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8·25합의’ 의의와 기대
목함지뢰로 촉발된 군사적 긴장상태가 대화로 마무리됐다. 쿠바 미사일 위기 해결의 한국판이라고 평가할 만하다. 케네디와 흐루쇼프 간의 강대강 대결로 핵전쟁이 발발할 수도 있었던 상황이 대화로 해결된 그 사건 말이다.
지난 며칠 동안 우리는 작은 사건 하나만으로도 남북 대치상태가 파국으로 치달을 수 있다는 사실을 다시 확인했다. 그래서 진통 끝에 타결된 8·25합의 소식은 회담 결과를 확인하면서 초조하게 보낸 시간에 대한 최고의 보상이다.
8월 25일이 박근혜 대통령 임기가 딱 절반이 되는 시점이었다는 점에 극적인 요소가 더해졌다. 그동안 현 정부의 대북정책을 평가함에 있어 축구경기를 예로 들면서 ‘아직 전반전도 끝나지 않았는데 후반 30분이 다 된 느낌’이라는 평가가 있었다. 지지부진한 경기가 이어지면서 안 봐도 뻔한 시합이 될 것 같다는 예측이 있었던 것이다. 남북관계의 돌파구가 마련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 극적인 모멘텀(Momentum)이 만들어졌다. 그동안 장애요인으로 작용했던 북한 문제가 풀리기 시작하면서 한국이 동북아에서 적극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됐다. 이제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 동북아 평화협력구상, 유라시아 이니셔티브(Initiative)가 구체적으로 논의될 것이다. 벌써 남북정상회담 가능성을 점치는 논의마저 나오고 있다. 불과 며칠 전과 비교해볼 때, 참으로 대단한 변화라 아니할 수 없다.
이번 8·25합의는 국방 차원에서도 많은 함의를 주고 있다. 가장 큰 함의는 남북관계가 잘되려면 군사문제가 먼저 해결돼야 한다는 점이다. 군사적 신뢰구축은 우리가 평화를 구걸하는 처지일 때 확보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강할 때 형성된다는 것도 확인했다.
국방부 장관의 강한 대응의지 표명, 전 전선에서 우리 군이 보여준 확고한 대비태세, 한미동맹의 견고성에서 우리의 능력과 의지가 저절로 드러났다. 북한 군사동향에 대한 적절한 정보공개는 여론의 결집에도 도움이 됐다. 위기관리의 삼박자가 잘 맞았다.
그러나 아쉬운 부분도 있다. 북한의 잠수함, 특수전 전력 등 비대칭 전력에 대한 대비에 여전히 우려할 만한 요소가 남아 있었다. 북한의 대량살상무기에 대한 대응을 미국의 전략자산에만 의존할 것인가 하는 점도 생각해볼 문제다. 우리 자신의 억제전략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1962년 핵전쟁으로 치달을 수 있었던 쿠바 미사일 위기를 대화로 극복한 미국과 소련은 이후 양자관계의 급진전을 보여주었다. 위기 재발을 막기 위해 백악관과 크렘린 간에 핫라인도 설치됐다. 1963년 8월 30일, 케네디는 백악관에서 크렘린과 직통전화를 한 최초의 미국 대통령이 됐다. 위기가 새로운 기회를 창출한 셈이다.
2015년 한국과 북한 간에도 이러한 극적 반전이 이루어지기를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 전 세계에서 중무장 화력이 가장 집중된 한반도, 냉전적 대결구도가 잔존하는 이 땅에서 새롭게 평화의 모멘텀이 싹틀 것 같다. 8·25합의의 울림이 멀리 퍼지기를 바란다.
부형욱 (한국국방연구원 국방전략연구실장)
* 국방일보 8월26일 17면 ‘오피니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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