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또 다른 얼굴을 살필 때
1년8개월 만에 재개된 제20차 남북 이산가족 상봉이 10월26일 막을 내렸다. 이번 상봉은 지난 8월 북한의 지뢰도발과 포격도발로 인한 남북 간의 긴장 국면에서 극적으로 타결된 ‘8·25합의’의 일환이다. 6개 항의 합의사항 중 북측의 유감 표명과 준전시상태 해제, 남측의 확성기 방송 중단에 이어 이산가족 상봉까지 완료됐지만, 앞으로 진행될 남북 당국자 회담과 민간교류 활성화는 북한의 진정성 있는 태도에 달렸다. 북한은 지난 8월 서부전선에서 두 차례의 포격도발을 감행하고 준전시상태까지 선포해 위협수위를 높이면서도 판문점 채널을 통해 우리 정부에 관계개선을 희망하는 이중적 태도를 취했던 것이다.
협상을 투쟁의 대체물로 보지 않고 다른 수단을 통한 투쟁과 전쟁으로 인식한 레닌의 전술을 이어받은 김일성은 분단 이후 ‘전 조선 제(諸)정당 사회단체 대표자 연석회의’에서 주한미군 철수를 선동했고, 6·25남침을 불과 일주일 앞두고 ‘남북한 의회통합’을 제안해 전쟁기도를 은폐하기 위한 연막전술로 활용했다.
또한 7·4남북공동성명에 합의하고 남침용 땅굴을 뚫었으며(1972), 서울올림픽 동시 개최를 제의하면서 KAL 858기를 폭파하는 테러를 감행했다(1988). 김정일은 금강산 관광에 합의하고도 동해안 지역으로 잠수함을 이용해 무장간첩을 침투시켰으며(1998), 남북 간 교류가 증대되는 화해협력의 시기에도 제1연평해전(1999)과 제2연평해전(2002)을 유발했다. 천안함 피격이나 연평도 포격도발(2010)도 이산가족 상봉이나 남북관계 개선을 피력한 이후였다. 김정은은 거듭된 신년사에서 남북관계의 개선을 표명했지만, 장거리 로켓 발사(2012)와 3차 핵실험(2013)에 이어 또 다른 미사일 시험발사와 4차 핵실험을 예고하고 있다.
이처럼 김일성과 김정일로부터 간교한 화전 양면전술을 이어받은 김정은은 앞으로도 무력도발과 대화전술을 더 적극적으로 전개할 것으로 보인다. 8·25합의 후 노동당 군사위 확대회의에서 김정은은 “교전 직전에 다시 찾은 평화는 회담 탁상 위에서 얻은 것이 아니며, 우리 당이 키워온 자위적 핵 억제력을 중추로 하는 무진 막강한 군력과 일심 단결된 무적의 천만대오가 있기에 이룩될 수 있었다”고 말했다. 내부의 불만세력을 제거하고 세습독재체제를 유지하면서, 남한 사회의 분열을 야기하고 안보의지를 약화시키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화전 양면전술이 가장 효과적일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북한은 이산가족 상봉 중인 10월 24일에도 서해 NLL을 침범하고 우리의 경고사격에 대해 “남조선 군부 호전광들이 군사적 도발을 감행했다”고 억지 주장을 폈다. 남북관계가 개선된다고 하더라도 북한의 대남도발 위협은 결코 사라진 것이 아니며 대화의 위장막에 잠시 들어가 그 야욕을 숨기고 있을 뿐이다.
따라서 우리는 올해 국군의 날 기념식에서 박근혜 대통령께서 “장병들의 투철한 애국심과 결집된 안보의지가 어떤 무기보다 중요한 국방력의 기반이자 최고의 무기”라고 강조한 것을 명심해 북한의 화전 양면전술을 확실히 인식하고 동계작전태세 완비에 만전을 기해야 하겠다.
김성화 예비역 육군중령 (나라사랑운동본부 교수)
* 국방일보 11월2일 ‘오피니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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