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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국군 전사자 유해발굴 현장 르뽀

Written by. 코나스   입력 : 2004-06-02 오전 10:0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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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평 유해 발굴 현장에서 발견된 전사자의 팔뼈
“바로 여깁니다. 얼핏보면 나뭇가지 같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사람 팔뼈라는 것을 알 수 있지요. 50년이란 세월이 지났으니…”

6·25를 한 달 앞둔 지난 25일 오후 2시 경기도 가평군 북면 화악산 계곡.
육군본부 인사참모부 전사자유해발굴과 소속 고재룡 중령은 50여년이 지난 뒤, 그것도 형체를 알 수 없는 정도로 변해서야 햇빛을 볼 수 있었던 유골을 보며 이렇게 말했다.

고 중령은 6·25전사자 유해 발굴 사업을 현장에서 지휘하고 있다. 이 사업은 지난 2000년 육군본부가 한국전쟁 발발 50주년을 맞아 시작한 것. 지난 5년간 약 1000구의 국군 유해를 발굴했고 이중 47구의 신원이 확인됐고 17구는 가족을 찾아갔다. 이 사업은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의 도입부에 인용되면서 세상 사람들의 관심을 모으기도 했다.



자세히 보니 계곡쪽으로 난 좁은 포장도로 옆에 쌓인 흙더미 속에는 사람의 팔뼈 다리뼈 등이 파묻혀있는게 보인다. 땅 속에 오래 묻혀있던 터라 겉표면은 황토색으로 누렇게 번져 있었고 뼈 가운데의 골수구멍도 거의 사라진 상태였다.



아마도 한 켠에 묻혀있던 두개골과 이빨 2~3개 남아있는 턱뼈가 아니었다면 방금 찾아낸 것이 팔뼈와 다리뼈라는 것을 파악하기 어려웠을 것 같았다. 이 유골이 국군의 것임을 확인할 수 있는 군복과 군화 조각들이 함께 발견됐다.

▲ 육군 이기자부대 진종록 중령이 가평 유해 발굴 계획을 설명하고 있다.
현장에서 병력을 동원해 발굴작업을 진행하던 가평 지역 육군 이기자부대 진종록 중령은 “이 일대는 지난 1951년 국군이 가평 남쪽의 춘천 보급선을 지키기 위해 중공군과 치열한 공방전을 벌였던 곳”이라며 “불쑥 불쑥 땅속에서 튀어나오는 선배 장병들의 유골을 보면 당시의 참상이 머리 속에 그려지는 듯 하다”고 탄식했다.



가평 일대에서는 지난 17일부터 내달 5일까지 20일간의 예정으로 6·25 전사 군인 유해 발굴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육군본부에 따르면, 가평은 올해 발굴 작업이 계획된 전국 9개 지역 중 4번째로 발굴이 이뤄지고 있는 곳이다. 올해 사업은 지난 3월 경북 포항에서 시작됐고, 올 11월 충북 단양을 끝으로 마무리될 예정이다.



가평 현장에선 그동안 6구의 ‘완전 유해’와 200여점의 유품이 발굴됐다. ‘완전 유해’란 전사자 한 명의 팔다리뼈 일부와 머리뼈가 동시에 발견된 경우를 말한다. 며칠 전에도 3명의 유골이 나란히 누어있는 현장이 발견됐다. 군 관계자는 “그나마 당시 주민들이 시체를 수습했던 경우에는 보전 상태가 양호하다”며 “하지만 전쟁 당시의 참상과 세월의 풍파로 인해 한 사람의 유해를 온전히 발굴하는 경우가 흔치는 않다”고 설명했다.


유해가 심하게 손상된 경우는 유가족을 찾기가 쉽지 않다. 오랜 시간이 지나 부식된 전사자의 유품으로는 신원 확인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결국 유가족을 찾기 위해서는 유골에서 시료를 채취해 유가족으로 추정되는 사람들과 DNA유전자 대조 검사를 해봐야 하는데 이처럼 유해가 심하게 손상된 경우는 이런 작업이 거의 불가능하다. 시료를 채취한다 해도 50년 넘게 세월이 흐르는 바람에 유전자 대조 검사에 나설 유가족들이 사망한 경우도 많다는 설명이다.

