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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복무요원 체험수기⑤〕“당신의 가까운 친구가 되고 싶습니다”

Written by. 강문수   입력 : 2014-04-08 오전 6: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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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내용은 병무청이 주관한 「2013년 사회복무요원 체험수기」 ‘장려’ 글임. (편집자 주)

  복무생활을 하며 눈으로 보고 피부로 느낀 사회복지현장은 매우 열악했다.

 현장에서 일하시는 사회복지사 선생님들의 복지대상자수 대비 인력충원 부족에 따른 과도한 업무 스트레스, 감정노동으로 인한 정신적인 스트레스 특히, 노숙인 복지법이 시행된 지 얼마 되지 않은 ‘노숙인 복지 분야’의 현장은 더욱 열악해보였다.

 그러한 환경에서 비교적 스트레스가 덜한 사회복무요원인 내가 사회복지사 선생님들을 보조해 ‘사회복지(사회복지사)-나(사회복무요원)-복지대상자(노숙인)’의 중간 고리가 되어 양쪽 모두에 힘이 되는 존재가 되고 싶었다.

 또한 우리 노숙인분들은 깊은 상처를 가지고 계신 분들이다. 그 상처가 항상 본인 스스로를 작게 만든다. 내가 그 상처를 덧나지 않게 도와드리고 싶었다. 이 두 가지를 함께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곁에서 ‘가까운 친구’가 되어 그분들의 속에 담긴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이 먼저라고 생각했다.

 두려움을 안고 시작한 첫 복무생활, 역시나!

 2012년 2월 27일, 나의 첫 출근일이다. 32사단에서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하고 한 달 만에 따뜻한 집 밥을 먹으며 편안한 주말을 보낼 때만 해도 첫 출근 걱정도 싹 잊은 채 참 행복했었는데... 그 행복도 잠시, 첫 출근 전날인 일요일 저녁부터 밥맛도 잃고 괜한 걱정에 잠도 잘 이루지 못했다.

 그 걱정은 바로 ‘선입견’으로 시작된 것이었다. 내가 근무할 곳은 노숙인과 함께 지낼 곳인데, ‘노숙인’... 노숙인하면 딱 떠오르는 것이 ‘혐오감’과 ‘더러움’이었다. 노숙인과 직접적으로 대면해보지는 않았지만, 대전역 부근을 다닐 때 스쳐보던 술 먹고, 시비 걸고, 싸우는 그리고 언제 씻었는지 모를 악취와 누더기 옷. 그 모습이 그들의 전부라고 생각했었다. 그런 곳에서 내가 2년이란 시간을 잘 보낼 수 있을지 두려웠다.

 그런 두려움을 안고 나의 근무지인 노숙인 쉼터 ‘파랑새둥지’로 첫 출근을 했다. 그런데 역시나! 그 두려움은 내 눈 앞에 현실이 되었다. 지금 1년 8개월이 지난 지금도 첫 출근에 느꼈던 그 기억이 또렷하다. 역시나! 이곳은 험난했다.

 나의 근무지인 노숙인 쉼터 ‘파랑새둥지’를 둘러보고 법인으로 함께 묶여있는 ‘노숙인종합지원센터’ 사무실로 가서 선임요원님께 이야기를 듣고 이곳이 어떤 곳인지 알아보기 위해 사무실 맨 앞자리에 앉아있는데, 술에 만취하신 노숙인 아저씨께서 나에게 다가와 험한 말로 겁을 주시기도 하고, 오랫동안 씻지 않은 아저씨께서 내 자리 앞에 앉아계실 때 정말 적응하기 힘들었다. 내가 생각했던 점이 눈앞에서 직접 보니 과연 어떻게 2년이란 시간을 보낼지 시작부터 걱정이 앞섰다.

 과연 그분들과 우리는 다른 존재일까? 혹시나!

