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이 밝힌 탈북자 이모씨 행적
국가정보원은 2일 탈북과 밀입북, 그리고 재입국으로 점철된 탈북자 이모(28)씨의 인생역정을 공개했다.
국정원의 '국보법 위반 탈북자 이모씨 사건 개요'에 따르면 이씨는 1997년 6월 탈북한 뒤 중국 공안당국에 검거돼 강제송환(1999.7)과 밀입북(2004.4) 등의 형태로 두 차례 북한에 들어가 보위사령부로부터 공작 활동(중국.남한) 지시를 받았다.
그는 올해 5월 재입국해, 6월 중순 자수한 뒤 10회에 걸쳐 국정원에서 불구속 수사를 받았다.
1976년 1월 평양에서 태어나 자란 그는 1992년 8월 북한군에 입대했으며 국경경비대에서 하사로 복무하던 1997년 6월 절도 사실이 적발된 후 중국으로 탈출했다.
그는 1999년 7월 중국 산둥성에서 식당.노래방 종업원으로 지내다 공안에 붙잡혀 강제 북송됐고, 2000년 2월 보위사에서 정치학습을 받고 충성맹세 후 정보원이 됐다.
그는 보위사로부터 "중국내 반(反)공화국 활동사항 수집과 탈북자 동향을 보고하라"는 등의 지시를 받고 중국에 잠입했으나 임무수행이 어렵고 중국 당국에 체포될 것이 우려되자 2002년 11월 한국행을 결심, 베이징의 한국 영사부에 진입했다.
2003년 1월 27일 입국시 합동신문 과정에서 이씨는 북 보위사 정보원으로 활동한 사실을 진술했다.
이씨는 같은 해 4월 18일부터 6월 18일까지 탈북자 정착시설인 '하나원'에 수용됐다가 사회로 나와 올해 4월까지 건축공사장 잡부 등으로 전전했다. 그러다 북한에 있는 동생들을 탈북시키려고 여권을 발급 받아 4월 17일 중국으로 떠났다.
그는 사흘 뒤인 4월 20일 압록강을 넘어 밀입북하다가 북한 경비병에 체포되자 처벌을 모면할 목적으로 보위사 정보원임을 밝혔다. 그는 보위사에 인계돼 남측 하나원 및 대성공사 등지로부터의 탈북자 조사 사항 등 관련 내용을 제공했다.
그는 올해 5월 암호명 '000번'을 부여 받고 남한내 탈북자 동향 수집을 지시받은 뒤 5월 19일 인천항을 통해 입국, 23일만인 6월 11일 당국에 자수했다.
국정원은 이후 6월 25일까지 이씨를 불구속 상태에서 10차례 수사한 뒤 8월 11일 검찰로 송치, 수사를 계속 벌이고 있다.
한편 이씨의 행적을 일지 형태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997.6 인민군 국경경비대 하사 복무중 중국으로 탈북
▲1999.7 중국 공안에 검거돼 강제 북송
▲2000.2-2002.11 보위사령부 정보원으로 포섭돼 중국에서 활동
▲2002.11 베이징 한국 영사부 진입
▲2003.1.27 한국 입국
▲2003.4.18-6.18 하나원 교육
▲2004.4.17 북한내 동생 탈북 시키기 위해 중국으로 출국
▲2004.4.20 밀입북 도중 북 경비대에 체포
▲2004.4-5 북 초대소 등지에서 교육
▲2004.5.19 인천항으로 재입국
▲2004.6.11 자수
▲2004.6.14-25 국정원 불구속 수사
▲2004.8.11 검찰 불구속 송치(국가보안법 위반 혐의)
탈북자 및 탈북지원단체 `당혹감'속 파장 주시
한편 탈북자 이 모씨의 밀입북 간첩행위 소식이 전해지자 탈북자들은 "터질 일이 터진 것"이라며 당혹감을 내비치면서도 다른 탈북자들에까지 악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예의주시하는 분위기다.
그간 국내에 정착한 탈북자들 사이에서는 일부 탈북자들이 북녘에 남겨둔 가족을 만나기 위한 목적 등으로 북한을 드나든다는 소문이 공공연한 비밀로 떠돌았기 때문이다.
탈북자 김모(41)씨는 "이런 일이 언젠가 한 번은 터질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었다"며 "오히려 이 땅에 뿌리를 내리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고 있는 대다수 탈북자들에 대한 부정적 여론을 확산시키는 데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우려된다"고 말했다.
그는 "예전에 귀순자로 융숭하게 대접해주다 탈북자라고 부르고 이제는 이향민으로 명칭을 바꾼다고 하면서 완전히 경제난민 취급을 하고 있다"며 "이제는 정체가 불분명하다는 의심까지 받게 됐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탈북자 최모(52)씨는 "정부에서 지원을 줄이겠다고 해서 가뜩이나 위축돼 있는 탈북자들이 더 움츠러들게 됐다"고 우려했다.
일부 탈북자들은 "이번 사건이 외부에 공개됨에 따라 오히려 북한인권법이 시행이 되면서 남한에 있는 탈북자를 분열시키려고 하는 북한의 의도에 말려드는 결과가 초래될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탈북자 김모(49)씨는 "정부가 이번 사건을 탈북자에 대한 지원이나 처우를 대폭 삭감하는 빌미로 이용한다면 앞으로 탈북자들이 정착을 포기하고 고향으로 돌아가겠다며 스스로 북한에 협조하는 사태가 일어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대다수 탈북자들은 가까스로 얻어 낸 해외여행 권리가 다시 축소 또는 폐지되거나 제약을 받는 것은 아니냐며 촉각을 곤두세웠다.
탈북자 지원단체에서 일하는 활동가들 역시 곤혹스럽기는 마찬가지다.
남북사회복지실천 대표를 맡고 있는 구명서 목사는 "탈북자에 대한 민간 차원의 지원이 감소하고 있는 판에 이번 사건으로 탈북자들에 대한 사회적 냉대가 더 심해지지 않을까 우려된다"고 말했다.
도희윤 피랍탈북인권연대 사무총장은 "그간 기획입국 단계에서 불순 세력의 잠입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활동가들이 신중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었지만 최종적으로 이를 가려내는 것은 정부의 몫인 만큼 단체로 책임을 전가해서는 안된다"고 주장했다. (kona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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