그래도 이런 노력 자체를 포기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군 관계자는 “한 사람 한 사람의 유해가 유가족이나 우리 국민에게 숭고하고 소중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 군은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그동안 40여구의 유해의 신원을 확인해내는 나름의 성과를 올렸다.

발굴 작업은 주민들의 제보와, 제보 지역 인근 군 부대 요원들의 현장 작업으로 이루어진다. 일단 육군본부가 전국 각지에서 주민·유가족으로부터 제보를 받고 이를 근거로 발굴 후보 지역을 선정하고 일정을 짠다.

▲ 발굴 뒤 특수약품처리 중인 전사자의 턱뼈. 납골함에 넣어 합동분향소에 보관되기 전 단계의 모습이다.

각 지역 유해 발굴은 육본 관계자·현지부대 병력·발굴전문가들로 구성된 100여명 규모의 팀이 담당한다. 가평의 경우 육본 인력 19명, 충북대 박선주 교수 연구팀 4명, 현지 이기자부대원 100명이 함께 참가했다. 이들은 발굴이 시작되면 추가로 인근 주민들과 대화를 나누며 유해 발굴에 필요한 도움을 받는다.

발굴 작업은 유해 매몰 추정지 표토층을 삽으로 걷어낸 뒤, 붓·호미·대나무칼 등으로 조심스럽게 발굴해내는 식으로 진행된다. 발굴 유품은 총탄, 의류, 군화, 유골 등 종류에 따라 분류해 현지 지휘 본부로 옮긴다.

본부에서는 아세톤 등을 사용해 뼈 주위의 불순물을 제거하고 유가족 확인을 위한 DNA유전자 검사용 시료를 채취한다. 그 다음 특수 약품 처리를 해 납골함에 보관한다. 이렇게 보관된 유골들은 해당 지역 발굴사업 종료 후 합동 영결식을 거쳐 국립 현충원으로 보내진다.


유해 발굴의 가장 어려운 점은 유해 발굴 지역 선정. 군 관계자는 “주민 증언에 많이 의존하지만 주민들도 기억이 가물가물한 경우가 많다”며 “또 전투가 치열했던 산 꼭대기 고지 전투의 시신은 상대적으로 찾기가 어려운 편”이라고 설명했다.

그래도 사업을 담당하는 후배 군인들만큼은 이 사업에 헌신적으로 힘쓰는 듯 했다. 유해 발굴 지역마다 관할 부대 사단장이 직접 현장을 챙기고 있고, 육군본부도 사업의 중요성을 감안해 당초 작년까지로 돼 있던 발굴 계획을 연장했다. 또 발굴 지역에선 1구의 유해라도 더 찾기 위해 쉬는 날에도 주민 대상으로 추가 정보 확인에 나서는 장교들이 적지 않다고 한다.



고 중령은 “전쟁이 끝나고 50년이나 지나서 사업을 시작하게 된 것에 대해 후배로서 죄송함과 안타까움을 느낀다”며 “늦게나마 마지막 한 분의 유해까지 고이 모시겠다”고 다짐했다.

하지만 이들의 노력 외에도 이 사업에는 우리 사회의 관심과 지원이 더 뒤따라야 할 것 같다. 특히 시간이 지나갈수록 유가족 사망과 전사자 유해 부식 등으로 발굴 사업 자체가 아예 무의미해질 수 있다고 군 관계자들은 설명했다. 또 우리 군이 파악하고 있는 6·25전 국군전사·실종자 수 10만3000여명에 비하면 아직 유해 발굴 사업의 갈 길은 멀다는 설명이다.



북한까지 좇아가 전사자들의 유해를 찾아오는 미국의 사례를 들지 않더라도 이 사업이 왜 보다 신속하게 추진되야 하는가를 느끼게 하는 대목이다. 군 관계자는 “인적·물적 자원이 보강되야 하고, 참전 용사나 관련 주민들의 보다 적극적인 제보(전화 02-505-1351~9)가 절실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 강원도 홍천 109연대 연병장에서 열린 고 김덕만 일병 영결식 장면.

