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지원 받는 운동권 시민단체는 NGO간판을 내려야 한다(2)
시중에 '시민단체의 시대'라는 말이 나돌기 시작한 것은 어제오늘 이야기가 아니다. 시민단체의 힘과 영향력이 미치지 않는 곳이 없을 정도로 그 위상이 고조되면서 나온 비아냥이다. 이 말은 달리 말해 사이비 시민운동가와 사이비 시민단체가 합법적으로 행동할 불법(不法)공간이 그만큼 넓어졌음을 의미한다.
국가정보원의 과거사 규명에도 시민단체가 들어가 있다. 최근 국가정보원 원장이 참여연대 등 7개 시민단체 관계자들을 만나 국정원 관련 과거사건의 진상규명을 위해 시민단체가 주도적으로 참여해달라고 협조를 구한 사실에서도 과거사(過去事) 진상규명이 '홍위병 식 여론몰이'로 진척될 가능성을 읽을 수 있다.
집권여당의 원내 부대표가 "개혁입법을 통과시키는 과정에서 야당과 협의가 안 되면 시민단체의 협조를 구하는 방법으로 국민에게 직접 호소해서라도 입법과제를 관철할 것"이라고 말할 정도로 시민단체의 위상은 실제 이상으로 한껏 부풀려져 있다.
친북·좌파집단이 정부지원을 받으면서도 '순수한 시민단체'로 위장하고서 대중에게 다가선다는 것은 용서받을 수 없는 위선(僞善)이다. 우리 주변의 '시민단체로 위장한 좌파들'- 달리 말해 '좌파 시민단체'들이 이런 경로를 통해 조직되고 명맥을 유지해왔다는 것은 얼마나 아이러니컬한가.
이런 일련의 상황을 지켜보노라면 우리는 권력과 시민단체간의 어둠침침한 유착관계를 읽을 수 있다. '정부지원이라는 이름 아래 자행되는 거래'를 통해 권력이 먼저 돈으로 시민단체를 유혹했거나 아니면 시민단체가 자신의 순수성을 내주고 정부지원을 맞 교환했거나- 둘 중 어느 하나일 것이다.
일단 정부의 지원을 받노라면 '친(親)정권적인 시민운동' '정권나팔수'로 변질되어 시민들의 원성을 살 수 밖에 없다. 그러고도 정부 여당은 '허울뿐인 시민단체'의 목소리를 여론으로 치부하고 따라가는 식의 위장(僞裝)수법을 애용해왔다. 시민단체는 시민들의 자발적 참여로 이루어지고 유지되어야 정답이다.
시민단체 출신들이 권력내부 깊숙이 포진하고 있는 요즈음이다. 그런 이유로 시민단체가 '권력지향 또는 이권(利權)추구 예비군(豫備軍)의 집결지'로 위상 바꿈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그런 이유로 정부권력에 대한 감시 필요성에서 태어난 시민단체 상당수가 이제는 오히려 권력의 편에 서서 권력비판세력을 비판하는 해괴한 풍토가 빚어지고 있다.
이런 일련의 상황을 지켜보노라면 우리는 권력과 시민단체간의 어둠침침한 유착관계를 읽을 수 있다. '정부지원이라는 이름 아래 자행되는 거래'를 통해 권력이 먼저 돈으로 시민단체를 유혹했거나 아니면 시민단체가 자신의 순수성을 내주고 정부지원을 맞 교환했거나- 둘 중 어느 하나일 것이다.
시민단체들을 권력 예비군(豫備軍)의 중간집결지나 이권(利權) 추구자의 잠복 장소로 타락한 것은 정부에게 1차적인 책임이 있다. 정부 권력에 대한 감시 필요성에 의해 탄생한 시민단체의 상당수가 권력의 편에 서서 권력을 비판하는 세력을 비판하는 것을 사명처럼 여기는 빗나간 풍토도 이런 배경에서 빚어진 것이다.
시민단체는 시민들의 자발적 참여로 이루어지고 유지되어야 정답이다. 일단 정부의 지원을 받노라면 '친(親)정권적인 시민운동' '정권나팔수'로 변질되어 시민들의 원성을 살 수 밖에 없다.
독일을 제외하고 미국 영국 등 민주주의 전통이 강한 나라들의 경우 시민운동성 단체들이 정부지원금을 받는 예를 찾기는 힘들다. 미국의 경우 정부의 지원금(기부금)에 대해 세금감면 혜택을 받은 비영리 단체는 선거운동에 관여할 수 없도록 되어있다. 권력과 거리를 두어야 하는 시민단체가 권력과 유착된 모습을 보이는 일은 생각할 수도 없다.
미국 최대의 정치개혁 시민단체 '커먼·커즈'(Common Cause)는 전국 25만명의 회원들이 회비를 내어 운용되고 있다. 그래서 그들의 목소리에는 힘이 실려있다. 이런 점들이 월 1만원 이상 회비를 내는 회원이 전체회원의 1/3수준인 우리 시민단체와의 근본적인 차이점이다.
미국 영국 등 선진국들에선 민간단체들이 주 정부에 등록과 동시에 주 검찰에 자동등록이 되고 매년 검찰에 재정보고를 하도록 되어있어 어느 누구라도 주 정부와 검찰이 개설한 특수 전화번호만 돌리면 어느 단체가 건실한 단체인지 바로 알 수가 있다.
시민단체 중 '운동권'이 아닌, '봉사 중심의 단체'의 경우 민관 파트너십의 차원에서 정부가 단체활동을 지원하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하고 바람직하다. 그러나 '운동권 단체'들이 공익재단이 아닌, 정부에서 재정지원을 받으면서 권력에 대해 올바로 비판할 수는 없다.
시민단체와 관련한 쟁점 가운데 '정치참여' 문제만큼 민감한 사안(事案)도 없다. 정치적 행보를 밟노라면 특정 정치집단과 갈등을 빚거나 밀착할 수밖에 없다지만, 시민단체들을 둘러싸고 빚어지는 '유착론' '음모론' 등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어야 한다.
DJ정부 이후 상당수 시민단체들은 대체로 정부 여당의 파트너로 각종 개혁 작업에 관여해 온 반면, 야당과는 숱한 갈등을 빚어왔다. 정부 여당과의 '야합(野合)'을 파트너십 구축'으로 둘러댈 일은 아닌 것이다.
국내에서도 세계적으로 새로운 물결인 NGO운동의 시대적 역할이 부각되고있음은 매우 바람직한 현상이다. 그러나 시민단체는 무릇 투명성과 책임성을 스스로 갖추고 메시지를 내보내야 한다. 달리 말해 '어떤 돈으로' 운영되는지를 소상하게 공개해야 한다. 그럴 때 비로소 국민은 그들이 내보내는 메시지에 신뢰를 보낼 것이다. (konas)
정준(코나스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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