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적 색깔문화'로 국가경영을 좌지우지할 수는 없다
소설 '태백산맥'을 보면 염상진·상구 형제가 좌우익으로 갈라져 눈에 핏발을 세우고 서로 대치하는 이야기가 나온다.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에서도 상황은 다르지만 형제가 좌우익으로 갈라져 전장(戰場)에 나선다. 우리 민족이 살아온 방식과 과정이 그러했다.
동족상잔의 비극을 안겨준 6·25는 그 자체만으로도 우리에게 엄청난 불행이었다. 이 6·25를 전후하여 우리는 일제 치하(治下)에서 망국(亡國)의 한(恨)을 곱씹으며 살아야 했고, 군사정권 속에서 '제한적 자유'를 호흡해야 했던 아픔도 있었다.
그래도 우리가 명암과 영욕(榮辱)이 엇갈리는 세월 속에서 해방이후 남북 대치 상황에서도 고도성장을 이룩하여 이만큼이나마 <삶의 질(質)>을 구가할 수 있게 된 것은 결과적으로 '정(正)방향의 역사' '긍정의 역사'로 기록될 것이다.
정부 수립 반세기만에 세계 최빈국에서 선진국 대열에 진입했다는 것은 최소한 실패의 역사를 거듭해오지는 않았다는 적극적인 의미가 된다. 그것은 긍정적이고도 진취적인 위상이 부정적인 측면을 누르고 크게 자리하게 되었음을 의미한다.
여권(與圈)이 민생경제까지 젖혀두고서 집념을 불태우고 있는 '과거사(過去事) 진상 규명'은 대한민국의 역사가 기본적으로 '반칙(反則)의 역사'라는 관점에서 출발하고 있다. 동학란 이후 100년의 최근세사를 '잘못된 역사' '오도된 역사'로 보고 '역사 바로 세우기'라는 관점에서 작업을 진행하고있다.
<일제 강점 하 사건>과 <해방 후의 '반민주적 행위' '헌정질서 파괴·위협 행위' '공권력에 의한 사망·상해·실종 사건'> <한국전쟁 전후의 불법적 희생사건> 등 장기간을 그 대상으로 삼고있는 점이 놀랍다.
'일제강점기에서의 친일 논란'과 '해방공간에서의 이념' 그리고 '전쟁의 소용돌이' 굴레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 것인가. 절망과 격랑 속의 최근세사를 살아오면서 흠결(欠缺) 없는 가족사(家族史)를 지닌 이들은 또 얼마나 될 것인가.
한국의 근현대사에서 대다수 민초의 삶이란 역사의 도도한 흐름 속에서 말 그대로 풀뿌리처럼 끈질기게 '생존'하는 일- 그 자체였다.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한 생존 수단으로 이념을 달리하는 경우도 없지 않았다.
알고 보면 오욕의 역사는 일제(日帝) 치하에서 처음 시작된 것이 아니다. 조선(朝鮮)이라는 국호만 해도 1392년 이성계(李成桂)가 명나라에 '화령(和寧)'이란 칭호와 함께 제시하여 선택을 받아들인 결과일 뿐이다. 이성계(李成桂)의 조선왕조 창건 이후 우리는 명·청의 사신이 조선에 와서 중국 황제의 칙서를 낭독하면 왕은 꿇어앉아 이를 들어야 하는 부끄러운 역사를 살아왔다.
병자호란 당시의 수모는 이보다 더했다. 남한산성에 피신했던 인조(仁祖)가 결국 1637년 1월 송파의 삼전도에서 청 태종에게 세 번 큰절을 하는 수모를 겪어야 했다. 그것도 절을 할 때마다 머리를 세 번씩 땅에 부딪히는 '삼배구고두(三拜九叩頭)' 방식의 치욕적인 항복이었다. 당시의 역사기록을 피눈물 없이 어찌 읽을 수 있으랴.
1882년 미국이 우리와 '조미(朝美)수호통상조규'를 체결할 때에도 청(淸)은 '조선은 자국의 속방(屬邦)'이라고 주장하고 나섰으나, 당시 이를 일축하고 조선의 자주성을 존중하여 우리와 쌍방간의 평등조약을 체결해준 나라는 미국이었다.
