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창극, 건국훈장 애국장 추서 받은 ‘독립유공자’ 자손으로 추정
국가보훈처, “문창극은 대한독립단 대원으로 활동한 애국지사 문남규 선생의 손자”
문창극 국무총리 후보자가 일제시대 독립활동으로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 받은 독립유공자의 자손인 것으로 추정되는 근거가 제시됐다.
국가보훈처는 23일 보도자료를 통해 “문창극 후보자의 조부(문남규)가 1921년 4월9일 독립신문에 보도된 독립유공자 문남규(文南奎) 선생과 동일인으로 추정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보훈처는 대한 독립단 대원으로 1921년 평안북도 삭주에서 일본군과 전투 중 전사(1921. 4. 9, 독립신문)한 문남규 선생의 전사‧순국 지역과 후보자 조부 문남규의 원적지가 평북 삭주로 동일하고 후보자의 부친인 문기석(1914년생)이 7세 당시 조부 문남규가 사망하였다고 진술한,「독립신문」(1921. 4. 9.일자)에 보도된 독립유공자 문남규의 순국년도인 1921년과 일치한다고 밝혔다.
1921년 4월9일자 독립신문에 따르면, 문남규 선생은 1921년 평안북도 삭주에서 일본군과 전투 중 전사했다.
이에 보훈처는 2010년 11월17일 ‘순국선열의 날’을 계기로 문남규 선생에게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으나, 현재까지 후손을 찾지 못해 훈장증을 국가보훈처에서 보관 중이라고 전했다.
특히 문남규 선생의 경우 후손의 요청이 없어 제적등본이나 족보 등을 확인할 수 없었으나 후보자 측에서 지난 22일 제적 등본을 제공해 이 같은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보훈처 공훈록에 따르면 문남규 선생은 대한독립단에 소속되어 항일무장투쟁을 전개하다 일본군에 희생되었다.
대한독립단은 3‧1운동을 계기로 보다 효과적인 항일무장투쟁을 전개하기 위하여 보약사(保約社), 향약계(鄕約契), 농무계(農務契) 포수단 등 주로 의병운동 계열의 인사들이 1919년 4월 각 단체를 해산하고 결성하였으며, 복벽주의(復辟主義)를 이념으로 하였다.
이들은 국내외에 모두 100여 개소의 지단, 지부를 설치하였으며 만주지역에는 거류동포 100호 이상을 구(區)로 하는 관구(管區)를 두고 10구에 단장을 두어 자치행정을 실시하였다.
또 1923년까지 국내와 만주지역에서 활발한 항일무장투쟁을 전개하였으며, 대한통의부를 거쳐 의군부로 발전하였다.
문남규는 1921년 평북 삭주에서 대한독립단 대원으로 일본군과 전투 중 순국하였다.
이에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0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Konas)
코나스 이영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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