 시간이 흐르고 복무생활에 대해 조금씩 적응 되어갈 때쯤 내가 가지고 있었던 부정적인 선입견과 다른 모습들이 점점 내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내가 센터 앞마당 청소할 때, 담배꽁초를 혼자 줍고 있으면 노숙인 아저씨께서 다가와 “요원님, 수고가 많으시네요.”라고 따뜻한 말씀으로 격려해주시며, 맨손으로 함께 담배꽁초를 주워주시는 아저씨와 감기에 걸려 ‘콜록콜록’거리면 어디 아픈지 물어봐주시고 걱정해주시는 아저씨... 그러한 모습을 보며 내가 혹시나 잘못 생각하고 있는 것이 아닌지? 과연 그분들과 우리는 다른 존재인지? 나는 첫 출근 당시 가지고 있었던 부정적인 선입견에 대해 의문을 가지기 시작했다.

 그 때부터인가. 그러한 부정적인 선입견을 가지고 노숙인 아저씨들을 대한 점이 죄송스러웠고, 내가 달라져야겠다고 다짐했을 때. 그때부터 두려움이 사라지기 시작했을 때이다.

 내가 잘못 생각하고 잘못 보고 있었음을... 역시나!

 내가 부정적인 선입견을 버리고 내 자신이 달라져야겠다고 생각할 때쯤, 과연 무엇이 문제였는지? 무엇이 달려져야하는지? 곰곰이 생각을 해보았다. 내가 우리 아저씨들의 모습을 제대로 보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선입견이라는 색안경을 쓰고 우리 노숙인 아저씨들을 보았으니 어찌하면 진짜 모습을 보지 못한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그래서 이제는 색안경을 벗고 우리 아저씨들의 진짜 모습을 보려고 노력했다.

 그러니 이전엔 보이지 않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새벽 택배 일을 다녀와서 일당을 저금하고 휴게실에서 새벽에 못잔 잠 때문에 꾸벅꾸벅 졸다가 피곤함이 가시기도 전에 또 일 나갈 준비를 하시는 모습, 식사시간이 되면 편찮으신 동료 노숙인 아저씨를 부축해 함께 무료급식소로 가시는 모습 등 따뜻한 모습이 많이 보였다.

 그러나 이러한 좋은 모습은 일부분에 불과했다. 걱정되고 안쓰러운 모습도 함께 보였다. 내가 복무생활을 하면서 우리 노숙인 아저씨들의 가장 안타까운 모습이 바로 ‘불편함’이었다. ‘불편함’은 단순히 시설을 이용함에 있어서 불편하다고 느끼는 점이 아니라, 우리 노숙인 아저씨들의 ‘안색의 불편함’이었다.

 항상 고개를 숙이고 다니시고, 이야기를 할 때 눈을 제대로 못 마주치시며, 항상 이마에 근심, 걱정이 쓰여 있었다. 아마 우리 노숙인 아저씨들의 ‘자존감’의 상태가 그 안색에 바로 비쳐졌을 것이다. 그 불편함은 우리 노숙인 아저씨들의 자신을 점점 작게 만들고, 본인이 정말 필요한 것이 있어도 제대로 말조차 못하고, 속으로 꾹꾹 참아 결국엔 속이 곪는... 그러한 모습을 반복하게 만들었다.

 일례로 어느 한 노숙인 아저씨는 깨진 술병에 손이 찢겨도 바로 소독하고 치료받으러 오시지 않는다. 한참 시간이 지나 상처가 곪아터져 심각해졌을 때서야 그때서야 어쩔 수 없이 센터에 방문해서 연고 좀 발라달라고 하신다.

 나에게 도움을 청하기 전까지 그렇게 아픔이든 상처든 속으로 혼자 삭히고 계신 것이다. 속상한 마음에 “이 지경이 될 때까지 센터 안 오시고 뭐하셨어요?”라고 묻자 돌아오는 대답은 “이런 모습 창피해서... 그리고 미안해서” 나는 뜨끔했다. 도대체 그들이 왜 창피해하고 그들이 진정 필요한 것에 대해 강력히 요구하지 못하고 간절히 호소하지 못하는지...

 내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혹시나!