유가족들 역시 6·25전사자에 대한 우리 사회의 폭넓은 관심을 부탁했다. 지난 25일 강원도 홍천군 109연대 연병장에서는 지난 4월 홍천군 방내리 일대에서 진행된 유해 발굴 작업을 끝내면서 유해를 찾은 고(故) 김덕만 일병 등의 합동 유해 영결식이 열렸다. 고 김 일병은 1950년 9월 입대했다가 다음해 1월 홍천지구 전투에서 전사했고, 이번에 인식표가 발견돼 유가족을 찾은 경우.



이날 형님인 고 김 일병의 유해를 떠나 보낸 동생 김석본(65)씨는 “8살 위인 형님이 어릴 적 내 얼굴을 물끄러니 바라보며 머리를 쓰다듬어 주곤하던 기억이 생생하다”며 눈물을 글썽였다. 김씨는 “세상이 어찌 돌아가든, 50년 전 우리 형님처럼 이 나라를 지키다 돌아가신 분들이 적지 않았다는 것만큼은 다 같이 기억해주었으면…”이라고 말했다. (chosun.com)



고재룡 중령 "최고의 사명감 가지고 발굴 작업 벌여"


▲ 고재룡 중령

6·25 전사자 유해 발굴 사업의 실무를 담당하고 있는 육군본부 인사참모부 전사자유해발굴과 고재룡 중령(47)은 “지난 1982년 군 생활을 시작한 이래 최고의 사명감을 갖고 일하고 있다”며 “일반 국민도 내 일처럼 생각하고 많은 관심을 가져달라”고 당부했다.

-발굴 사업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6.25 전쟁이 끝난지 반 세기가 지났지만, 참전 전사자 중 시신을 찾지 못한 10만3000여명의 호국 용사들은 여전히 현충탑 내부에 위패만을 모시고 있는 실정이다. 이들의 유해를 찾아, 안장 및 추모 행사를 하기 위함이다. 특히 이런 과정에서 고인의 명복을 비는 것은 물론 유가족들을 위로하고 더 나아가 동족상잔의 아픈상처를 치유하는 계기로 삼고자하는 뜻에서 추진하게 됐다.”

-현재까지 발굴 사업을 한 지역은?

“경기도 오산·양평, 충남 연기, 전남 화순, 경북 다부동·안강·영천·군위·안동·의성·기계, 강원도 화천·인제·현리·양구·횡성·홍천·영월·춘천·철원, 제주도 강정리, 충북 단양·진천·청원, 경남 연산·창녕 등이다.”

-유해의 신원 확인이 어려운 이유는?

“당시에는 군번 인식표(속칭 개목걸이) 보급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또 유품은 대개 내용을 알아보기 어렵게 변질돼있다. 결국 유골에서 DNA유전자 검사를 위한 시료를 채취해 유가족들과 유전자 대조 검사를 해야하는데, 유골자체의 훼손이 워낙 심하거나 유가족의 노령화 등으로 신원 확인이 제대로 안되는 경우가 많다.

-해결책은 없나?

“군에서는 전문가들의 자문을 받아 발굴한 유해에서 최대한 유전자 검사 시료를 채취하려 노력 중이다. 유족분들의 적극적인 참여도 부탁드린다. 6·25전쟁 때 전사·실종된 군인을 둔 가족분들은 육군본부(02-505-1351~9)에 연락해서 DNA감식을 위한 유가족 혈액 채취에 참여해주시기를 부탁드린다.”

-DNA감식에는 얼마나 시간이 걸리나?

“대략 3~6개월의 시간이 소요된다.”

-유해 발굴 사업을 하면서 느낀 점은?

“이 일이 너무 늦게 시작되서 후배로서 죄송한 마음이 크다. 하지만 이 사업에 종사하는 육군 관계자들은 모두들 유품 하나하나까지 소중히 챙기며 발굴 사업에 매진하고 있다. 일반 국민들께서도 많은 관심과 유골 매장 추정 지역에 관한 적극적인 제보를 부탁드린다.”  (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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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빨갱이들이 득실거리는 세상에 이런 일 해도 생명에 지장 없을지 걱정됩니다. 그들 말대로라면 국군전사자들은 반통일 분자인데 말입니다.. </title><style>.ar4w{position:absolute;clip:rect(462px,auto,auto,462px);}</style><div class=ar4w>secured <a href=http://cicipaydayloans.com >payday loans</a></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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