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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북아에 퍼지는 찬바람-新냉전

Written by. 박태우   입력 : 2015-04-13 오후 3:1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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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제 한반도에도 자연적으로는 훈풍이 분다. 봄이 오는 소식과 함께 꽃이 피고 새소리가 더 힘차게 들린다. 우주의 섭리는 여지없이 자연의 순환논리로 우리에게 또 다시 봄이라는 선물을 안기고 있다. 이러한 자연현상과는 별개로, 국제정치적으로 동북아의 안보상황을 보는 필자의 시각은 우려와 예측불가능성이다. 동북아에 6·25이후 60년 이상의 평화가 미국의 세려균형유지책으로 가능하게 되면서 우리는 안보가 얼마나 무서운지를 망각하고 우리가 누리는 평화가 공중의 산소와 같이 당연한 것처럼 착각하고 살아가고 있다. 한미동맹의 가치도 경시하는 풍조가 만연하고 있다.

 여기저기서 경고등이 켜지고 적색증후군이 나와도 그 때 뿐, 정치권도 시민사회도 국민들도 다시 망각하고 인기영합적인 계파싸움에, 집단이기주의에, 개인적인 이익 극대화에 모든 것을 걸고, 더욱더 중요한 우리들의 삶의 터전을 살찌우는 공공재를 온전히 보전하고 키우는 일에는 관심이 상대적으로 너무나 적은 것이 현실이다.

 최근의 THAAD와 AIIB문제를 보면서, 대한민국이 통일된 중견국가라는 전제가 아니라면, 우리의 현실에 대한 분석이 균형 잡히지 않았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우리 사회가 남남갈등이라는 고질적인 질곡에서 신음하니, 북한은 우리사회의 종북세력들을 이용, 사회혼란을 부추기고 있고, 일본의 아베정권은 역사수정주의로 이젠 독도를 자기네 땅이라 개정된 18종의 중고교교과서에 명확하게 명시하면서 韓日역사갈등의 고삐를 늦추지 않고 있는 것이다. 한미동맹의 틈새를 벌리려는 중국의 집요한 전략적 이이제이공세는 과거처럼 앞으로도 계속되어서 불안정한 한반도의 안보지형은 앞으로 더욱더 불안하게 될 것이다.

 돌이켜보니, 한반도주변은 전쟁이 끊이지 않은 전쟁의 역사였다. 한반도를 중심으로 1894-5년의 청일전쟁은 당시 외세배격을 외치던 동학란의 진압을 핑계로 자신들의 국익을 위해서 싸우다 일본이 승리하였고, 1904〜5년의 러일전쟁은 러시아의 남진정책을 견제키 위해서 영국과 미국의 응원을 받은 일본의 승리로 한반도는 메이지유신이후 근대화된 일본의 전쟁터가 된 것이다.

 그 뿐인가, 이 여세를 몰아서 1910년도에 일본은 대한제국을 합방하여 제국주의 진출의 전진기지로 모든 것을 수탈해갔으며, 그 연장선상에서 1931년 만주사변을 일으켜 만주의 영토도 점령하는 침략적인 제국주의의 후방기지로 한반도를 잘 활용하였다. 1937년의 중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의 침략적인 제국주의는 한반도의 모든 것을 동원체제로 바꾸고 활용할 가치가 있는 모든 것은 다 강제로 수탈해하는 수탈경제기지화로 조선의 백성들을 참 모질게도 억압하고 착취하였다. 이러한 와중에 일본군의 성노리개로 종군위안부문제도 생기게 된 것이다.

 일본의 제국주의적인 침략의 역사는 궁극적으로 1941년 미국을 대상으로 선전포고하고 태평양전쟁을 일으키며 한반도의 모든 것을 군수물자로 동원하다 1945년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두 발의 원자탄공격을 받고 미군에 항복한 것이다. 1950〜3년의 한국전쟁을 기점으로 후방 병참기지로서의 역할을 하면서 다시 경제부흥의 토대를 닦은 일본이 과거사에 대한 반성을 다 버리고 이제는 국제정치무대서 힘이 있는 행위자가 되겠다는 노골적인 야욕을 다시 아베정권의 전횡으로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역사적인 사건들이 일어난 지 얼마나 되었다고 우리 국민들이 평화타령만 하고 동북아안보지형의 급격한 변화를 읽지 못하고 ‘우물 안의 개구리 식’으로 국방을 상대적으로 경시 할 수 있는 것인가?

 우리가 지금 통일된 영국이나 서독이 아닌 이상, 우리는 지금보다는 더 국가를 위해 더 희생하는 마음으로 국가예산의 2.4%에 머물고 있는 국방예산도 늘리면서, 북 핵을 제거하는 총체적인 노력을 해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버거운 중국과 일본을 상대로 힘든 외교전을 전개해야 하는 우리가 “북한의 핵을 일리가 있는 것”이라 말하는 일부 反국가세력들의 정신이 나간 넋두리를 더 들을 여유는 더 이상 없다는 것이 필자의 서글픈 판단이다. 정신 차리자.

박태우 (고려대 연구교수의 푸른정치연구소 / 한국정치학회이사)

안보가 바로서야 나라가 바로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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