 이러한 우리 아저씨들의 안타까운 모습을 보며, 그리고 열악한 사회복지현장을 보며, 내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이 있을지 곰곰이 생각해보니, 바쁘신 사회복지사 선생님들을 보조해서 우리 노숙인 아저씨들께서 진정 필요한 부분이 무엇인지 듣고, 필요한 부분에 대해 편하게 요구할 수 있는 하나의 창구가 되는 것이었다.

 한마디로 우리 노숙인 아저씨들의 ‘가까운 친구’가 되어드리는 것이다. 가까운 친구가 된다면 필요한 것에 대해 말하기 힘든 것도 편하게 말할 수 있을 것이고, 그 필요한 부분이 사회복지사 선생님께서 도움주실 수 있는 부분이면 말씀드려서 아저씨들이 진정 필요한 부분을 채울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시작부터 문제였다. 아저씨들과 친해지는 것이 어려웠다. 아무래도 깊은 상처를 가지고 계신 우리 노숙인 아저씨들의 마음을 열기란 쉽지가 않았다. 이야기를 하려해도 피하시는 아저씨를 억지로 붙잡을 수 없어 처음엔 힘들었다. 그래서 생각을 바꿔 아저씨들께 먼저 인사와 짧은 안부를 통해 친해지는 것이 우선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우리 노숙인 아저씨들을 뵐 때마다 웃는 얼굴로 인사드리고 아저씨들의 작은 부분까지 보려고 노력해 아저씨께서 콧물이 흐르면 감기 걸리셨는지 여쭙고 감기약을 드리고, 다음 날 괜찮으신지 여쭈었다. 그렇게 아저씨들을 대하다보니 우리 아저씨들께서도 내 마음을 알아주셨는지 내가 출근할 때, 먼저 우리 아저씨들께서 “요원님, 출근하셨어요? 날씨가 참 좋죠.”라고 웃으시며 인사해주시고, 청소하면 같이 거들어주시고, 편하게 농담도 건네셨다.

 그렇게 우리 노숙인 아저씨들과 친해진 후 나는 아저씨들과 둘이 마주칠 때면 그분들이 필요하신 게 없는지, 요새 걱정거리는 없는지 여쭈어보며 속에 담긴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그렇게 편한 사이가 되니 아저씨들께서 필요한 게 있으면 나에게 먼저 다가와서 무엇이 필요하다 편하게 말씀주시고 그걸 듣고 나는 먼저 사회복지사 선생님께 여쭙고서 아저씨께 도움을 드리고 있다. 아주 작은 필요한 물품지급부터 내가 도움 드리기 어려운 사회복지서비스에 관한 것들까지 여쭈어보시면 나는 선생님께 도움을 받으시도록 안내해드리고 있다.

 달리지고 있음을... 역시나!

 이제 나는 1년 8개월이 지나 세 달 뒤면 소집해제를 한다. 내가 처음 두려움을 안고 복무생활을 시작했을 때와 지금 내 자신을 뒤돌아보면 내 자신이 참 많이 달라졌구나. 참 많이 성장했구나. 라는 것을 느낀다.

 그래도 가장 많이 달라진 것은 아무래도 우리 노숙인 아저씨들이 아닌가 싶다. 분명 나로 인해 모든 것이 180도로 바뀌진 않았다. 그러나 내 눈엔 우리 아저씨들께서 웃음이 늘어나고 대화가 늘어난 것이 보인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우리 아저씨들의 진정 필요한 것에 대한 요구가 점차 늘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그것이 내 눈의 콩깍지라고 해도 난 그 모습을 보며 복무생활의 보람을 얻는다. 내가 소집해제 후에 근무지를 떠나도 우리 노숙인 아저씨들의 기억 속에 착한 사회복무요원으로 남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이 작은 변화가 쭉 이어졌으면 좋겠다.(Konas)

강문수 (파랑새둥지)

안보가 바로서야 나라가 바로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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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살인미소(pjw3982)   

    경제수준을 보고 선택적 복지를 하라,,이러다간 거덜 란다고,,,,

    2014-04-08 오전 10:5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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