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내의 '친북·좌경세력'을 경계해야 한다
제헌국회시절의 '남로당 프락치사건'
제헌국회 시절 '남로당(南勞黨) 국회프락치 사건'이 있었다. 이를 기억하고 있거나 제대로 알고 있는 국민은 그리 많지 않다. 정부수립 이듬해인 1949년 5월 18일부터 네 차례에 걸쳐 국회의원 13명이 이 사건과 관련되어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쇠고랑을 찼다.
이 가운데에는 국회 부의장(김약수)급도 있었다. 제헌국회 급진 소장파 의원들이 남로당(南勞黨)의 사주를 받아 국회를 장악하려했던 공안사건이다. 이들은 당시 국회의원들을 대거 자파세력으로 포섭하여 47명의 국회의원 명의로 '외군(外軍)철수 긴급동의안'을 냈다. 정부수립 후 2개월이 되던 시점이었다.
이 사건은 남파 여간첩 정재한(鄭載漢)의 음부(陰部)에서 월북한 박헌영(朴憲永)에게 보내는 '국회 내 남로당 의원의 프락치 비밀공작보고'가 담긴 암호문서가 검찰에 의해 발각되면서 백일하에 그 전모가 드러났다.
당시 이들이 표면에 내세운 기치도 다름 아닌 '자유주의에 입각한 진보적 민주정치 실현'이었다. 노일환 이문원 등 관련 의원들은 남로당 특수공작원 이삼혁(李三赫)·이재남(李載南)·김사필(金思苾)·박시현(朴時鉉) 등과 접선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들은 1949년 4월 말∼8월 중순까지 3차에 걸쳐 전원 검거됐다.
이 사건 관련 피고인들은 1심 판결에 불복 항고하여 2심 계류 중 6·25를 맞아 서대문형무소에서 출옥하여 월북했다. 월북 후 일부는 북한 관변기관에서 간부직을 맡아 지내다 대부분 숙청됐다. 생사불명인 경우가 더 많다.
당시 미국은 이들 친북세력의 선동에 뒤이어 나온 소련의 '미소(美蘇) 동시철수안'을 받아들여 1949년 6월 한반도에서 완전 철수했다. 동족상잔의 비극인 북한의 6·25남침이 시작된 것은 그로부터 1년만이었다.
현 상황- 당시와 크게 다르지 않다
반세기 이전에 있었던 '국회프락치사건'을 새삼 재론하는 이유는 현재 우리 사회가 당면하고 있는 안보현실에 비추어 당시 상황을 교훈으로 삼아야 할 시점을 맞고있기 때문이다. 친북세력의 17대 국회 대거진출은 '제2의 남로당(南勞黨) 국회프락치 사건'이 재연되지 말라는 법이 없다.
친북세력은 어떤 경우에도 자신들을 '공산주의자'라고 말하지 않는다. 그런 지적을 받으면 "색깔 씌우기냐" "매카시 전법이냐"라고 반문한다. 민주·민족·자주·평화·통일 등의 거창한 명분으로 위장하고서 암약할 뿐이다. 이들이 과거 군사정권 하에서 극렬한 반(反)독재투쟁을 전개할 때에는 그들 주장에 동조하는 식자층도 적지 않았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많은 것을 깨우쳐야 한다. '친북(親北)활동'이 '민주화운동'이고 '진보'일 수는 없지 않은가. 그들은 국가보안법 위반 전과를 '민주화운동의 훈장'으로 자처하고 있고, 북한주민들의 인권을 철저히 외면하면서도 항상 '진보세력'이라고 허세를 부리고 있다.
이들 '진보'세력 가운데 상당수는 군사정권 하에서 저들이 공공연하게 친북활동을 할 수 없었기에 '합법적인 활동공간'을 확보하기 위한 방편으로 순진한 민초들을 등에 업고 북한과 동조하여 '민주화투쟁'이라는 세(勢)몰이에 나섰던 것임을 미루어 알 수 있다. 저들은 '협상의 파트너'는 될 수 있을지언정 '민족공조의 대상'일 수는 없다. 적화야욕을 버리지 못한 저들과의 공존(共存)은 허상(虛像)이다.
