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 파병 반대론에 대한 반론
미국의 이라크 파병 요청과 관련하여 찬반 양론이 다시 팽팽하게 맞서 있다. 우리가 파병해야 할 이유도 많지만 반대하는 이유도 여러 가지다. 파병을 반대하는 사람들이 내세우는 몇 가지 중요한 반대 이유에 대해 다음과 같이 반론을 제기한다.
반대론자들이 가장 크게 내세우는 이유가 바로 명분과 관련된 것이다. 그들이 내세우는 명분은 주로 다음 세 가지와 관련되어 있다. 우선 이라크 전쟁은 최초부터 유엔의 승인을 받지 못한 침략 전쟁이라고 이들은 공격한다. 사실 미국은 더 이상의 무기 사찰이나 유엔의 동의를 얻으려고 노력하는 것이 의미가 없다고 결론짓고 미국을 주축으로 한 연합국이 이라크에 대한 선전포고를 하고 전쟁을 개시하였다. 그러나 유엔의 승인이 없기 때문에 명분이 없다는 논리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없다.
먼저 유엔이 어느 전쟁을 정당한 전쟁으로 인정할 권능이 있는가의 문제다. 결론은 유엔이 그러한 권능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는 것이다. 유엔의 결의, 특히 안전보장이사회의 결의는 단순히 5대 강국의 이해타산이 맞아 떨어진다는 합의의 의미밖에 없다. 거부권을 가진 5대 강국 중 어느 한 국가라도 반대하면 그 어떤 결의안도 통과될 수가 없다. 이번 이라크 전쟁과 관련하여서도 거부권을 가진 불란서가 자국의 이라크에 대한 석유 이익을 지키기 위해 미국에 반대한 것이다. 따라서 유엔의 승인이 마치 전쟁의 명분을 제공한다는 논리는 타당하지 않다. 안보리는 국제사법재판소와 같은 국제기구가 가지고 있는 권위를 가지고 있지 못하다. 단지 강대국의 이해관계의 합의가 이루어졌음을 보여줄 뿐이다.
이점은 6.25전쟁을 돌이켜 보면 명백해진다. 북한이 기습적으로 남한을 공격하였을 당시 만약 소련이 안보리에 참여하고 있었다면 아마 안보리의 결의안은 통과되지 못하였을 것이다. 그 경우에는 미국이 어쩌면 단독으로 한국에 파병을 결정하였어야 할 것이다. 당시 만약 소련이 안보리에 출석하여 거부권을 행사함으로써 유엔의 결의안이 통과되지 못하였다면 미국의 한국전 참전이 명분을 잃는가?
또한 전쟁은 일반적으로 최후 통첩–선전 포고의 과정을 거쳐 개시된다. 주권 국가간의 분쟁이 궁극적으로 무력에 의해 판가름나는 것이 현재의 국제질서다. 국내 질서처럼 범법자를 처벌할 권위를 가진 사법제도가 국제사회에는 아직 마련되어 있지 못하다. 연합국은 이라크의 후세인에 대해 최후 통첩을 보내고 이어 선전 포고를 선언하면서 전쟁이 개시되었다. 일본이 진주만을 공격한 것 같이 선전포고 없이 전쟁을 개시한 것이 아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이번 이라크 전쟁의 명분은 독재정권으로부터 이라크 국민을 해방하는 것에 있다. 오늘 날 우리는 모든 사람은 누구나 동등한 인격체이며 따라서 다른 사람도 나와 동일한 자유를 누린다는 조건 하에 누구나 최대의 자유를 누릴 권리가 있음을 인정한다. 다만 아직 국제질서가 국가주권에 바탕을 두고 있어 개인의 자유가 국가를 통해 실현되게 되어 있고 또한 국가 주권이 불가침의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어 타국민의 자유를 위해 해방전쟁을 일으키는 것이 쉽지는 않다. 그러나 독재정권의 국가주권을 방패로 자국민의 자유를 극도로 억압할 때 우리 자유시민은 그 국민을 도와 독재자로 몰아내고 그들에게 자유를 찾아 줄 의무가 있다. 이번 이라크 전쟁은 바로 독재자 후세인을 몰아내고 이라크 주민에게 자유를 찾아 주기 위한 해방전쟁이었다. 이보다 더 큰 전쟁 명분은 없을 것이다.
파병 반대론자들이 내세우는 두 번째 명분은 바로 대량 살상무기의 존재다. 미국은 이라크에 존재할 것으로 믿은 대량살상무기를 찾아내 파기하여 자유세계를 위험으로부터 보호한다는 것을 하나의 전쟁 목적으로 제시하였었다. 그러나 아직까지 미국은 대량살상무기의 찾아내지 못하여 전쟁의 명분이 없는 것으로 공격당하고 있다.
