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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전쟁, 그리고 한강의 기적

Written by. 이상익   입력 : 2015-06-25 오후 12:2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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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년 이맘때면 우리는 동족상쟁 6·25를 기억하며 저마다 호국보훈을 힘주어 얘기한다. 누군가는 6·25를 잊힌 전쟁이라고도 했지만, 이 땅에서 오늘을 살아가며 자유와 평화, 그리고 번영을 누리고 있는 우리는 결코 6·25전쟁을 잊어선 안 될 것이다.

 1950년 6월 25일 새벽, 소련의 사주를 받은 북의 김일성은 T-34 소련제 탱크를 앞세우고 물밀듯이 남쪽을 향해 무력으로 침공해 왔다. 일요일, 그리고 새벽 미명에 저들의 대포 소리와 전차 굉음에 놀란 우리 아군은 소총 한 자루로 사력을 다해 봤지만, 역부족으로 남으로 남으로 밀릴 수밖에 없었다.

 당시 북의 김일성은 1945년 광복 이후 중·소 비밀군사 협정을 체결하고 소련으로부터는 전차와 항공기·포병 화력을, 중국으로부터는 한인계 중공군의 북한군 편입 등 막대한 군사력을 지원받으며 18세부터 40세까지 남녀 270만 명을 동원하며 군사훈련을 실시하는 등 완벽하게 남침준비를 완료했던 것이다.

 이로 인해 우리 남한은 부산만 남기고 낙동강전선까지 밀려 그야말로 공산화의 백척간두에 서게 됐으나 UN군의 인천 상륙작전으로 기사회생하며 두만강까지 반격하는 등 밀고 밀리는 전투 끝에 1953년 7월 27일 휴전을 맞아 북위 38선 이북은 김일성 왕조체제로, 그 이남은 자유대한민국으로 양단돼 지금껏 이념과 체제를 달리하고 있는 것이다.

 3년여의 동족상쟁, 그 상처가 얼마나 깊고 아픈가! 미군 3만7000여 명의 전사자를 포함한 피아 수백만 명의 사상자를 낳았으며 공공시설, 가옥, 공업시설 등은 그야말로 잿더미가 되고 말았다.

 우리는 지난 2010년 천안함 피격사건을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그때 우리 국민 모두는 46명 희생 장병을 생각하며 얼마나 비통해했는가? 그런데 6·25전쟁은 미군 전사자만도 300명, 3000명이 아닌 3만7000명이나 된다고 생각해 보면 그때를 체험하지 않은 전후 세대라 할지라도 당시의 처절함을 충분히 실감하고도 남음이 있다.

 대한민국은 이 같은 6·25 동족상쟁의 아픔과 시련 가운데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눈부신 경제발전을 이룩해 세계가 극찬하는 한강의 기적을 일궈냈다. 국민소득 100달러에도 못 미치는 세계 최빈국이 전쟁의 잿더미를 딛고 일어나 국민소득 3만 달러를 목전에 두고 있다.

 이제 완구제품, 가발, 김 등을 내다 팔던 나라에서 세계 시민의 손에 스마트폰을, 세계 도시에 우리 자동차를, 바다에서 석유를 뽑아 올리는 시추선을 파는 나라가 됐다. 이게 기적이 아니고 무엇이 기적인가? 그러나 아직도 한반도에는 1000만 명에 가까운 이산가족이 혈육을 그리며 애타게 울부짖고 있고, 전쟁으로 인한 증오와 불신으로 남북이 휴전선을 사이에 두고 100만 대군이 팽팽히 대치하고 있다. 참으로 안타깝고 서글픈 현실이다.

 대한민국은 분단 70년을 맞으며 민족통일을 염원하고 있다. 우리는 “우리의 소원은 통일, 꿈에도 소원은 통일, 통일이여 어서 오라”고 노래하며 살지 않았던가! 우리는 기필코 당대에 산업화, 민주화의 기적을 넘어서 민족통일의 기적까지 달성해 내는 위업을 남겨야 할 것이다.

이상익 (前 의정부재향군인회장)

* 국방일보 6월25일 26면 ‘오피니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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