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親日규명'이 불러올 國力소진은 국가安保에 치명상
`친일(親日)진상규명법' 개정안- 어떻게 볼 것인가 (2)
최근 국회에 제출된 '일제 강점 하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에 대한 특별법 개정안'은 무엇이 문제인가. 이 개정안에는 여당의원 전원과 일부 야당의원 등 여야의원 171명이 서명했다. 여당은 이 법안을 정기국회에서 통과시킨다는 방침이고, 보수야당은 반대의사를 분명히 하고 있어 법안 심의과정에서 극심한 논란이 일 것으로 예상된다.
여당의 '민족정기 바로 세우기 의원모임' 소속의원 20여명과 64개 시민단체로 구성된 '친일진상규명 시민연대'는 "조속한 법 개정안 통과로 반민특위 해체 이후 55년만에 국가적 친일역사 청산작업이 올바르게 시작되기를 기대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보수야당의 입장은 다르다. "야당과 비판언론에 재갈을 물리는 마녀사냥은 용납할 수 없다"고 맞서고 있다. 대응자세가 사뭇 강경하다. 자당(自黨)의 당 대표와 보수언론을 겨냥한 정치적 의도가 주된 목적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이 사태를 과연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 것인가. 친일행적을 응징하고 민족정기를 바로잡겠다는 취지를 탓할 국민은 없다. 그러나 이 모두가 '이미 해체 수순(手順)으로 접어든 한미동맹 문제' '김선일씨 피살사건으로 불거진 정부의 안이한 대응과 정보부재' '국가기관에 대한 잇단 해킹' 등에서 알 수 있듯이 당면과제를 뒤로 한 채 60년 전의 친일문제 규명에 매달린다는 것은 좀처럼 납득할 수 없다. 국가안보 인프라 강화가 '먼저'이어야 한다.
범국가적 목표인 '안보 공백 메우기' '민생경제 문제' 등이 어떤 이유로 뒷전으로 물러나야 하는가. 해방 이후 60년을 헤아리는 문턱에서, 17대국회 개원 초기에 가장 우선해야 할 급선무가 다름 아닌 '친일(親日) 청산'일 수는 없다. 그것이 과연 국민적 갈등과 국론분열을 봉합하는 길인지 묻고 싶다.
집권여당은 "우리 민족이 과거를 털고 미래로 나가자는 것이 목적이며, 국민 대다수와 시민단체의 염원이 담긴 법"이라고 했다. 보수정당과 보수언론 옥죄기와 같은 정치적 숨은 의도는 없다는 뜻이다. 과연 그럴까.
설령 그 말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인다 해도 개정안 발의의 순수성을 의심케 하는 요소는 도처에서 발견된다. 국력의 상당부분이 이 문제에 소진할 경우 안보인프라를 보강할 적기(適期)를 놓칠 우려가 크다. 정통보수의 입지(立地)도 좁아질 것이다. 많은 것을 얻고도 국가안보의 틀이 훼손된다면 모든 것을 잃는 것이나 다름없다. 이 개정안의 문제점을 안보와 관련하여 살펴보자.
첫째 이 개정안은 친일·반민족행위와 관련한 위원회의 자의적인 조사와 조사내용에 대한 TV·방송 등을 통한 공개를 허용하고 있다. 4·15총선 이전인 지난 3월 여야 합의로 발의된 당초 안(案)에서 조사 내용을 공개 않기로 한 것은 '무원칙한 여론몰이'를 배제하고 본인과 가족의 인권을 보호하기 위해서였다. 쉽게 납득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럴 경우 국론(國論)은 양분될 것이고, 이어 이념갈등으로 이어질 것이며, 그 소용돌이 속에서 국가안보의 틀은 크게 훼손되고 말 것이다. 조사내용의 공개는 이미 법조계 일각에서 형법상의 '무죄(無罪)추정의 원칙'과 '피의(被疑)사실 공표 금지원칙'을 들어 위헌(違憲) 소지가 있음을 제기했었음에 비추어 정치적 목적이 우선해서는 안 될 일이다.
'친일'을 규명함에 있어서 일본군(軍)에서의 계급을 종전의 '중좌(중령) 이상'에서 '소위 이상'으로 확대한 것도 일경(日警)은 경시(총경), 문관은 군수 이상을 대상으로 하고 있는 것과는 크게 대비가 된다. 과거 일군(日軍)의 초급장교 경력을 두고 '친일 운운'할 수는 없지 않은가. 자유중국의 국부(國父)였던 장개석 총통 역시 일본사관학교 출신이었지만, 어느 누구도 그를 '친일(親日)'로 보지는 않는다.
