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를 인정하지 않는 양심
"영토를 지키는 것은 양심의 문제로까지 확대되지 않는다"
양심적 병역거부가 무죄판결을 받았다. 집총을 거부하는 ‘여호와의 증인’ 신도들은 국방의 의무에 임할수 없고 병역거부는 개인의 양심의 문제라고 한다. ‘양심의 자유’를 보장하는 헌법 19조를 젊은 담당판사는 적극적으로 해석함으로서 ‘국방의 의무’대신 ‘양심의 자유’의 손을 들어주었다.
모든 국민은 각자의 양심에 따라서 행동할 자유를 누릴 수 있다. 마찬가지로 모든 국민은 병역의 의무를 다해야 한다. 이 권리와 의무는 줄곧 충돌되는 개념으로 안보특수상황에 놓여있는 우리나라에서 논쟁거리가 되어왔었다. 헌법에 명시된 권리와 의무이기에 상하우열을 가릴 수 없는 인간의 기본권으로서 존중되었다.
양심의 자유와 국방의 의무는 헌법의 문제이기전에 국가존립의 문제이다. 그래서 각각의 권리와 의무는 ‘국가’의 존재이유에 구속된다라고 보는것이 이치에 맞다. ‘양심의 자유’를 적극적으로 인정하는 것은 국가의 존재이유와 방식에 상당한 혼란을 가져올 수 있다. 벌써 국민들은 병역의무와 양심의 자유사이에 혼란과 혼동을 일으키고 있다. 나에게 국가란 무엇인가 ?라는 문제제기와 함께 말이다.
국가란 무엇인가
일반적으로 국가는 3가지 요소로 구성된다. 첫째 국가는 제도들의 총체이다. 이러한 제도들은 자기 국민들에 의해서 기능한다. 가장 중요한 국가제도는 폭력과 강제수단을 보유한 제도인데, 예를들어 군대와 경찰이 여기에 속한다. 둘째 이러한 제도들은 일정한 영토안에서 제한된다. 세째 국가는 주어진 영토안에서 모든 법과 규범을 독점한다. 그리고 모든 국민들이 공유하는 공통의 정치사회문화를 이끌고 가는 것이 국가의 역할이다.
철학자 임마누엘 칸트는 국가란 안보의 필요한 도구라고 하였다. 국가의 존재이유는 안보와 국민의 안전에 있다. 외부의 침략으로부터 국민 스스로가 자기의 영토를 지키는 것은 양심의 문제까지 확대되지는 않는다. 특히 안보의 절박성이 높을수록 양심의 자유는 제한될수 밖에 없다.
양심의 자유가 완전히 보장되고 실현되는 경우는 안보의 필요성이 사라지는, 즉 국가소멸의 시기때 뿐이다. 이번 사건에 대하여 담당판사는 ‘양심의 자유는 천부인권이며 우리사회의 수준이 이제는 이런 판결을 용인할만큼 성숙됐다는 믿음을 갖고있다’ 라는 말을 남겼다.
그러나 법이 국가를 지배하는것이 아니라 국가가 헌법과 모든 법을 독점하기 때문에 법이 국가의 존재이유를 부정하여서는 안된다. 사회인식의 변화 역시 법의 영역이 아니라 국가의 영역이다. 앞에서도 언급하였듯이 국가는 모든 국민들이 공유하는 공통의 정치사회문화를 이끌어야 하기 때문이다.
국가를 인정하지 않는 양심을 국가가 인정하는 것
인간이 누리는 모든 자유는 평화와 안전이 있을때 지켜진다. 양심의 자유가 천부인권이라 할지언정 국가의 존재이유를 넘어설수는 없다. 초기 유럽중세때 국가기능은 교회에 의해서 제공되었다. 시간이 흘러 근대국가의 탄생은 국가는 더이상 종교적 종속물이 아님을 천명하게 되었고 영토적 주권개념을 확립하였다. 양심의 자유가 천부인권이라면 안보는 가장 기본적인 국가의 기능이다. 전자가 인간의 권리라면 후자는 국가의 기능이자 의무이다. 국가를 떠난 인간은 생각할 수 없다. 같은 논리선상에서 일정부분 인간의 권리나 자유는 국가의 기능에 의해서 제한되어야 한다.
특정종교 신도들의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는 단순히 헌법이나 4대 국민의무중 하나를 어겼다는 차원이 아닌 국가존재이유를 거부하는 것으로 연결된다. 병역거부를 정당화하려는 양심의 자유에 손을 들어준 것은 법적 오판이다. 모든 법은 국가존재로부터 나온다. 그리고 양심의 자유는 그 어떤 경우에도 국가존재이유를 부정할수 없다.
이번 판결은 국가를 인정하지 않는 양심을 국가가 인정하는 것이었다. 국민의 안전과 안보를 개인의 양심과 법적 잣대로 규정지을 수는 없다. 우리의 생명과 재산이 개개인의 양심의 자유에 의해서 불안해질 수 없기 때문이다. (데일리안)
[나기환 퀘벡대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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