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전쟁 참전영웅, 고 박동지 이등상사 '호국의 영웅' 귀환행사
23일 오전 11시, 경기 파주에서 거행...유전자 시료확보로 신원확인
국방부유해발굴감식단(이하 ‘국유단’)은 6.25전사자 발굴유해 중 181번째로 신원이 확인된 ‘고 박동지 이등상사’의 호국의 영웅 귀환행사를 23일, 경기 파주에서 거행한다고 밝혔다.
‘호국의 영웅 귀환행사’는 6·25전쟁 당시 조국을 위해 생명을 바쳤으나 미처 수습되지 못한 채 이름 모를 산야에 잠들어 계신 ‘전사자를 찾아 가족의 품으로 모시는 행사’다.
이 날 오전 11시 경기 파주 동패동 유가족 자택에서 열리는 이번 행사는 코로나19 상황을 고려한 가운데 ‘국가를 위한 헌신에 끝까지 보답’하기 위해서, 방역 지침을 철저히 준수한 가운데 국유단장 주관으로 진행한다.
귀환행사는 국유단장이 유가족 대표에게 고인의 참전과정과 유해발굴 경과 등에 관해 설명하고, 신원확인통지서를 전달한 후 호국영웅 귀환패, 유품 등이 담긴 ‘호국의 얼 함(函)’을 유가족 대표에게 전달하며 위로의 말씀을 전하는 순서로 진행된다.
이번 고인의 신원확인은 유가족의 유전자 시료가 확보되어 있었기에 가능했다.
고인은 국군 제 1사단 12연대 소속으로 6․25 전쟁에 참전하여 수원 북방전투(1950. 7. 3 ∼ 7. 4)중 전사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수원 북방 전투는 당시 시흥지구전투사령부가 한강 방어선에서 철수하여 1950년 7월 4일에 혼성수도사단과 육군 2·7사단이 시흥-안양-군포-수원 일대에서 북한군 제4사단과 제105전차여단의 공격을 방어하고, 육군 1·3사단이 판교-금곡리-풍덕천-수원에서 북한군 제3사단의 공격을 방어했던 전투였다.
시흥지구전투사령부는 수원 북방에서 적을 최대한 지연시키기 위하여 ‘축차방어진지’를 편성하여 방어작전을 완수하기 위해 전력을 다 했으나, 병력과 장비의 열세로 인하여 결국, 7월 4일 하루간의 방어전투 끝에 수원이남으로 물러나고 말았다. 이 과정에서 전투 중에 고인이 전사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고인이 전사한 지 60여 년이 지난 후, 좌측 대퇴골 부위의 일부 유해와 전투화 밑창, 버클, M1탄 등 유품이 후배전우들에게 수습되었다.
고인은 1928년 1월 12일 전라남도 정읍군 산내면 일대에서 4남 4녀 중 장남으로 태어나 스무 살이 되던 해에 배우자를 만나 혼인했다.
그러나 가정을 이룬 기쁨도 잠시, 고인은 아내를 두고 국가를 위해 참전하였고 아내는 고인이 6·25전쟁에 참전하여 전사했다는 가슴아픈 소식을 듣게 되었다.
천주교 신자였던 아내는 혹여나 남편이 돌아올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을 가지고 벽에 전사자의 군복입은 사진을 걸어놓고 매일 바라보고 기도하면서 평생을 살았다. 그러나 오매불망 70여 년을 기다리다가 안타깝게도 92세를 일기로 2019년에 사망했다.
고인의 남동생 박희만(69)씨는 “형님의 유해를 조금 더 빨리 찾았더라면 남편이 돌아오길 기다렸던 형수님의 한을 풀어드릴 수 있었을텐데 너무 슬프고 목이 멘다”면서 눈물과 함께 소회를 밝혔다.
현재 유전자 시료채취에 동참한 유가족은 전사자 기준 약 5만 3천여 명으로, 미수습전사자에 비해 시료가 많이 부족한 실정이다.
유해를 발굴해도 누구의 유해인지 알 수 있는 전사자 위치 정보나단서(인식표 등)가 대부분 없기 때문에, 유가족 시료를 확보해야만 유해와 유가족 유전자 검사를 통하여 신원확인이 가능하다.
유가족이라고 생각되시는 분들은(친․외가 8촌까지) 인근 보건소, 보훈병원 및 요양원, 군 병원에서 유전자 시료채취를 참여할 수 있으며,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 대표전화(1577-5625)로 연락하면 유전자 시료채취 키트를 발송하거나 직접 방문하여 시료를 채취할 수 있다.(konas)
코나스 이숙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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