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태경 “제주 4‧3 추념일 앞서 ‘가해자’와 ‘희생자’부터 구별해야”
‘제주4.3사건진상규명및희생자명예회복에관한특별법’ 일부개정법률안 발의할 계획
'제주 4·3희생자 추념일'이 국가기념일로 지정됐다.
18일 안전행정부는 '각종 기념일 등에 관한 규정' 개정안이 국무회의를 통과했다며 이같이 밝혔다.
그러나, 4‧3 피해자들의 유족들로 구성된 ‘제주 4‧3 정립연구유족회’ 등 단체는 희생자 명단에 가해자가 포함됐다며 이들을 제외시킬 것을 요구하고 있는 상황이다.
‘제주 4‧3 정립연구유족회’(이하 유족회) 등이 참여한 ‘제주 4·3사건 바로잡기 대책회의’는 17일 기자회견을 열고 “제주 4·3사건은 민중봉기가 아닌 좌익폭동”이라며 “이승만 정부와 국군, 경찰을 가해자로 만든 제주 4·3사건 진상보고서의 수정과 희생자 명단에서 폭동주모자와 폭도들의 이름을 제외할 것”을 주장했다.
정치권에서는 하태경 새누리당 의원이 “살인을 기획하고 저지른 사람과 희생자를 구분하지 않고 모두 희생자로 둔갑시켜 공동으로 추념하겠다는 정부의 계획에 희생자 가족들이 반발하고 있는 것”이라고 18일 비판 논평을 냈다.
하태경 의원은 “현재 제주 4‧3공원에 안장되어 있는 희생자들 중에는 우리가 쉽게 동의하기 어려운 경력의 사람들이 희생자로 인정되어 다수 안장되어 있다”면서 유족회가 공개한 명단을 언급했다.
유족회가 공개한 명단에 따르면, 이원옥(북한 인민군 사단장), 김의봉(남로당 인민해방군사령관), 김완식(남로당 인민해방군 참모장) 등 남로당 제주도당의 핵심간부, 무장대의 수괴급과 중간 간부, 무장대원으로서 군인과 경찰을 살해하는 행위에 가담한 자 등이 다수 포함되어 있다.
따라서, 하 의원은 “이들을 제주 4‧3사건의 ‘희생자’로 볼 수 없다는 것은 헌법재판소 판결문을 통해서도 명확하게 확인된다”면서 “헌법재판소가 판결문에서 명시한 내용을 바탕으로 ‘제주4‧3사건진상규명및희생자명예회복에관한특별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발의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어 하 의원은 “현대사의 아픔을 덮고 치유하기 위한 4‧3 추념식 자체를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화해와 상생이라는 것도 시(是)와 비(非)를 가린 다음에 진행하는 것이 순서”라며 “대한민국 정부는 보다 철저한 조사를 통해 가해자와 피해자를 구분하고 제주 4‧3 사건에 대한 총체적 진실이 정확히 규명되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며, 4‧3 국가추념일 행사 역시 이런 사실에 근거해 적절한 수준에서 계획되고 진행되어야 할 것”이라고 촉구했다.
한편, '4·3희생자 추념일'이 기념일로 지정되면 그동안 제주특별자치도와 제주4·3평화재단이 공동 주관하던 추념식 행사를 정부가 주관해 치르게 된다.
다음은 ‘제주 4‧3 정립연구유족회’가 공개한 제주 4‧3사건의 ‘희생자’로 보기 어려운 사람들의 일부 명단이다.(Konas)
코나스 강치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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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한 인민군 사단장 이원옥
1947년 가을. 입산하여 연락임무를 띄고 1948년 이북으로 갔다가 6.26때 인민군 사단장으로 내려옴. 7천 명을 거느리고 낙동강 전투에서 사망.
‣ 북한 인민군 김기추
제주 출신 김기추 1951년 부산 서면 포로수용소에서 목격. 그는 포로중에서도 똑똑해 소대장급으로 활동하고 있었으며 스스로 ‘낙동강 전투까지 참전했다가 잡혀서 포로가 되었다’고 말함. 거제도 포로수용소에서도 사상 전향을 하지 않아 공산포로로 남았고, 석방된 후 행방불명. 북으로 갔을 것으로 추정됨.
‣ 북에서 해주 경찰서장 됐다는 현만호
현만호는 제주 좌파의 핵심 인물. 제주에서 폭도로 있다가 6‧25때 인민군과 함께 월북해 해주 경찰서장까지 했다는 조총련계 재일동포의 증언. 현만호를 포함해 노형 출신 12명이 북한에 건재하고 있었다는 것.
‣ 남로당 인민해방군사령관 김의봉(28. 남. 사망)
남로당 제주도당 인민해방군사령관. 입산 후 1949. 6. 7 이덕구가 체포되고 나서 사령관이 됨. 1953년 4월 무장대를 토벌하던 경찰과 총격 중 사망.
‣ 남로당 인민해방군 참모장 김완식(23. 남. 행방불명)
남로당 제주도당 인민해방군 참모장. 48. 6. 16 경찰관을 습격해 죽인 폭도. 무장대 핵심간부로 ‘관음사’전투 지휘. 끝내 산에서 자살.
‣ 무장대 주요 간부였던 허영삼. 김태길. 김영찬. 고인수. 김만옥. 문도공 등
1951년 3월의 무장대 조직은 사령관 허영삼(남로당 제주도 당책 겸임, 안덕 출신), 유격대 부대책 김태길(가명 문호철), 작전 참모 유모씨(이름 미상, 대구 출신), 훈련관 모씨(성명 미상) 등과 제11지대(김영찬, 14명으로 3개조), 제50지대(고인수, 가명은 소형삼, 18명으로 3개조), 제1지대(김만옥, 14명으로 3개조), 제7지대(문도공, 14명으로 3개조) 등 총 64명으로 지휘부와 4개지대로 편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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