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연평해전 16주년에 붙여
"북한의 무력도발에서 얻은 값진 교훈 잊지 말아야"
오늘은 제1연평해전 승전 기념일이다. 해군은 매년 2함대(평택)에서 승전기념식을 갖는다. 제1연평해전은 북한 함정의 기습공격으로 1999년 6월 15일 오전 9시28분경 서해 연평도 서방 15km, NLL 남방 6.3km 우리 해역에서 남북 함정 간 함포전이 발발했다. 6·25전쟁 휴전이후 남북 최대 규모의 정규전이다. 북한 함정 10척과 우리 함정 12척이 전투에 참가했다. 해전에서 우리 해군은 압승(壓勝)을 거두었다. 북한 함정과 어선들이 해전발발 이전인 6월 7일부터 15일까지 연평도 서남방 해역에서 NLL을 여러 차례 침범했다. 우리 해군은 무력을 사용하지 않고 이들을 퇴거했으나 6월 15일 북한함정들이 함포로 기습공격을 가해오자 자위권 차원에서 즉각 격파사격을 하여 적(敵)을 무력화했다.
해전에서 북한군은 큰 피해를 입었다. 북한 어뢰정 1척 침몰, 중형경비정 1척 반(半)침몰, 대청급초계함 1척 대파, 대형경비정 1척 대파, 소형경비정 2척 기관실 파손에다 사망자 30여명과 부상자 70여명이다. 이에 비해 아군의 피해는 고속정 4척과 초계함 1척 기관실 및 선체 일부 파손, 부상자(경상) 9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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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도발의도
해군본부는 도발의도를「① NLL의 무력화 시도이다 ② 김대중 정부의 대북정책 기조인 ‘무력도발의 불용’ 원칙의 강도를 시험해 보려는 것이었다. ③ 한반도의 긴장고조를 통한 대남·대미 협상력을 높혀 보다 많은 정치적·경제적 지원을 유도하는 것이었다. ④ 남·북간 긴장분위기를 조성하여 북한 내부의 체제불안 요인을 제거하고 결속을 강화하며 더불어 강경파를 무마하기 위한 것이었다. ⑤ 북한이 주장하는 영해를 기정사실화하여 서해 5개 도서 인근해역의 어장을 확보하여 경제적 난관을 해결하려는 것이었다.」고 분석했다.
우리해군이 압승(壓勝)한 요인
장비와 화력에서 우리가 월등히 우세하였다. 연평해전 당시 NLL 현장 교전에 참가한 우리 해군 함정은 2개 전술전대 10척이었다. 1개 전대는 초계함(PCC) 1척과 고속정(PKM) 4척으로 구성됐다. 해군 대령인 전대장 2명이 각각 초계함에 승선해 현장지휘를 했다.
적(敵)의 함포는 수동(手動)이고 우리의 함포는 자동(自動)이었다. 정교한 사격통제레이더에 의해 조종되는 76mm포, 40mm포와 20mm벌컨포가 적함에 비 오듯 포탄을 퍼부어댔다. 특히 초계함의 사격통제장비와 76mm포· 40mm포는 정교하고 명중률이 높다.
그리고 장병들이 지휘관을 중심으로 필사즉생(必死則生)의 정신력과 NLL 사수의지가 투철했기 때문이다. 충돌식 작전에 직접 참가한 지휘관 및 승조원들은 교전 중 발생한 부상자를 배 뒤편으로 이동시키고 다른 수병들이 교대로 포대(砲臺)에서 응사를 계속하는 임전무퇴(臨戰無退)의 기상을 보여주었다.
우리 장병들이 북한군의 기습공격에도 전혀 당황하지 않고 침착하면서도 단호히 응징할 수 있었던 것은 실전과 같은 교육훈련을 통해 전투력을 증강해왔기 때문이다. 평소 투철한 교육훈련으로 어떤 상황에서도 즉각 대응할 수 있는 태세를 갖추고 있었기에 포탄과 총성이 쏟아지는 가운데서도 지휘관과 장병들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자신 있게 응사(應射)할 수 있었다.
교훈과 대책
제1연평해전이 일어나기 직전의 남북관계는 한국의 대북 포용정책(햇볕정책)에 따라 화해와 협력정책이 적극적으로 추진되고 있었다. 1998년 2월에 출범한 김대중 정부는 ‘일체의 무력도발 불용, 흡수통일 불(不)추구, 교류협력의 적극 추진’을 대북정책 3원칙으로 천명하였다.
이러한 대북포용정책이 적극 추진되면서 1999년 3월에는 비료 5만 톤이 북한에 전달되었고, 차관급회담을 통해 20만 톤 비료 제공이 합의되는 등 남북관계가 화해와 협력의 분위기로 돌아서고 있었다.
또한 현대의 금강산 개발계획이 쌍방 간 합의됨으로써 금강산 관광선 왕래 그리고 분단 후 최초로 북한지역에 민간 건축물인 금강산휴게소가 준공되기도 하였다.
그런데 북한 김정일(국방위원장)은 1999년 4월 3일, 조선노동당의 대외·대남 전략부서가 모여 있는 모란봉구역 전승동 ‘3호청사’에 들러 대남도발을 준비하도록 지시했다. 남북 민간교류 확대와 대북지원정책이 추진되고 있는 상황에서도 북한정권의 호전적인 성향과 ‘한반도 무력적화통일’이라는 대남 기본노선에 변화가 없다는 것이 확인되었다.
이런 교훈을 알고도 우리 정부는 이후 대북정책을 수정하지 않고 그대로 추진함에 따라 2002년 제2연평해전, 2010년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피격을 기습으로 또 당했다.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다. 북한은 5월초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수중사출시험에 성공했다. 북한은 파도관통형 함정(VSV, 시속 90km)과 헬기탑재 초계함을 개발하여 실전 배치했다. 어제는 김정은 참관 하에 함대함미사일(KN-01) 3발을 또 시험발사(100여km)했다.
북한은 지금 무력도발을 준비하고 있다. 이런데도 불구하고 우리는 남북대화 재개를 구걸하는 모양새다. 북한이 대화로 나오면 대북5·24조치 해체도 가능하다는 신호를 보내고 있다. 잘못된 정책으로 바로 잡아야 한다. 해군력 보강도 지체해서는 안 될 일이다. 북한의 무력도발에서 얻은 값진 교훈을 잊지 말아야 한다. (Konas)
김성만 예비역해군중장(재향군인회 자문위원, 前 해군작전사령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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