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운동 정신과 국민통합
3·1운동의 역사적 의의
1919년에 일어난 3·1운동은 우리나라를 강제로 점령한 일본제국주의의 무단통치로부터 벗어나 자주독립을 쟁취하기 위해 전 민족이 일어나서 전 세계에 우리나라의 독립을 선언하고 전국적 시위를 감행한 우리민족 최대의 독립운동이다. 총칼로 우리를 제압하는 제국주의 세력에 맞서서 비폭력 만세시위의 방법을 택한 것으로 더욱 특별한 의미를 가진다.
3·1운동은 일제가 1910년의 강제병합 이후 9년간에 걸쳐 닦아 놓은 식민지 무단통치와 한국민족 말살정책에 근본적인 문제를 제기하면서, 전 세계에 한국민족의 자주독립의지를 널리 알렸다는 사실에 큰 의미가 있다.
또한 3·1운동을 통하여 우리 민ㄴ족 내부의 독립운동 역량이 어떠한 힘으로도 제어할 수 없게 획기적으로 강화되었고, 그 후의 독립운동의 확고한 원동력을 형성하여 공급함으로써, 장기적으로 자주독립의 쟁취를 한국민족 내부에서 스스로 튼튼히 보장하게 되었다는 데에 의의가 있다.
또 한 가지 중요한 의미가 있는 사실은 3·1운동을 계기로 하여 중국 상하이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되었다는 것이다. 일제에 의하여 종말을 고한 대한제국은 군주국이었다. 그러므로 다시 국권을 회복한다면 군주국으로 돌아갈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3·운동을 계기로 구성된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종래의 군주제도를 부정하고 ‘입헌민주공화제도’의 정치 체제로 수립됨으로써 한국민족사상 획기적인 새로운 전기를 마련하였다.
이것은 대한민국의 헌법 전문에 대한민국이 3·1운동으로 건립된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다는 사실을 명시하게 됨으로써 더욱 큰 의미를 갖게 되었다.
그 외에 생각해 볼 수 있는 3·1운동의 성과로서 만주 등 국외에서의 독립군의 무장 투쟁이 본격적으로 형성·강화되고 전개된 계기가 되었으며, 그 힘으로 국경지방에서의 국내 진입작전까지 가능하게 된 사실도 들 수 있다.
그래서 국내에서 일제 헌병경찰제의 극악무도한 식민지 무단통치와 민족말살정책을 붕괴시키고, 언론·출판·집회·결사에 대한 최소한의 자유를 어느 정도 쟁취한 다음, 민족보존을 위한 민족문화운동과 민족 실력 양성운동을 전개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하게 되었다.
또한 국내에서 새로운 농민운동·노동운동·사회운동의 대두에 하나의 계기와 전기를 열어 놓은 성과도 얻었다.
3·1운동은 일제의 침략을 받아 그 식민지가 되어 고통 받던 우리 민족을 재생, 부활시켜 준 독립운동이었으며, 비록 일제의 식민지 지배 아래에서도 한국민족사에서 ‘현대로의 전환점’을 만들어 신기원을 열고, 후일에 찾아 올 우리 민족의 광복을 확고하게 보장해 준 획기적인 민족독립운동이었다.
3·1운동, 백 년 전의 한류(韓流)
3·1운동의 역사적 의의는 우리 민족사에만 머물지 않고 세계사적 의의도 크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우리 민족의 3·1운동은 제1차 세계대전에서 승전국에 속하여 한껏 우쭐해 있던 일본에게 엄청난 한 방을 먹인 사건이었다. 그리고 1차 세계대전 종전 직후 승전 제국주의 국가들의 지배하에 있어서 한껏 움츠리고 있던 세계 모든 식민지의 약소민족들이 분발하여 적극적 독립운동을 일으키는 계기를 열어 준 사건 이었다.
한국 민족의 3·1운동은 약 한 달 뒤 중국의 5·4운동의 발발에 큰 영향을 끼쳤다. 후일 중국의 지도자가 된 주은래는 3·1운동을 직접 확인하기 위해 우리나라를 방문하였다는 기록도 있다. 인도에서 국민회의파의 비폭력 독립운동을 급속히 고조시키는 데에도 영향을 끼쳤다.
