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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크기를 앞세운 북한 공군은 우리 제트기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6·25전쟁 중 38선 처음 넘어 평양폭격 美해군조종사 증언

Written by. 이영찬   입력 : 2014-06-23 오후 1:2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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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해 항공모함에서 출격한 우리는 38선을 최초로 넘어 평양으로 향했고 도착 직후 활주로부터 집중 폭격했다. 야크기를 앞세운 북한 공군은 우리 제트기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한종우 한국전 참전용사 디지털기념관 재단이사장이 오는 25일 6·25전쟁 발발 64년을 맞아 당시 첫 공중전에 참여했던 참전용사 윌리엄 고트니(90)씨와 인터뷰한 내용을 22일(현지시간) 연합뉴스에 공개한 내용이다.

 고트니씨에 따르면 6·25전쟁 발발 직후 서태평양에서 작전 중이던 미 해군 항공모함은 밸리 포지(Valley Forge)호가 유일했다. 당시 미 공군은 한국전에 개입할 준비가 전혀 안 됐었는데 미 해군 항공모함에 탑재된 전투기들이 개전초기 공중전 임무를 맡는 것으로 상부의 결정이 내려졌다.

 당시 해군 중위였던 고트씨를 비롯한 항공모함 사령관들은 한국의 존재 자체를 몰랐고 지도도 없어 38선이 어디에 있는지조차 몰랐다며 출격일인 7월3일, 고트니씨는 최선두에서 전체 항공편대를 지휘하는 지휘관과 그의 호위를 맡았다고 전했다.

 항모에는 신형 제트기 20대와 2차 세계대전때 활약한 프로펠러 전투기인 콜세어 F4U 20대, AD 스카이레이더 전폭기 10대가 있었는데, 고트니씨는 그루먼 F9F 팬더라는 신형 제트기를 타고 38선을 최초로 넘어 북쪽으로 진격했다.

 평양에 도착한 항공편대들은 가장 먼저 북한 전투기들이 운집한 평양의 활주로부터 집중 폭격했다. 당시 활주로에 있던 소련제 프로펠러 기종인 북한 야크(YAK)기 여러대가 순식간에 폭파됐다. 북한군의 대공방어망의 주력은 40mm대공포였으나 전혀 힘을 쓰지 못했다.

 고트니씨는 “북한 야크기들을 폭파하던 개전 초기에는 적기와의 공중전이 전혀 없었다”며 “당시 북한지역 비행장에 있던 많은 적기를 폭격해 큰 성과를 올렸다”고 회고했다.

 또 평양공격 이후 연료급유차 항모로 되돌아온 항공편대들은 인천과 서해안을 중심으로 작전을 계속했는데 주요 임무는 남하하는 북한군과 탱크, 보급차량, 기차 등을 폭격하는 것으로 작전 중 북한 보급기차 54개 차량을 파괴하는 전적을 올리기도 했다.

 1924년 미국 켄터키주에서 태어난 고트니씨는 2차 세계대전과 한국전쟁, 베트남전쟁에 참전한 뒤 1972년 전역했다.

 고트니씨는 “당시 미 해군은 겨울 군복을 지급받지 못해 항공모함 간판에서 근무하던 병사들의 경우 추운 날씨로 많은 고초를 겪었다”며 “전쟁당시 파괴할 만한 건물조차 남아있지 않던 한국이 짧은 시간에 이룩한 산업화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고 회고했다.(Konas)

코나스 이영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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