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우당은 '열린 黨'인가, '과거사(過去事)진상규명 黨'인가
과거사(過去事) 진상규명이 여야간의 움직일 수 없는 한판 승부(勝負)거리로, 그리고 정치권은 물론 우리 사회 전반을 한동안 휩쓸 빅·이슈로 대두되고있다.
현 집권세력의 도전적 제안에 대해 박근혜(朴槿惠) 야당대표가 친북·용공 행위와 5·16의 공과(功過)까지 포함시켜 가려보자는 역(逆)제의를 하면서 이 같은 흐름이 급(急) 물살을 탈 것으로 예견된다.
여권(與圈)이 "과거의 올바른 정리 없이는 미래로 갈 수 없다"면서 '과거사 청산'을 국정의 최우선과제로 내걸고 정통보수세력에 겨눈 칼끝을 야당이 맞받아 치기로 결심하고 나선 것은 2004년 8월을 기점(起點)으로 이 땅에서 '과거사 논쟁'이 치열하게 전개될 것임을 말해주는 시그널인 것이다.
여당이 과거사 진상(眞相)규명을 위해 법제화했거나 추진 중인 법안은 자그만치 15개에 이른다. 시기별로도 크게 ① 19세기 말(1894년) 동학(東學)농민혁명군의 명예회복 ② 일제 강점(强占) 하 친일(親日)문제 관련 3개 법안 ③ 1945∼48년 해방정국에서의 '제주 4·3사건'과 '여수·순천사건' ④ 1950년 전쟁 시 노근리·거창·함평 등지의 양민학살사건 ⑤ 유신과 5공 시절의 의문사와 광주민주화 및 삼청교육대 관련 문제 등 5개 그룹으로 구분될 정도로 광범위하다.
이처럼 방만한 작업을 두고 '역사적 진실 규명'과 '과거사 청산'에 있을 뿐, 정략적 의도는 없다고 말하는 여권의 명분론을 믿을 국민은 어디에도 없다. 그것이 '과거 파헤치기'를 통해 그들의 정치적 입지(立地)를 강화하고 상대방에 정치적 치명상을 입히기 위한 '도발적인 의도'임을 어느 누구도 모르지 않을 것이다.
여권의 계획대로라면 향후 수년간 한국의 정치사는 국가안보나 민생경제는 뒷전으로 물러나고 '110년 전의 동학(東學)농민혁명군 사건'에서부터 '일제(日帝)치하 행적' '해방 정국(政局)' '6·25전쟁 전후처리' 및 '70∼80년대의 근대사 현대사의 사건'들이 '줄줄이 사탕' 식으로 도마 위에 오를 것이고, 정국은 본궤(本軌)를 벗어나 담금질이 계속될 것이다.
여권은 '친일(親日) 잣대'로, 야당은 '친북(親北) 잣대'로 상대방 옭죄기를 준비하고 있지만, 정작 여론의 칼날이 어느 쪽에 꽂힐지는 어느 누구도 예단할 수 없다.
자그만치 110년을 거슬러 동학(東學)혁명에서부터 '일제(日帝)치하' '8·15 해방공간' '6·25전쟁 전후' '5·16 이후의 공안정국'에서 가족사(家族史)가 자유로울 수 있는 국민이 도대체 얼마나 될 것인가. 정치권의 과거사 진상 규명을 진정한 미래를 열기 위해 반(反)민족행위를 가리고자 순백(純白)의 마음으로 시작하는 통과의례라고 믿는 국민은 어디에도 없다.
