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들이 전쟁을 결정하지만 싸우고 죽는 사람은 젊은이들이다."(미국 제31대 대통령 허버트 후버)

 어떤 사람들에겐 시간이 지나도 결코 받아들일 수 없고 잊혀지지 않는 슬픔이 있다. 바로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이다. 매년 3월 넷째 금요일은 '서해 수호의 날'이다. 2002년 6월 29일 서해 연평도 앞바다에서 북한군 경비정의 기습 포격으로 우리 해군 6명이 전사하고 18명이 부상당했다. 2010년 3월 26일 백령도 근해에서는 북한 해군의 잠수함 공격으로 해군 장병 46명이 목숨을 잃었고, 故 한주호 준위가 구조활동 중 순직했다. 같은 해 11월 23일 북한은 연평도 마을에 해안포와 곡사포 사격을 가해 해병대원 2명과 민간인 2명이 목숨을 잃었다. 정부는 북한이 서해에서 일으킨 도발로 희생된 호국영령들의 넋을 기리고 북한의 무력 도발을 상기하자는 취지로 2016년 '서해수호의 날'을 법정기념일로 제정했다. 올해 제7회 서해수호의 날은 25일이다. 휴전 상황에서 북한군의 공격으로 희생당한 55용사들과 생존장병들, 그리고 유가족들의 멈춰진 시간과 진정한 보훈의 의미를 돌아보고자 한다.

 2002년 제2연평해전에서 참수리357정과 함께 침몰하는 마지막 순간까지 조타키를 놓치 않았던 조타장 故 한상국 상사가 상사 계급으로 추서받고, 6명의 용사가 국립대전현충원에 합동 안장되기까지 무려 13년이 걸렸다. 언론은 2002 한일월드컵 중계에 초점을 맞춰 교전 소식을 단신으로 처리했다. 실종 3일 만에 해군장으로 조촐하게 치러진 합동 영결식에는 대통령도 국방부장관도 참석하지 않았고 당시 묘지 비문에는 '전사' 가 아닌 '연평도 근해에서 사망'이라고 쓰였다. 그 묘비 비문이 '제2연평해전에서 전사'로 바뀌고, '서해교전' 명칭이 '제2연평해전'으로 격상되어 정부 주관 기념행사로 바뀐 것은 2008년이었다. 또한 제2연평해전 당시까지 군인연금법에는 '전사' 규정이 없이 오직 '공무상 순직'만 존재해 유가족들에겐 몇 천만 원에 불과한 보상금만 지급되었다가, 2018년에서야 '제2연평해전 전사자 보상에 관한 특별법 시행령'이 국무회의를 통과하면서 추가 보상금을 받았다. 교전 당시 부상을 입은 고경락·김면주씨는 3차례 퇴짜를 맞은 뒤 교전 7년이 지난 2009년 국가유공자 판정받았다. 반면 2007년 한국전 참전 미군용사들은 메사추세츠 주 워캐스터 시에 미군의 한국전쟁 참전 기념 동상을 세우면서 한상국 중사 등 6명의 전사자 이름을 새긴 벽돌을 바닥에 설치했다.

 2010년 천암함 피격사건 초기에 해군은 어뢰 피격이라고 판단했지만 사건 발생 두 달이 넘도록 해군의 어뢰 피격설은 부정되었고, 일부 언론사들은 하나같이 북한 어뢰설을 부정하고 북한 감싸기에 급급했다. 제2연평해전에서 부상당했던 박경수 중사는 북한의 천안함 피격으로 사망했다. 국방부는 승전을 알린다며 회복되지도 않은 부상자들을 환자복 차림으로 인터뷰에 참석케 해 논란을 일으켰다. 목숨 걸고 싸웠던 생존 장병들은 살아남은 이유로 경계 실패, 패잔병이란 죄인 아닌 죄인 취급을 받기도 했고, 전역 후에도 신체적, 정신적, 경제적 고통에 시달리고 있다. 천안함 피격 당시 척추·무릎 등의 부상을 입어 복합부위통증증후군(CRPS)과 피격 당시 트라우마로 인한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로 고통을 호소해 온 신은총 예비역 하사는 금년 2월에서야 재판정 신체검사 결과 상이등급이 6급2항에서 4급으로 상향됐다. 천안함 부상자들의 국가유공자 등록도 대부분 천안함생존자예비역전우회가 외상후스트레스장애에 시달리며 사회와 단절된 생활을 하던 생존 장병들을 찾아가 진료를 받고 유공자 신청을 하게 한 결과다. 故 문영욱 중사는 직계유족의 신청이 없다는 이유로 국가유공자 등록에서 누락됐다가 2018년에서야 뒤늦게 국가유공자로 결정됐다. 북한군이 2010년 11월 23일 황해남도 옹진반도 개머리진지에서 우리측 옹진군 대연평도를 향해 방사포 등 170여 발을 기습적으로 발포한 사건도 '연평도 포격도발'로 불리다가 11년 만인 2021년 3월에서야 공식명칭을 '연평도 포격전'으로 바꿨다.

