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전 51주년- 북한은 '그대로'…우리만 '무장해제' 될 말인가
"조인이 계속되고 있는 동안 유엔전폭기가 바로 근처 공산군 진지에 쏟고있는 포탄의 작렬음이 긴장된 식장의 공기를 흔들었다. 원수끼리의 증오에 찬 정략결혼식은 서로 동석하고 있는 것조차 불쾌하듯이, 또 빨리 이 억지로 강요된 의무를 끝마치고 싶다는 듯이 진행되고 있었다.…거기에는 의식에 따르는 어떠한 극적 요소도 없고 강화에서 예기할 수 있는 화해의 정신도 엿볼 수가 없었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정전'이지 `평화'가 아니었다.… 10시 12분 정각, 조인작업은 필하였다. 해리슨 장군과 남일은 최후의 서명을 마치자 마치 최후통첩을 내던지고 퇴장하듯이 대표를 데리고 나가 버린다. 관례적인 합동기념촬영도 없이 참가자들은 해산하였다. 백주몽(白晝夢)과 같은 11분간의 휴전협정 조인식은 모든 것이 너무나 상징적이었다.…”
이달 27일은 휴전 반세기에 1년을 더하는 51년째 맞는 날이다. 51년 전인 1953년 7월 29일자 조선일보 1면 머리에 게재된 당시 최병우(崔秉宇) 종군기자의 휴전협정 조인식 참관기는 이렇게 시작하고 있다. 당시의 협정 양 당사자들의 표정과 일거수일투족까지도 놓치지 않고 소상하게 잡아낸 역사적 기록이다.
한국 전쟁이 3년째에 접어들자 미국을 비롯한 유엔 참전국들 사이엔 더 이상 희생을 치를 수 없다는 여론이 팽배했다. 북한군 역시 유엔군의 개입으로 한반도 적화 통일이 어렵게 되자 소련을 통해 휴전 회담을 제의하게 되었다. 우리 정부의 휴전 반대 의지(통일 지향)와는 무관하게 미국 소련 중국 등 열강들에 의해 휴전선을 사이에 둔 채 완전한 종전이 아닌 정전(停戰)상태의 '한국 군사 정전에 관한 협정'이 체결된 것이다.
이 협정은 전쟁의 종결을 의미하는 '평화조약'이나 '강화조약'과는 성격이 다른, '완전한 전쟁의 종료가 아닌 적대 행위를 일시적으로 정지'하자는 협정이었다. "포성은 멈추었다. 피비린내도 사라졌다. 그러나 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다만 불안한 휴전 상태가 계속되고 있을 뿐이다." 한국전쟁에 참전했던 한 예편 장성의 이 말은 오늘의 안보환경을 잘 드러내고 있다. 이것이 53년 7월 27일 휴전협정 이후 오늘의 한반도의 현실이다.
지난 51년간 북한은 이 휴전협정을 '일면 평화, 일면 대남 도발'용으로 삼아 무려 42만여 건이나 되는 각종 도발을 감행했다. 이 많은 무력충돌들은 북한이 휴전 후 대남(對南)적화전략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일방적인 테러리즘 도발로 인해 야기됐었다.
가장 대표적인 테러가 북한 124군 특수부대가 도발한 1968년 1월 21일의 청와대 기습 기도사건이었다. 북한이 박정희 대통령을 암살하고 남한체제를 무력화(無力化)시킨 다음 남침하고자 했던 것이 그 목적이었다.
이어 울진 삼척지구의 많은 양민을 학살했던 북한의 간첩남파사건, 1983년 당시 한국 대통령 암살기도인 미얀마 아웅산 묘소 폭파사건, 1987년의 KAL858기 공중폭파사건, 1996년과 98년의 동해안 잠수함 남파사건, 99년 서해 연평도 근해 '연평해전' 등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다. 1994년 6월에는 북한의 핵 개발의혹을 둘러싸고 제2의 6·25전쟁이 터질 뻔했던 위기도 있었다.
그것은 휴전협정의 무력화를 겨냥한 북한의 야욕을 말해주는 것이고, 저들이 아직도 대남 적화 야욕을 버리지 않고 있음을 의미한다. 전쟁행위를 하지 않을 뿐, 전쟁이 종료된 것도, 평화가 정착된 것은 아니다. 평화상태와는 거리가 먼 비전비화(非戰非和)의 상태로 이제 정전 51년을 맞는다. 우리는 이처럼 평화불안요인이 잠복해있는 가운데 일상을 꾸려가고 있다.
