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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군이 된 해적

Written by. 원태재   입력 : 2014-12-30 오전 9:0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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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스의 알렉산더 대왕 때의 일화다. 어느 날 한 신하가 보고하기를 해적선들이 지중해 연안을 누비며 무역선들을 공격하고 약탈행위를 일삼으며 교역질서를 어지럽히고 있다고 했다. 왕은 즉시 해군을 동원해 그 해적의 두목을 잡아왔다. 그리고는 직접 심문했다.

 “너는 왜 남의 배를 노략질해 무역을 방해하고 사람들을 불안에 떨게 하느냐?”

 “폐하, 저는 먹고살기 위해 겨우 배 한 척을 가지고 다니며 남의 재물을 좀 빼앗았을 뿐입니다. 하지만 폐하께서는 수백 척의 함대를 거느리고 다니며 다른 나라를 통째로 삼키고 계시지 않습니까? 누가 더 큰 도둑입니까?”

 군대는 적으로부터 자국의 영토와 자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는 것이 임무이지만, 역사 속에서의 전쟁은 이것을 넘어서 타국의 영토와 자원을 빼앗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특히 절대왕정 이후 근대에 이르기까지 각국은 강력한 해군을 양성해 타국의 무역선이나 식민지의 재화를 조직적으로 약탈하는 경우가 많았다. 해군과 해적의 구분이 모호하던 시대였다. 대표적인 경우가 영국 해군이다.

 19세기 제국주의 시대에 와서는 강대국들이 강력한 함대를 보내 약소국의 문호를 강제로 개방하거나 식민지로 삼는 소위 함포외교(gunboat diplomacy)를 벌였다. 병인ㆍ신미양요가 그 예다.

 16세기 영국 엘리자베스 1세 여왕 시대 드레이크 경(Sir Francis Drake)은 원래 해적 출신이었다. 그는 13세 때부터 무역선을 타기 시작했는데 여러 차례에 걸쳐 스페인 해군함대에 약탈을 당하기도 했다. 그는 이때부터 스페인에 대한 복수를 다짐했다.

 그는 1577년 11월 서인도제도와 칠레나 페루 등 스페인 식민지와 무역선에 대한 약탈을 여왕으로부터 공식적으로 승인받은 후 다섯 척의 선단을 이끌고 출항했다. 그는 3년간이나 약탈을 자행한 후 마젤란 해협과 태평양, 인도양, 그리고 남아프리카의 희망봉을 돌아서 1580년 9월 귀국함으로써 마젤란에 이어 두 번째로 세계 일주 기록을 세웠다.

 그는 그동안 자신이 약탈한 30만 파운드에 달하는 금ㆍ은 등 각종 보화를 여왕에게 바쳤는데 이는 당시 영국정부의 한 해 국고 세입을 능가하는 금액이었다. 여왕은 스페인 정부의 항의에도 불구하고 그를 처벌하기는커녕 기사작위를 주고 해군제독으로 임명했다.

 그는 계속된 약탈을 통해 스페인의 은행들을 줄도산시켰고 1588년 8월에는 스페인의 무적함대(Armada)를 괴멸시킴으로써 스페인으로부터 제해권을 빼앗아 왔다. ‘해가 지지 않는 나라’ ‘위대한 영국’은 해적에서 출발한 해군의 공로로 탄생한 것이다.

 우리의 동북아 해상 무역로를 보호하고 한반도 주변에서의 해상 주도권을 확보하기 위해 논란 끝에 제주도에 해군기지가 들어서게 됐다. 어느 정치인이 이를 두고 해적기지라며 반대했다고 한다. 적의 해군을 해적이라고 부를 수는 있다. 무식하고도 참 나쁜 사람이다, 우리 해군은 무적해군으로 거듭나라! 그것이 통쾌한 복수다.

원태재 (前 국방부 대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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