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플라톤인가
대부분 서구인들은 그리스가 서양 문명의 뿌리라는데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왜 그리스는 서양 문명의 뿌리인가? 고대 그리스인들에게 가장 중요한 학문은 철학이었다. 철학은 삶에 대한 질문이며 그 답변이기 때문이었다. 그 당시 철학은 우주와 자연·정치·교육·의학을 망라하는 종합 학문이었다.
그리스 철학은 소크라테스-플라톤-아리스토텔레스로 계승되면서 뿌리를 형성했다. 플라톤이 중요한 이유는 그의 스승 소크라테스의 가르침을 글로 남겼으며, 그가 세운 아카데미아에서 아리스토텔레스를 가르쳤기 때문이다.
플라톤은 소크라테스와 아리스토텔레스의 중간에 있어 그리스 철학의 기반을 넓고 깊게 닦아 놓았다.
플라톤의 원래 이름은 아리스토클레스였다. 그러나 어린 시절 어깨와 이마가 넓다고 사람들이 플라톤(Platon: 그리스어로 넓다는 뜻)이라는 별명을 주었는데 그것이 진짜 이름처럼 된 것이다. 플라톤이 스승 소크라테스로부터 배운 가장 중요한 덕목은 세상을 올바르게 살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즉, 선(善)하게 사는 것이 삶의 목표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진리라고 배웠다. 플라톤이 강조한 진리와 지혜에 대한 사랑을 후세 인들은 ‘플라토닉 러브’라 불렀다.
플라톤은 세상의 모든 사물에 최고로 좋은 것, 즉 선이 있는데 그것을 이데아(Idea)라 불렀다. 그리고 그 이데아는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인간이 보고 느끼는 사물은 이데아의 표상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최고의 것, 죽지 않는 것, 그것을 플라톤은 신(神)이라 했다. 그 당시 아테네에는 신이 많이 있었는데 나쁜 신, 선한 신이 함께 있었다.
그러나 플라톤이 신은 오로지 선한 것이며 선한 신은 모든 사악한 것을 물리칠 수 있다고 주장하면서 아테네 시민들의 신에 대한 믿음은 더욱 커졌다. 그리고 착하게(善) 사는 것이 신에 이르는 길이며 이를 평생의 목표로 삼았다.
플라톤이 서구인들에게 준 가장 큰 선물은 영혼의 발견이었다. 플라톤은 육체는 죽어도 영혼은 살아 있다는 이원론(二元論)을 주장했다. 아테네인들은 플라톤의 영혼 불멸설에 열광했다. 사람이 죽어도 영혼이 살아 있다니 얼마나 신 나는 일인가?
중세 교부 철학자 아우구스티누스와 토마스 아퀴나스는 이것을 기독교 교리에 접목시켜 영혼의 존재를 구체화했다. 중세 천 년 동안 이에 반론을 제기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것에 반대하는 사람은 교회의 이름으로 처단됐다. 플라톤의 영혼 불멸설이 기독교 교리에 날개를 달아준 셈이다.
플라톤의 또 다른 큰 업적은 아카데미아 창설이다. 아카데미아에서 그가 심혈을 기울인 과목은 의외로 수학과 기하학이었다. 실제로 아카데미아의 현판에는 ‘기하학을 모르는 자, 이문을 들어서지 말라!’는 경구가 적혀 있었다. 그는 우주와 모든 사물의 이치를 과학적 방법인 숫자와 기하학으로 풀려 했으며 이것은 유클리드의 기하학 원론에 큰 영향을 미쳤다.
정신적인 미(美)가 외형적인 아름다움보다 훨씬 숭고하다고 말한 플라톤은 80세의 노총각으로 생을 마감했다. 그가 끝까지 결혼을 못한 이유는 ‘플라토닉 러브’를 할 만한 여성을 찾기 어려웠기 때문이 아닐까?
윤 연 (칼럼니스트, (예)해군중장)
* 국방일보 31일자 16면 '오피니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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