우리는 '민주주의민족통일전국연합'과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전대협) 등 친북조직들이 북한측 주장에 동조하여 '주한미군 철수' '1민족 1국가 2정부체제의 북한식 연방제 통일'을 일관되게 주장하는 등 그간 북한의 대남혁명노선과 궤(軌)를 함께 해왔음을 모르지 않는다.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을 미(美)제국주의 식민지로 규정하고 있는 그들이다. 이번 총선에서 이들 친북단체의 간부출신 등 과거 국가보안법 위반사범들이 대거 국회에 진출했다. '반미청년회' '반제(反帝)청년동맹'등과 함께 과거 대법원에서 이미 이적(利敵)단체로 판정된 주체사상(主體思想)파 조직들인 것이다.
그간 '이라크 추가파병'을 가장 강력하게 반대하고, '국가보안법 철폐' 주장에 이어 북한인권개선촉구 결의안 채택에 반대 기권 불참으로 버티어온 좌경성향의 국회의원들이 적지 않은 터에 이들 초선의 새로운 세력을 수혈받을 경우 국회 내의 친북노선은 가일층 강화될 것임을 예상할 수 있다.
우리는 이번 총선을 정책대결의 장(場)이 아닌, 탄핵정국의 파장과 촛불시위의 연장선상에서 맞았다. 국민의 관심사와 각당의 안보(安保)대응 등은 뒷전으로 물러나고 이벤트정치 감성정치 정치퍼포먼스의 촌극(寸劇)만이 만발하고 있는 가운데 총선을 치렀다.
그런데도 유권자들은 '의회쿠데타' 등 정치성 구호가 만발하는 촛불시위를 2년 전 월드컵축구대회 당시의 '붉은 악마'의 열정 정도로 받아들여 저들의 친북반미(親北反美) 주장에 서서히 세뇌되어가고 있다. 그런 이유로 전후(戰後)세대는 '대한민국의 주적이 미국'이라는 저들의 억지까지도 몰비판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요즈음이다. 지나가던 개도 웃을 일 아닌가.
경계해야 할 총선 이후 정국 추이
친북세력의 국회 장악은 북한 조선노동당이 1년 전부터 강도를 높여 획책해온 전략전술이다. 이로 인해 국가보안법 개폐가 눈앞의 현실로 다가설 것이고, 주한미군 철수와 반미(反美)구호는 더욱 거세질 것이며, 친북세력이 활개를 치는 가운데 정국을 좌지우지할 것이다.
또한 최근의 촛불시위에서도 드러났듯이 국가경영의 대들보인 공권력이 침묵하는 일이 잦아질 것이고, 막강한 대중장악력을 가진 KBSㆍMBC는 보수언론 조선ㆍ동아를 '수구(守舊)'로 몰아붙이는 등 정권의 충직한 시녀가 되어 민주적 기본질서 무너뜨리기에 더욱 분주하게 움직일 것이다.
대한민국의 오늘은 이른바 '진보적 인물'들이 '지배세력 교체'를 위해 합법적인 신분으로 위장하여 '올인'하고 있는 절박한 상황이다. 이들이 목표로 하는 것은 '사회불안과 국론분열' 조성이며, 이 두 요소는 총체적 위기상황으로 가는 지름길이다. 그런데도 언론들은 이번 총선에서 정당과 후보들의 친북(親北)성향에 대해 침묵을 지키고 있다.
'주한미군의 재배치 또는 철수문제' 한가지만 하더라도 '1949년 6월의 경우'처럼 '제2의 6·25'를 불러들일 수도 있는 민감한 사안(事案)이다. 자유 대한민국의 사활이 걸린 문제인 것이다.
정통보수세력은 총선 이후의 정국 추이를 예의 주시하는 가운데 전면적인 대응책 강구에 나서야 한다. 한숨짓거나 걱정하는 것만으로는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다. 총체적 위기에는 '총체적인 대응'으로 맞서는 일이 남아있을 뿐이다. 다른 선택은 없다. (konas)
정 준(코나스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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