북한은 1994년 4월 아예 군사정전위 기능정지 선언을, 1996년 4월 4일 비무장지대 유지관리와 관련한 임무 포기 주장을 펴는가 하면 국민의 정부가 출범한 1998년에도 강릉 잠수함 침투 사건 및 서해안과 남해안 잠수정 침투사건 등 정전체제를 파괴하는 행위를 조직적으로 저질러 왔다.
남북한 당국자들이 한반도 긴장완화와 무력충돌을 예방하고 민족간 교류협력과 평화를 정착시키기 위한 노력도 몇 차례 경주됐었다. 1972년의 남북한 7·4공동성명 채택과 1991년의 남북기본합의서 채택 그리고 2000년 6월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간의 6·15공동선언 발표 등이 바로 그것이다. 그러나 이런 노력 역시 약속파기와 합의사항 위반 때문에 결실을 거두지 못하고 있다. 북한의 대남(對南)적화야욕은 그대로인 상태에서 우리는 안보의 울타리를 일방적으로 걷어내고 있다.
북한은 선군정치노선 아래 군사최우선주의, 군대제일주의의 구호를 앞세워 화약내를 물씬 풍기고있는 호전적인 독재국가인데도 우리는 저들이 들고 나온 '민족공조'라는 책략을 우리의 코드로 받아들여 남북화해시대를 강변하면서 스스로 무장해제에 나서고 있다.
공영방송과 친여(親與)매체들은 무조건적인 대북 유화분위기 조성에 나서 국민들의 대북안보태세와 이념적 정신무장을 풀어놓고 있다. 이에 한술 더 떠 북한을 전혀 모르는 일부 친북 진보학자들은 국민의 대북관을 오도하고 정신적 안보태세를 흐려놓고 있다.
그런가 하면 일부 친북좌파(親北左派) 지식인들은 소위 북한이 반기는 '민족' '통일' '평화'를 외쳐대면서 정통보수세력을 수구(守舊) 또는 '반민족' '반(反)통일' '냉전적 사고'라고 몰아치면서 집단매도 하고 있는 상황이다. 정부가 조성하는 이처럼 환상적 가상적 대북인식이 계속 팽배한다면 한국은 북한간첩들이 활개치는 지상낙원이 되지 말란 법도 없다.
남북한이 중무장으로 맞서고있는 155마일 휴전선 일대는 세계 유수의 군사력 밀집지역이다.
남북간에 긴장완화와 평화정착을 위한 몇 차례 노력이 결실을 보지 못하는 이유는 남북한간에 가로놓인 뿌리깊은 불신 때문이며, 이런 불신은 남북한간의 통일에 대한 미래상이 전적으로 다르다는 데에 기인한다.
북한은 정부형태와 체제운영 등 모든 것이 문자 그대로 '군사최우선주의'인 선군(先軍)정치이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북한의 최고통치자로서 군사력을 포함한 독재 실권을 행사하고 있는 북한 유일무이의 수령이다. 국가원수급 칭호 대신 국방위원장 직책을 가지고 있고, 그 외에 로동당 총비서직과 인민군최고사령관 직책까지 몽땅 다 움켜잡고 있다. 6·15공동선언 후에도 대남인식과 공산화혁명노선에는 본질적으로 아무런 변화가 없다.
우리는 북한이 대남 적화 전략을 포기하지 않는 한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는 현실을 직시하고서 전쟁 억지는 자유민주주의를 수호 하고자 하는 안보의식과 힘을 비축하고 있어야 가능하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북한은 우리에게 있어서 교류협력과 평화정착을 위한 대상이자, 침략시에는 이를 물리쳐야 할 우리의 주적이다. 이런 점에서 북한은 우리에게 이중적 지위와 관계에 있다. 북한에 대한 방위태세로서의 국가안보는 자유와 시장경제 및 인권가치를 존중하는 통일이 이룩될 때까지 지속적으로 계속되어야 한다. 안보는 한번 실패하면 회복이 불가능하다. 안보의 실패는 최악의 경우 한 국가의 모든 가치의 말살과 국가 소멸까지도 불러들일 수 있기 때문이다. (코나스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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