 위해 한반도를 선택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전쟁을 통해 공산군의 잔학상을 직접 확인하였다.

 또한 6.25전쟁이 발생한 1년 뒤인 1951년 7월부터 한반도에서 발을 빼려는 미국과 소련의 정치지도자들에 의해 제기되어 시작된 159회의 휴전 본 회담과 765회의 부속회담을 통해 공산주의자들의 전략전술과 교활함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클라크 장군은 정전협정이 일시적으로 전쟁을 중단하고 피를 흘리지 않으며 평화를 가져다 줄 수 있겠지만 장기적으로 볼 때는 오히려 한반도에서의 새로운 갈등과 분쟁, 그리고 새로운 전쟁의 씨앗이 될 것이며, 이것은 더 큰 불행으로 다가올 것 이라고 예측하고 있다.

 이와 같은 클라크 장군의 생각에는 투철한 자유민주주의 신봉자인 이승만 대통령으로부터 받은 영향도 한몫 했다고 할 수 있다. 이승만 대통령은 비록 신생독립국의 지도자였지만 조지워싱턴대학과 하버드대학을 졸업하고 프린스턴대학교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은 당대 최고의 선진 엘리트였다.

 이승만 대통령은 틈만 나면 미국정부의 클라크 장군에게 공산주의 집단이 자유민주주의 진영에 얼마나 위험한 존재이며 이를 한반도에서 몰아내지 않는 한 한국과 미국의 평화는 물론 자유진영 전체가 위협을 받게 될 것이라고 설득하였다. 물론 이승만의 이러한 말들은 당시 공산주의 정체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던 아이젠하워 대통령을 비롯한 미국 정계로부터 미움을 사 실각의 대상으로 거론되기조차 하였다.

 클라크 장군이 퇴역 후 쓴 회고록 ‘다뉴브에서 압록강까지(From the Danube to the Yalu)’에서 이승만 대통령을 ‘빛나는 아시아의 별’ 로 칭송하면서 “이 대통령이 공산주의에 대한 불변의 증오심, 침략자에 대해 한사코 싸우려는 탁월한 의지, 조국이 공산폭군의 지배하에 들어가지 않도록 하기 위한 결연한 투쟁, 한국전에서 공산주의자들을 군사적으로 패망시키지 않으면 안 된다고 선언한 것은 미국의 엉거주춤한 자세보다 더 정당하다는 것을 역사는 분명히 증명해주리라 믿는다”고 술회한 것을 보아도 잘 알 수 있다.

 클라크 장군의 이러한 생각은 적중했을까? 물론 완전하게 적중하였다. 사실 휴전으로 전쟁이 종식되고 평화가 찾아오리라고 예측하였지만 이것은 순진한 생각에 불과하였다. 오히려 휴전선으로 인해 남북분단이 고착화하였고 비록 총성이 멎었지만 북한은 대한민국을 공산화하기 위한 새로운 전략을 수립하고 끊임없이 도발하여 대한민국의 생존을 위협해 왔다.

 이 뿐 아니라 미국은 너무나 큰 세력으로 커져버린 중국과 소련으로부터 아시아의 자유와 평화를 지키기 위해 더 큰 대가를 치르지 않으면 안 되었다. 즉 자신들이 원하지 않았던 한미동맹을 맺어 한국의 방위를 책임져야 했고 막대한 군사적. 경제적 지원을 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또한 아시아에서 중국과 소련의 영향력이 아시아지역에서 급속도로 확대되어 이를 공세적으로 차단하기위해 6.25전쟁보다 훨씬 더 많은 예산을 투입하고 국제정치적으로 과도한 출혈을 감수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특히 미국의 정전협정 강행은 공산주의 종주국인 중국과 소련에게 약한 의지를 노출하여 미국의 힘에 자신 있게 도전하는 기회를 주었다.

 물론 정전협정은 막대한 인명피해를 방지하고 국토의 파괴를 그나마 막을 수 있었다. 또한 정전협정은 북한이 전쟁을 재개할 수 없도록 하는 안전장치 역할을 해 온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적어도 60년 전 클라크 장군이 예측하고 걱정했던 것처럼 정전협정은 지금까지 대한민국을 늘 불안하게 만들었고 유무형적인 출혈을 강요하는 가장 직접적인 요인이 되어온 것도 사실이다.

 북한은 60년 전 자신들이 서명했던 정전협정 파기를 위해 끈질기게 노력해 왔다. 특히 지난 3월11일 키 리졸브 한미연합훈련이 시작된 날을 계기로 “이 시각부터 정전협정을 백지화한다” 고 선언하기에 이르렀다. 이와 함께 우리 사회에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대체해야 한다는 여론을 계속 부추겨 왔다. 물론 언제까지 정전협정 체제로 갈수는 없다. 대결에서 화해와 상생의 길을 시급히 모색해야 한다. 그리고 이것을 바탕으로 평화적인 통일로 가야만 한다.

 그러나 여기에는 반드시 지켜야 할 전제조건이 있다. 그것은 북한정부의  신뢰문제이다. 북한이 대한민국에게 신뢰감을 주려면 먼저 무력전쟁을 통한 대남 공산화전략을 포기하고 군사적 대결상태를 종식하겠다는 법적, 제도적 조치들을 취해야 한다.

 물론 시간이 걸리겠지만 이처럼 진정성 있는 조치들이 선행되지 않는 한 대한민국은 북한을 결코 신뢰할 수 없으며 한반도 평화와 공동번영을 위한 프로세스의 동반자로 생각하기는 더욱 어렵게 될 것이다. 따라서 이 시점에서 평화협정체제로의 전환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남북한 상호 간에 확실한 신뢰형성이 급선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모처럼 성사된 최근 남북대화는 북한의 진정성과 신뢰성을 검증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었으나 수석대표의 ‘격(格)’ 을 가지고 다시 남북대화가 단절되는 사태가 발생되었다. 북한의 대화 노력이 진정성이 있는 것인지 아니면 공산주의 이론에서 상황이 불리할 때 사용하는 일시적 후퇴전술인지는 곧 드러나게 될 것이다.

 60년 전 정전협정에서 서명한 후 한반도의 미래를 예측했던 명장 클라크 장군의 걱정들이 향후 지속적인 남북대화를 계기로 하나하나 제거되고 두터운 신뢰가 형성되어 우리 민족에게 새로운 시대가 열리기를 바라는 것은 너무 순진한 생각일까? 이것은 전적으로 북한의 진정성 있는 태도에 달려 있다고 할 수 있다(konas) 출처: 월간자유

강 신 일 (한성대학교총장)

안보가 바로서야 나라가 바로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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