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趙紫陽이 산 胡錦濤를 쫒아낸다?
이는 중국에서 3일·5일·7일장을 치르는 것이 일반적이고 덩샤오핑(鄧小平) 전 국가 주석은 6일장, 마오쩌둥(毛澤東)은 9일장을 치른 바 있어 10일이 지난 지금까지도 장례가 치뤄지지 않아 이례적인 상황으로 서방세계에 비쳐지고 있다.
|
홍콩 명보와 문회보에 따르면 21일 홍콩에서 열린 추도식에 1만명 이상이 모여들었고, 완리와 차오스 전 全人代 상무위원장 등 최고위직을 지낸 중국원로들이 중국 공산당 중앙에 "자오 전 총서기의 생전 직책을 존중해 고별의식을 치를 것"을 요구했다고 한다.
한편 중국당국은 21일부터 자오(趙) 집 주변에 무장 경찰들을 배치해 놓고 조문객들과 외국기자들의 빈소 접근을 통제하고 있으며, 빈소 앞을 가득 메웠던 추도문도 모두 철거했다.
이런 가운데 베이징 외교소식통은 25일 갑자기 소집된 「당 정치국의 '중국의 정치체제'에 관한 회의」에서 회의를 주재한 후진타오(胡錦濤) 주석이 '자기나라 실정에 맞는 정치제도'를 강조하면서 "1989년의 당 중앙 의견이란 문건이 이미 중요한 지침을 제시했다"고 전했다.
1989년 문건이란 바로 '천안문사태'이후 '정치개혁'문제에 관한 당시 당 중앙의 결의문인데 자오(趙) 전 총서기에 대해서 '1989년 동란시기에 엄중한 과오를 저질렀다'는 당 평가를 담고 있다.
1970년대 덩샤오핑은 집권이후 흑묘백묘(黑猫白猫)를 앞세운 실용주의 노선을 채택하고 자오쯔양과 후야오방(胡耀邦) 양두체제로 경제 개발을 서둘렀다.
필연적인 결과로 경제 발전은 민주화의 요구를 불러왔으며, 1989년 5월부터 베이징대학과 베이징 사범대학을 중심으로 민주화를 촉구하는 대규모 시위가 빈번히 일어났다.
백만명이 넘는 대규모 시위가 계속되자 덩샤오핑은 자오(趙)의 시위대 요구사항 수용건의를 무시하고 '피의 일요일'이라 불리 우는 1989년 6월 4일 천안문 앞에서 탱크를 앞세워 무력으로 시위를 진압하고 수 천명이 공개처형 등으로 목숨을 잃었던 것이 '천안문사태'의 골자이다.
이후 자오쯔양은 실각했고 줄곧 가택연금 중 지난 1월 17일 사망한 것인데 유족들이 '엄중한 과오'라는 기본의 당 평가를 수정해 줄 것을 강력히 요구하고 있고 이에 따라 장례식이 지연되는 것으로 분석된다.
이런 일련의 움직임은 중국 공산당 최고 지도부가 자오(趙) 전 총서기 사망과 장례문제, 그리고 그와 관련한 대처방안을 놓고 얼마나 긴장하고 있는지를 잘 보여 주는 것이어서 죽은 제갈 공명이 산 사마중달을 쫓아냈다는 고사를 상기케 하고 있다.
내주 초에나 거행 될 것으로 예상되는 자오(趙) 전 총서기의 장례식을 사면초가의 입장인 북한의 김정일은 어떠한 심정으로 바라보고 있을는지 궁금하다.(konas)
조철상(재향군인회 안보교수)
- 관련기사보기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