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약속 이행, 전사자 유해 발굴
올해 6ㆍ25 전사자 유해 발굴을 위한 사업의 개토식이 거행됐다는 보도가 있었다. 6ㆍ25 전쟁 50주년 기념사업으로 시작된 이 사업은 국민의 폭발적인 지지로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을 탄생시켰고 관련 법률의 제정과 함께 영구사업으로 자리 잡았으며 이제 이 부대는 유해발굴 및 감식분야에 있어서 세계적인 수준을 인정받고 있다. 또한 리비아의 카다피 독재시절 실종된 국민의 유해발굴과 감식 지원을 위해 파견돼 인도주의를 실천하며 국위를 선양하고 있다.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 장병들이 ‘그들을 조국의 품으로’라는 부대훈을 가슴에 새기고 당시 격전지에서 선배 전우들의 유해를 탐색, 고이 수습해 유족에게 돌려주고 이들이 조국의 품에서 영면토록 모시는 전 과정은 국민들에게 매우 큰 감동을 주고 있다.
전사자 유해발굴과 감식, 유족을 찾아 주는 일은 국가의 마지막 약속 이행이다. 국민 개인은 생명을 조국에 바치는 숭고한 희생으로 지고한 충성의 의무를 완수했다면 국가는 이들의 유골이라도 수습해 명예롭게 모시고 유족들의 한을 풀어주며 최소한 중산층 이상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보호하고 도와주는 일을 해야 한다. 유복자 아들이 60년 만에 수습된 아버지의 유골을 안고 토해내는 한 맺힌 절규 속에서도 “나도 아버지를 만나 보았다”라며 슬픔 속에 기쁜 눈물을 흘리는 장면을 보았는가 ? 이것이 전사자 유해발굴감식과 유족 찾아 주기의 이유다.
또한 전사자의 유해 발굴과 유가족에 대한 지원과 존중의 정도가 자유민주주의 성숙도의 지표가 되는 것은 국가와 국민 간의 계약관계에서 국민이 국가의 약속을 신뢰하게 되는 매우 중요한 요소이기 때문이다.
얼마 전 중국군 유해 400여 구가 본국으로 송환됐다. 국군유해 발굴과정에서 수습된 것으로서 국군보다 중국군의 전사자가 훨씬 더 많았다는 점을 감안하면 매우 적은 숫자다. 당시 중국군은 1명의 시신을 찾아오기 위해 5명이 희생되더라도 감수하라는 지침이 있었다고 한다.
중국은 이와 관련한 아픈 역사가 있다. 우리의 민족영웅 을지문덕 장군의 살수대첩에 걸린 수나라 별동대 30만 명 중 살아서 돌아간 자는 채 3000명도 안 되고 그 외 요동성 전투 등에서 전사한 시신 대부분을 이 땅에 버리고 갔다. 그때 동원된 병력이 100만을 넘었다고 하며 당시 중국의 인구가 4600만 명 정도였다고 한다. 국가의 전 역량을 기울인 전쟁에서 이국땅에 버려진 전사자의 비율은 무엇을 말하는가? 이로 인해 수나라는 민심 이반과 국력의 쇠진으로 개국 38년 만에 나라가 망하는 비운을 맞는다.
국력은 유형적인 물리력과 무형적인 국민의 신뢰를 바탕으로 하는 응집력 등이 있다. 국민의 신뢰는 국가의 약속이행에 대한 믿음에서 출발한다. 이 믿음이 확고해야 조국을 위한 생명의 희생을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산성 토양에서 유골은 50년을 넘지 못하고 녹아 없어진다. 산성비와 빠른 도시화도 문제다. 시간이 없다. 이제 현장에서 사명감 높은 발걸음으로 선배들의 유해를 찾아 모시는 국군 장병들과 함께 국민 모두가 이 사업에 적극 동참해 자랑스러운 우리 시대의 역사를 만들어 나가야 한다.
김일생 (예,육군중장 / 대전대 초빙교수)
* 출처 : 국방일보 25일자 18면 ‘오피니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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