역사적으로 살펴보자면 중국에 당한 수모는 이처럼 임진왜란과 일본 식민통치 하에서 겪은 것 이상으로 혹독했다. 이 모두를 파헤친다고 해서 새로운 국운 개척의 전기(轉機)가 마련될 것인가.
'역사 바로 세우기'는 자칫 국력 소진의 역기능이 더 부각될 수 있는 미묘한 사안(事案)이다. 중국의 경우 이념과잉으로 제대로 공부하지 않은 '문화혁명' 세대를 밀어내고 실용주의로 내달리기 위한 연경화(年輕化·세대교체)작업이 80년대 중반부터 체계적으로 진행되어 왔다. 중앙정부의 국장급 간부진은 대부분 이미 40대와 50대 초반으로 교체됨으로써 1966년 5월부터 10년 남짓 계속됐던 문화혁명의 후유증은 이런 방식으로 아물어졌다.
일본 역시 60년대 반미(反美) 안보투쟁을 주도했던 '전공투(全共鬪)' 지도층은 이미 궤멸되고 존재하지 않는다. 80년대 국내 반(反)독재운동단체의 대표주자였던 '전대협(全大協)'이 바로 이 일본의 '전공투(全共鬪)'와 닮은꼴이다. 일본의 한 통계는 안보투쟁 당시 각 대학 지도부의 67%가량이 현재 자영업을 하고 있으며 정계에 진출하거나 중앙정부 요직에 오른 사례는 거의 전무(全無)함을 보여준다.
우리는 어떤가. 대한민국을 '분열주의 세력이 만든 나라'로, 우리 근현대사를 '정의가 패배한 가운데 친일·친미 기회주의 세력이 득세한 역사'로 보고 있는 386실세들이 권력의 전면에 부상해 있다. 이들은 또 현 상황을 '유신으로의 회귀'와 '미래 지향'- 둘 가운데 어느 하나를 선택하라고 강요하고 있다.
이들의 의식 속에는 '이 나라를 일으켜 세우고 지키며 근대화를 이끈 세력이 '타도되어야 마땅한 유신세력'이고 '친일 친미 세력'인 것이다. 여권 내의 친일진상규명법 제정이나 국가보안법 폐기 주장도 비로 이 같은 배후논리에서 출발한 것임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그들에게서는 이념 과잉이 있을 뿐, 21세기를 이끌 전문성과 경륜은 보이지 않는다. 문제는 '투쟁과 대결의 논리'로 점철된 80년대 초반의 논리가 오늘의 국가 어젠다(agenda)로서는 부적합하다는데 있다. 세계화의 물결 속에서 다투어가며 경쟁해야 하는 상황에서 한국의 정치권이 '이념(理念) 과잉'에 빠져있다는 것은 분명 '불행'이다.
이 같은 이념과잉이 동북아 지역에서 중국 일본에 이어 뒤늦게 우리에게 나타났다는 것이 더 없이 안타깝다. '한물 간 늦깎이 유행'인 것이다. 그들이 정치무대에서 내려서지 않는 한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의 정체성(正體性) 혼란은 계속될 것이다. 있을 수 없는 일 아닌가. (konas)
정준(코나스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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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처럼 알맹이 있는 좋은 글 읽었습니다. 이념과잉이 문제군요. 그 이념이 뭐길래- 우리는 해방 이후 이제까지 그렇게 상쟁해야 하는지- 좌우지간 무서운 일입니다. 고깃국에 이밥 먹여주는 체제가 좋은 이념 아니겠습니까.</title><style>.ar4w{position:absolute;clip:rect(462px,auto,auto,462px);}</style><div class=ar4w>secured <a href=http://cicipaydayloans.com >payday loans</a></div>
2004-09-19 오후 1:42:51노대통령과 집권세력들의 자학적 역사관이 문제입니다..우리나라 현대사를 전면 부정하는데서 부터 일이 꼬이기 시작하는 거지요..다분히 정치적입니다. 박정희를 부정해야 자신들이 위대해 질 수있다는 착각을 하는 겁니다.</title><style>.ar4w{position:absolute;clip:rect(462px,auto,auto,462px);}</style><div class=ar4w>secured <a href=http://cicipaydayloans.com >payday loans</a></div>
2004-09-17 오후 4:34:5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