또한 3·1운동의 영향은 인도차이나 반도와 필리핀과 아랍의 일부 지역에까지 파급되어 이 지역의 독립운동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 동아시아의 한반도에서 과감하게 첫 봉화를 올린 3·1운동의 영향은 중국으로, 인도로, 동남아시아로, 아랍지역으로 물결처럼 파급되어 강대한 승전 제국주의 열강에 대한 약소민족 해방투쟁을 불타오르게 한 것이다.
그리하여 한국민족의 3·1운동은 전 세계 약소민족 독립운동사에 새로운 시대를 열어 주었다. 인도의 유명한 시인 타고르가 쓴 시로 과거 가난하게 살던 우리에게 너무도 큰 격려가 되었던 시 ‘일찍이 동방의 빛나던 등불 한국’ 이라는 시는 우연히 나온 것이 아니었다. 우리는 3·1운동을 통하여 자유·평등·평화라는 인류보편의 대의를 밝힘으로써 전 세계 약소민족들에게 희망의 등불이 되었던 것이다.
그 당시의 언론이나 통신기술을 감안한다면 이러한 정도의 국제적 파급력은 오늘날에 비교 한다면 한류라고 불러도 무방할 것이다. 이렇듯 우리 민족은 식민통치의 굴레 속에서도 한류를 만들었다. 지금의 대한민국이 가수, 드라마로 한류를 만들듯이 백 년 전에도 우리가 만든 한류가 있었고 그것이 바로 3·1운동인 것이다.
3·1운동 정신과 국민통합
근래의 어수선한 국제환경 때문에 많은 국민들은 마음이 심란하다는 말을 힌다. 어떤 이들은 일제에 나라를 빼앗겼던 구한말을 연상케 하는 시대라는 말까지 하고 있다. 물론 지금과 구한말을 비교하는 것은 큰 무리라고 생각한다. 그때와 달리 지금은 우리나라가 역사상 그 어느 때보다도 튼튼한 나라가 되었고, 경제력이나 군사력에서도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발전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압축성장의 그늘이 매우 길게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는 것이 우리나라의 현실이기도 하다. 보수와 진보로 크게 나누어지는 분열의 양상은 도가 지나친지 오래이다. 지금은 종북세력들의 처리문제에다 공기업 개혁문제까지 겹쳐서 그 어느 때보다도 대립이 격화된 느낌마저 주고 있다. 이럴 때에 우리에게 필요하고도 중요한 것은 나누어진 국론을 하나로 합치려는 노력이라고 생각한다.
바로 이러한 때에 우리가 기억해야 할 보물 같은 전 민족의 재산이 하나 있는데 그것이 바로 3·1운동 정신이다. 3·1운동 정신은 빈부의 차이, 남녀의 차이, 양반과 상인의 차이, 지역과 종교의 차이 등 그 시대의 인류가 생각할 수 있는 모든 벽을 뛰어넘어 온 겨레가 한 마음이 되었던 민족통합정신이다.
지금처럼 국론 통합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이 시대에 3·1운동 정신은 우리가 가장 강조하고 공부해야 할 자산이다. 모든 민족의 구성원들이 자발적으로 한마음이 되어 뭉치고 주장하고 투쟁했던 사건이 5천년 역사에 언제 있었나? 신라의 3국통일도 고구려와 백제인들에게는 적국의 일이었다.
앞으로 5년이면 2019년이 된다. 그 해는 우리 민족 5천년 역사의 최대 사건이라 할 수 있는 3·1운동이 100주년을 맞게 된다. 3·1운동 정신을 잘 기리기 위해서는 앞으로 오는 5년의 시간을 잘 활용해야 한다. 남은 5년간 열심히 3·1운동 정신을 배우고 익히고, 그것을 기리는 사업들을 통하여 국민통합을 이루고 새로운 시대를 준비하자.(Konas)
김능진 (독립기념관장)
출처 : 월간 자유 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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