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민 굶기는 정권은 미래가 없다
“많은 인민들이 옥수수를 지겨워해서 우리도 러시아처럼 감자를 주식으로 정착시키고 싶은데 인민들은 굳이 쌀을 요구하고 있다.”
2001년 7월 전용열차를 타고 러시아를 찾은 북한의 김정일은 식량문제에 대해 이같이 말했다. 그는 “(쌀과 같은) 곡물의 운송비용이 높다” “독일 사람들도 감자를 주식으로 삼았는데 왜 우리는 못 하는가”라고도 했다.
당시 그의 맞은편에는 러시아연방의 극동지구 대통령 전권대표(부총리급)인 콘스탄틴 풀리콥스키가 앉아 있었다. 풀리콥스키는 한 달 가까이 김정일과 동행한 경험을 ‘동방특급열차’라는 제목의 책으로 펴냈다. 책 곳곳에선 북한의 식량난에 대한 김정일의 이율배반적인 행태가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김정일은 전용열차에서 프랑스에서 유학한 요리사들이 상어 지느러미와 왕새우 등으로 만든 15∼20가지 코스 요리를 즐겼다. 포크와 나이프를 능숙하게 사용하면서 고급요리의 조리법을 줄줄 꿰는 김정일을 러시아 측 관계자들은 미식가라고 치켜세웠다. 김정일은 주식을 강냉이에서 감자로 바꿔야 한다는 궤변을 늘어놓으면서도 1990년대 중반 ‘고난의 행군’ 시절 수백만 명이 아사한 데 대해선 일절 언급하지 않았다.
그로부터 10여 년이 흘렀지만 북한의 식량난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만성적 식량난으로 평양을 제외한 대부분의 북한 주민은 굶주림에 허덕이고 있다.
올해도 가뭄이 심해 농사에 큰 피해가 예상된다는 분석이 많다. 일각에선 머잖아 북한의 식량난이 극에 달해 잠재적 불안사태가 발생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식량난을 방치할 경우 정권의 존립이 위태로울 수 있다는 북한 지도부의 위기감도 엿보인다.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는 2012년 4월 두 차례 발표한 노작(作)에서 “인민들의 식량문제부터 풀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핵과 미사일 개발을 앞세운 선군정치를 고수하는 한 북한 주민의 주린 배를 채울 방법은 요원하다. 세 차례의 핵실험을 포함해 북한이 지금까지 핵개발에 쓴 비용은 총 65억 달러(약 7조5500억 원)로 추산된다. 현재 배급량 기준으로 북한 전체 주민의 8년치 식량을 구입할 수 있는 돈이다. 한 차례 발사에 3억 달러(약 3480억 원)가 들어가는 장거리 로켓의 개발비용은 포함시키지 않았다. 북한이 핵과 미사일 개발을 고수하면서 인도적 대북지원도 갈수록 줄고 있다.
책에 따르면 김정일 위원장은 당시 러시아 고위관계자를 만난 자리에서 “모두가 비난해도 나는 올바른 길을 가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의 오판은 김정은 후계체제로 이어져 한반도의 반쪽을 기아와 사투를 벌이는 절대 빈곤국으로 전락시켰다. 먹는 문제 등 민생 해결과 개혁·개방을 통한 정상국가화 외에는 다른 선택지가 없음을 북한 지도부가 더 늦기 전에 깨닫길 바란다.
주민의 배고픔을 내팽개치고, 핵과 미사일 개발로 국제적 고립을 고수하는 시대착오적 정권에는 미래가 없다.
윤상호 (동아일보 군사전문기자)
* 국방일보 8월7일 8면 ‘오피니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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