정략적 저의를 고집하여 7백여년 전의 '이성계의 위화도 회군(1388년) 진상규명 주장'이 나오지 않은 것을 천만다행으로 여겨야할 상황이다. 고려 우왕(禑王)시절 우군도통사 이성계가 위화도에서 회군하지 않았더라면 명나라의 전초기지인 '요동'을 정벌하여 우리 영토가 더 확장됐을 수도 있었을 것이며, 사회풍습도 배명(排明·명나라 배척)흐름으로 바뀌어 후세에 사림(士林=親明사대주의자들)의 등장을 막아 민족정기가 '부국강병(富國强兵)'으로 가는 일대변혁을 맞았을 수도 있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과거사 진상규명은 국민의 마음을 갈기갈기 찢고, 사회통합을 가로막는 우매한 짓거리이며, 분초(分秒)를 다투어가며 미래의 역사를 설계하고 조직해야 하는 시점에서 우리의 역사 자체를 '과거지향'으로 돌려놓는 것이나 진배없다.
과거에서 교훈을 얻기는커녕 과거를 오늘에 되살려 청산한다는 것은 허공에 주먹질을 해대는 격이며, '역(逆) 마녀사냥'이 되지 않는다고 누가 보장할 것인가. 후세의 사가(史家)들은 이를 두고 과거사를 정치적 의도에 따라 재단하려든 정치공세가 이 나라를 나락으로 몰고 갔다고 기록할 것이다.
중국과 일본이 우리의 역사를 왜곡하고 있는 상황을 '나 몰라라' 하고서 내부 적으로 서로가 서로를 헐뜯기 위한 열중한다는 것은 아이러니 수준을 넘어 '수치(羞恥)의 역사' '치욕(恥辱)의 역사'를 새로 만들어 가는 것이 된다.
'망국(亡國)의 역사' '식민지의 국사' '부역(附逆)의 가족사' 뒤집어 보기가 대한민국 정부가 국민의 세금을 쏟아 부어가며 '민족정기를 세우는 국가사업'으로 위장된 모습으로 진행될 수는 없다.
그럴 경우 이 땅의 국민들은 세계 각국이 21세기의 생존경쟁을 위해 광분하고있는 터에 여권(與圈)의 '역사 바로 세우기'라는 허울좋은 제안에 놀아나 남의 집 족보(族譜)를 들추어내거나 조상 묘(墓)를 파헤치는 우매한 일에 몰두하는 꼴이 된다.
알고 보면 우리는 식민지 치하에서 일제의 모진 탄압을 온몸으로 견뎌냈고, 광복 이후 좌우(左右)의 유혈 충돌 속에 6·25를 겪은 데 이어 4·19의거와 5·16 혁명 5·17사태 6·10항쟁 등을 겪으면서 어느 집인들 이런 이념적 속박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세월을 살아왔다.
부자간, 형제간, 삼촌에 '항일과 친일' '친공(親共)과 반공'이 뒤섞여 서로 갈등하면서 험난한 세월을 견뎌온 '우리'가 아닌가. 오늘의 대한민국은 바로 이런 무수한 슬픔과 아픔을 가슴에 묻어둔 채 허리띠를 졸라매고 와신상담(臥薪嘗膽)하며 쌓아올린 소중한 결실이다.
우리 모두가 성한 데 하나 없는 가족사를 지닌 민초(民草)들 아닌가. 국민적 통합을 이룩하기에도 바쁜 이 시기에 이제는 어느 누구도 '과거'로 돌아가 서로가 서로를 할퀴어가며 피멍이 들 정도로 선조들의 망령과 씨름판을 벌려야 할 것인가.
입으로는 상생(相生)을 말하면서 국민을 이전투구(泥田鬪狗)의 장(場)으로 몰아가는 정치는 저주받아 마땅하다. 근대화의 물결을 거슬러 국민을 '미망(迷妄)의 늪'으로 몰고 가는 것은 '천박한 정치'를 그대로 방관해서는 안될 것이며, 기필코 단죄(斷罪)되어야 할 것이다.
분명한 것은 이제 우리는 더 이상 우중(愚衆)으로 남을 수는 없다는 점이다. 국민적 분열을 책동하는 어떤 명분의 정략적 공략도 허용해서는 안 된다. 우리 모두에게는 이 나라를 '희망 없는 나라'로 만들어 가는 정치를 무대 밖으로 밀어내야 할 책무가 주어져있는 것이다. (코나스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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