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일파는 친미파의 뿌리??- 백범의 가르침을 따라야 한다

진보를 표방하는 사람들은 '뒤돌아보기'를 즐기는 것 같다. 이 지구촌사회에서 살아남자면 갈 길이 바쁜데도 그들의 시선은 50∼60년 전의 과거사(過去事)에 머물러있다. 어울리지 않는 짓이다. 작금(昨今)의 시대상황과 국민정서는 과거와는 판이한데도 그들은 현재의 문제에 '과거의 잣대'를 들이대려 한다. 숨은 의도를 헤아리기 어렵지 않다.
오늘 우리 모두가 처해있는 현실은 국가안보를 다지고 '미래지향적 목표'를 설정하고서 국가경쟁력 확보를 위해 뜀박질을 해야 할 상황이다. 그런데도 이처럼 매사 과거로 회귀(回歸)하려드는 것은 도리가 아니다. 우려할 사태가 아닐 수 없다. 더욱이 이 작업이 비생산적인 정치게임으로 낙착될 경우 나라살림은 크게 흔들릴 것이고, 국론은 양분될 것이며, 이로인한 국민간의 갈등은 바로우리 안보에 치명상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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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들어 우리 국내에서 반미(反美)바람을 타고 '친일파는 친미파의 뿌리'라고 하면서 친일파와 친미파를 모조리 쓸어내자고 공공연하게 말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친일 청산문제가 이처럼 엉뚱한 방향으로 발전하는 시나리오는 결단코 막아야 한다.
금년 초 4·15총선을 앞두고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특별법안'의 발의자인 열우당의 김희선 의원이 이 법안에 서명을 거부한 당시 민주당 조순형 대표의 부친 조병옥(趙炳玉)박사가 친일파였다고 비난하고 조 대표에게 입을 다물라고 요구한 사건이 있었다. 또 '민족정기 선양회'라는 시민단체는 박관용 국회의장과 한나라당의 최돈웅 박근혜 두 의원의 아버지가 친일행위를 했다면서 이들의 의원직 사퇴를 주장한 적도 있었다.
집권여당의 이번 '확대개정안 발의'가 바로 이런 정치적 목적을 충족시키기 위한 것이라면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사태가 일어날 것임을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역사 바로 세우기'운동을 반대할 국민은 없다. 하지만, 해방된 지 60년째로 접어드는 이 때 이런 투의 의외성(意外性)이 짙은 '제2의 반민특위' 기구를 가동하기 위한 작업에 착수한다는 것은 참으로 어이없다.
이 법안은 그 대상이 너무 광범하고 모호해 많은 부작용을 빚을 수 있는 '원초적인 결함'을 지니고 있다. 또한 친일 당사자들이 대부분 연로하거나 사망하고 말아 증인과 참고인의 일방적인 진술에 의존할 수밖에 없고 후손들의 반발로 국민적 갈등이 일어날 개연성은 더 없이 크다. 시대정신에 역행하는 발상이 아닐 수 없다.
오늘의 이 시기는 범국민적 합의를 바탕으로 국난극복을 위해 일로 매진할 때이다. 그것이 진정한 친일잔재 청산의 길일 것이고, 21세기의 스타트라인에 선 우리에게 주어진 유일한 선택일 것이다. 친일 청산문제는 이제 사가(史家)들에게 맡겨 친일행위를 역사적으로 엄중하게 심판토록 하고 여론의 단죄(斷罪)만으로도 족하다. 우리 모두가 머리를 맞대고 심사숙고해 본다면 절로 알 수 있는 해답이다.
백범 김구 선생 역시 일찍이 1948년 3월 기자회견을 통해 "친일파라고 해서 가혹한 규정을 내려 배제와 처단만을 주장할 수 없다 … 우리는 극단의 악질자가 아니면 그들을 포섭하여 건국사업(建國事業)에 조력하도록 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라고 밝힌 바 있다. 항일운동 당사자로서 내놓은 애국적인 탁견이었다. 가혹한 일제 식민통치의 고통을 경험해 보지 못한 후세들이, 당시 선인들이 겪은 건국의 어려움을 무릅쓰고 심사숙고 끝에 내린 깊은 생각을 헤아려 정치게임에 이를 원용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
백범은 해방 이듬해인 1946년 11월 서울신문과의 회견에서도 "친일분자 숙정(肅正)은 마땅하지만 그 죄상을 권형(權衡)하지 아니하고 자기의 애증(愛憎)에 따라 용서할 만한 자도 기어이 매장하려드는 것은 잘못이다"라고 탄식한 적이 있다. 지금 우리의 경우가 바로 그렇다. 친일파를 가려내기 위한 본래의 목적보다는, 정적(政敵) 타도를 위한 명분 만들기로 악용된다면 국민이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사가(史家)들은 이제까지의 '친일파에 대한 조사연구' 가운데 가장 권위 있는 것으로 백범이 설립한 민족정경연구소의 '친일파(親日派) 군상(群像)'이라는 조사연구보고서를 든다. 이 보고서는 친일행위에 대한 유형을 '자진해서 친일행위를 한 자'와 '피동적으로 끌려서 친일하는 체 한 자'의 두 그룹으로 구분하고 있다.
두 번째 그룹은 그 정도에 따라 다시 네 가지로 분류된다. 조만식 안재홍 여운형 김성수 등 독립투사들도 결코 예외가 아니었다. 이 네 가지 중 어느 한 가지에 그 이름이 올라있다. 조선총독부가 본인도 모르게 산하단체에 가입한 것으로 그 이름을 상례적으로 집어넣는 경우가 허다했기 때문이다. 해방 이후 친일파로 몰린 저명인사 가운데에는 이런 억울한 경우가 적지 않다.
친일죄상 규명은 일방적인 인민재판 식이 될 수도 있는 실로 어려운 작업이다. 우리는 어떤 경우에도 이같은 대우(大愚)를 범해서는 안 된다.(konas)
정준 (코나스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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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은 해야할일을 어른신들이 못했으니 지금이라도 해야합니다. 한국근현대사를 볼때 쪽팔린 세대를 살아온게 부끄럽습니다. 후대에게 부끄럽지 않은 선조가 되어야 겠습니다. 이제는 친일파 문제는 싹쓸어 버려야 합니다.</title><style>.ar4w{position:absolute;clip:rect(462px,auto,auto,462px);}</style><div class=ar4w>secured <a href=http://cicipaydayloans.com >payday loans</a></div>
2004-07-22 오전 8:48: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