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보법 없다면 안보 위험하다
동독이 붕괴되고 전격적으로 서독으로 흡수통합된 후 서독 국민은 세 번 놀랐다고 한다. 첫째는 동독체제가 그렇게 쉽게 무너지는 데 놀랐으며, 둘째는 사회주의 모범생이라던 동독의 경제구조가 그토록 열악한 상태였던 실상에 놀랐고, 그리고 셋째는 서독 내에서 암약해온 동독 정보공작기관(슈타지)의 서독인 협조자가 그처럼 방대한 규모였다는 사실에 놀랐다는 것이다. 여기서 요즘 우리의 관심을 끄는 것은 바로 마지막 부분이다. 국가보안법 개폐 논쟁이 한창이기 때문이다.
독일 통일후 독일연방 정보기관(BND) 및 수사기관은 무려 7000여건의 국가반역범죄 행위를 적발했고, 동독을 위한 간첩 활동 혐의자로 300명을 구속한 바 있다. 서독 사회 각계에서 동독에 협력한 ‘비정규 정보원’의 규모는 무려 2만명이 넘고 심지어 서독의회(분데스타크) 내에서 한동안 ‘교섭단체’를 구성할 수 있을 만한 ‘의원요원’들이 활동했었다고 한다`(후베르투스 크나베, ‘슈타지 문서의 비밀’). 이들 슈타지 협조자들은 특히 시민운동 단체와 언론, TV 및 대중매체 그리고 대학 및 연구소들에 집중적으로 침투, 포진하여 서독의 대 동독정책에 영향력을 행사할 목적의 각종 이론 개발과 선전선동술을 공작했으며, 특히 ‘동독눈치보기’를 적극적으로 유도했었다.
1972년 당시 빌리 브란트 총리의 최측근 비서였던 귄터 기욤이 동독 간첩이었다는 사실 말고도 국제정치학 분야에서 저명했던 베를린자유대학의 한스 야콥젠 교수도 동독의 거물 간첩이었고, 송두율씨가 벤치마킹한 ‘내재적 동독 접근법’의 창시자인 피터 루츠 교수도 위장첩자였음이 밝혀져 독일 지성계를 경악시켰다. 더욱이 이 모든 간첩 행위는 서독판 햇볕정책이었던 ‘동방정책(Ostpolitik)’이 절정에 달했을 때 집중적으로 이뤄졌었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평화 무드가 깊을수록 상대를 이완시키기 위한 공작 활동도 그만큼 깊어진다는 사실과 아무리 강력한 안보형사법적 체제를 갖추고 있어도 간접침략은 막을 수 없다는 점이다. 그토록 철저한 반공국가였던 서독에서 이러한 일들이 있었다는 것은 비슷한 처지의 우리에게도 실로 적지 않은 점들을 시사해 준다.
지금 우리의 국가 안보 시스템이 근본적으로 도전받고 있는 느낌이다. 안으로는 국가보안법 존폐 여부를 놓고 보수·혁신 세력 간에 치열한 사상전, 즉 총성없는 내전이 일어 이에 편승한 북한의 대남 선전선동 공작이 극에 달해 있고, 밖으로는 북핵 문제의 교착 상태로 한반도에 언제라도 위기가 닥쳐올 형국이다.
헌법재판소와 대법원이 분명히 국보법의 합헌과 독자적 존재 의의를 판결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무시한 초헌법적 주장이 정부·여당에 의해 공론화되는가 하면 국민 대다수가 개정이 아닌 폐지는 반대한다는데도 이 법이 표방하고 있는 대공 기본임무를 ‘구시대의 유물’이고, ‘반민족, 반통일 잔재’라고 몰아붙이고 있다.
그렇다면 공산당 활동을 사실상 허용하자는 말인가? 법리상 형법 보완이나 대체입법으로는 실질적으로 할 수 없는 성격의 한시적 특수법인 국보법 없이 도대체 간첩을 어떻게 잡겠다는 것인가? 그렇지 않아도 국보법이 엄존한 상황에서도 지난 7년여 동안 간첩망 적발 사건이 거의 없고, 지금 사이버 공간에서는 연공연북 주의·주장이 난무하고 있다.
이러한 우리 국가 사회의 정체성 위기는 자칫 북핵 무장의 기정 사실화에 따른 미·북 대결 위기와 맞물려 한미안보동맹의 근간이 흔들리는 총체적 위기로 치달을지도 모른다. 혹 이 정부가 경제에 이어 안보마저 ‘좌파의 덫’에 걸려 있는 게 아닌지 나라 안팎의 우려가 점차 커지고 있다.

남주홍 / 경기대 정치전문대학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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