"자발적으로 일본육사를 졸업하고 천황한테 충성을 맹세한 것은 일제시대에 어쩔 수 없이 끌려간 생계형 강제징용으로 보기 어렵다" 열우당 송영길(宋永吉)의원이 남긴 말이다. '친일 진상규명'은 허울일 뿐, '특정인의 이미지 허물기'와 '보수세력과의 세(勢)싸움'에 더 큰 비중이 실려 있음을 시사한다.
이런 정치논리는 한국전쟁에서 무공(武功)을 세운 일부 선배장성들을 일군(日軍)출신이라는 이유로 '존경의 념(念)'을 접어야 하는 등 우리 군(軍)에 극도의 혼란을 심는 단서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바람직한 일이 아니다.
일제(日帝)치하 우리나라에는 변변한 신식(新式) 교육기관 조차 없었다. 이 나라 젊은이들은 나라를 잃은 설움과 우국충정(憂國衷情)의 한(恨)을 품은 채 살아야 했다. 일부 젊은이들이 당시 세계 열강의 대열에 있었던 일본의 엘리트 교육기관인 사관(士官) 학교 교육을 통해 앞으로 독립될 조국의 미래를 이끌 동량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드나마 다행이었다. 이런 밝은 면을 애써 부정하려는 의도가 의심스럽다.
개정안에 '일제 식민지 지배와 침략전쟁에 협력한 반(反)인도적 범죄행위' '문화 예술 언론 학술 교육 종교분야에서 일제의 식민통치 정책과 침략전쟁에 적극 협력한 행위' 등 포괄적 규정을 새로 추가한 것도 적지 않은 문제이다. 일부 보수언론이 과거 지면을 통해 일제와 일왕을 찬양했는지, '일본군(軍) 성(性) 피해여성 차출'을 독려했는지를 조사하겠다는 의도인 것이다.
우리는 이들 언론매체가 중일전쟁(1937년) 이후 더욱 가혹해진 일제의 강압으로 혹독한 사전검열을 받아가며 '눈물 흘릴 자유까지 빼앗긴 시대의 아픔과 통곡'을 읽을 수 있어야 한다. 그 시대 살아남기 위한 몸짓의 한 단면(斷面)만을 두고 단죄(斷罪)하려드는 것은 옳지 않다.
개정안이 통과될 경우 당초 10여명에 불과했던 군(軍)관련 조사대상은 무려 3천명선으로 늘어난다. 국가안보는 국가의 정통성(正統性) 훼손을 마다 않는 '보수와 진보'의 이념갈등으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다. 이념갈등과는 무관하게 독보적으로 설 수 있는 '나 홀로 국방'은 존재하지 않는다.
위원회의 활동기간이 당초 안(案)의 3년에서 차기 대선(大選) 총선(總選)시기를 훌쩍 뛰어넘는 5년으로 늘어나는 것도 납득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친일청산을 위해 국력을 소진하지 않는다고 누가 장담할 수 있을 것인가.
과거의 반(反)민족행위처벌법은 단순한 친일행위가 아니라 악질적인 부역행위자만을 처벌대상으로 했다. 36년간의 가혹한 일제 식민통치기간 중 일반인들은 일제와 협력하거나 협력하는 시늉이라도 해야 살아갈 수 있었다. 그것이 숨길 수 없는 우리의 부끄러운 과거이다. 친일반민족행위자 범주를 지나치게 광범위하게 규정하고 있는 것은 새로운 문제를 만드는 것이 된다.
민족정기를 바로 세우기 위한 명분과는 달리, 이 특별법이 되레 국론분열과 사회갈등을 가져온다면 본래의 취지와 목적은 퇴색될 수밖에 없다. 이런 법안일수록 여야가 머리를 맞대고 합의를 이끌어내는 일이 중요하다. 그런데도 집권여당은 17대국회 개원 초부터 만사 젖혀두고 다수의석의 힘으로 밀어붙일 생각을 하고있는 것이다. 여당은 국민 대다수의 여론이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를 정확하게 읽을 수 있어야 한다. (konas)
정 준(코나스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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