그러나 애당초 대량살상무기는 이라크 주민의 해방에 비해 부차적인 목적이었다. 뿐만 아니라 미국이 이라크에 대량살상무기가 존재할 것이라고 믿은 데에는 후세인의 잘못도 있다. 후세인은 대량살상무기를 사용한 전력이 있을 뿐만 아니라 걸프전 이후에 십여 년에 걸쳐 무기사찰단과 숨기기 게임을 벌였다. 무기사찰을 전면적으로 허용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무기사찰단을 강제로 추방하였다. 전쟁이 임박해서 무기사찰을 전격적으로 수용하기는 하였지만 이미 후세인데 대한 신뢰는 회복불능의 상태에 도달하였었다.
전쟁 직전 무기 사찰 연장의 필요성이 제기되었지만 그것이 후세인이 시간을 벌기 위한 속임수라고 미국은 믿었던 것이다. 따라서 대량살상무기와 관련하여 후세인은 미국과 지나치게 게임을 함으로써 미국이 더 이상 양보할 수 없는 상황으로 몰아넣었던 것이다. 결국 후세인의 계산착오로 전쟁을 막을 수 없었다. 단순히 미국의 잘못으로 모는 것은 형평성을 잃은 것이다.
파병 반대론자들이 내세우는 세 번째 명분은 석유자원이다. 그들은 미국의 이라크 공격 목적이 이라크의 석유자원 탈취이기 때문에 전쟁의 명분이 없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미국은 석유가 전쟁의 목적이라고 설명한 적은 한번도 없다. 이라크의 석유가 현재 세계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율도 그리 크지 않다. 오히려 미국의 이라크 공격 목적이 석유란 말은 후세인 자신이 퍼뜨린 것이다. 이들은 후세인의 말만 믿고 미국을 공격하는 것이다. 설사 미국의 암묵적인 목적 중의 하나가 석유자원의 확보라고 하드라도 문제될 것이 없다. 우리는 오래 전에 OPEC가 결성되어 석유를 무기로 사용한 적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자유세계에 석유가 중단 없이 그리고 가격의 변동 없이 공급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파병 반대를 주장하는 사람들이 내세우는 또 다른 파병 반대 이유는 한국이 주권국가이므로 미국의 요청에 대해 거부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파병을 하든 안하든 그것은 모두 주권국가로서의 한국의 선택이다. 반대만이 주권의 표현이고 찬성은 아니라는 식의 발상은 사실의 왜곡이다. 한국 정부는 한국의 국익을 위해 그 어느 쪽으로도 결정할 수 있으며, 어떻게 결정하여도 주권을 행사하는 것이다.
그들은 또한 한국이 미국의 요청에 응하는 것은 사대주의라고 몰아부친다. 그러나 주권국가간의 관계는 국익을 중심으로 절충하고 타협하는 관계다. 단순히 큰 나라라고 하여 무조건적으로 섬기는 것을 사대주의라고 한다면 주권국으로서 이해관계를 따져서 타협할 것을 타협하고 거절할 것은 거절하는 것은 사대주의가 아니다. 그러나 현실적인 세계질서가 강대국을 중심으로 형성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애써 강대국을 적대시 하는 것도 현실 외교로서는 타당하지 않다. 사대주의가 나쁘다면 강대국에 대한 무조건적 적대 정책은 더더욱 무모한 것이다.
그러나 마지막으로 이들의 명분론 자체가 비판을 받아 마땅하다. 주권국가로 구성된 국제사회에서 명분은 국익이다. 다시 말하면 국익이 곧 명분이라는 사실이다. 국제사회에서는 개인 사이에서나 있을 법한 명분은 없다. 오직 국익을 계산하고 그에 따라 전략을 수립하고 정책을 추진할 따름이다. 개인들 사이에 있음직한, 의리를 위해 목숨을 버리는 따위의 행동은 없다. 국가간의 거래는 철저히 계산된 행동일 뿐이다. 결국 국익을 떠난 명분은 없다. 징기스칸이 기마병을 이끌고 서쪽으로 진격할 때 수 많은 부족을 지나갔다. 어떤 부족장은 징기스칸에게 항복하기를 거부하여 부족이 몰살을 당하였다. 그 부족장은 헛된 명분을 쫓았던 것이다. 부족을 몰살시킬 명분은 없다. 이 시점에 우리도 헛된 명분론에 발목 잡혀 국익을 해치지는 않는지 되새겨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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