 천안함 폭침으로 사망한 민평기 상사의 모친 윤청자 씨는 2010년 6월 유족 보상금으로 받은 1억원짜리 수표를 "정치하는 사람들이 안보만큼은 하나된 목소리를 내달라. 이 돈으로 무기를 사서 적으로부터 군인과 나라를 지켜달라"며 청와대에 전달했다. 국민 성금으로 받은 898만8000원은 해군 2함대에 전달했다. 윤씨는 "북한을 공격하라는 게 아니라 죽는 아이가 또 생기지 않게 해달라는 뜻"이라고 말했다. 해군은 이 성금을 포함해 5억 원을 들여 K-6 기관총 18정을 구입해 2함대 초계함 9척에 2정씩 장착했다. 2011년 3월 25일 경기 평택의 해군 부두에 정박한 1200t급 영주함에서 열린 기증식에서 윤씨는 K-6 기관총을 부여잡고 오열했다.

 2019년 6월 4일, 청와대는 국가유공자 및 보훈가족 초청 오찬에 천안함 유족들을 초청하면서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찍은 사진을 담은 팜플렛을 행사에서 배부해 비판을 받았다. 국방부는 2020년 3월 26일 천안함 피격 10주기를 맞아 평택 2함대에서 열린 46용사 추모행사 촬영 영상을 언론에 제공하지 않기로 했다가 기자들이 항의하자 영상을 제공했다. 2020년 현충일추념식에서는 매년 참석하던 서해수호 관련 유가족들을 초청 명단에서 제외하는 대신 코로나19 희생자 유가족을 초청했다가 논란이 되자 하루 전에서야 참석해 달라고 요청해 빈축을 샀다. 2020년 12월 대통령직속 군사망사고진상규명위원회는 천안함 피격 원인에 대한 재조사에 착수하기로 결정하고, 국방부는 조사 사실을 통보받고도 3개월 넘게 당사자인 유가족이나 생존 장병들에게 알리지 않아 파장이 일었다. 제2연평해전이 일어난지 20년, 북한의 천안함 폭침 사건 발생 13년이 지난 지금도 그 날의 상처는 아물지 않고 있다.

 유족들과 생존 장병들을 좌절케 하는 것은 '서해 수호의 날' 행사가 정쟁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희생자들을 추념하고 기억하는 날이 되어야 할 이 행사에서 생존장병들과 유족들은 들러리처럼 구석자리에 앉아야 했고 헌화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침몰한 천안함은 2023년 진수하는 신형호위함으로 부활할 예정이지만 전사자들은 말이 없고, 유족들의 시간은 아직도 사건이 발생한 그 시간대에 머물러 있다. 한국의 경제발전에 힘입어 보훈정책은 괄목할만한 발전을 이루었으나 국가를 위해 희생한 이들에 대한 존중과 예우에 부족함이 있어서는 안된다. 더불어 보훈은 국가의 책임을 다하는 것 외에도 국민들 마음속에 보훈의식이 자리잡는 건강한 보훈문화를 만드는 것도 중요하다. 이것은 강한 국가의 토대가 된다. 최근 북한은 북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과 장거리로켓 개발의 산실인 동창리 서해위성발사장을 재건하고 있고, 한국의 대선 결과에 대해 원색적인 비난을 쏟고 있다. 지금 우리가 누리는 자유와 평화의 익숙함에 속아 평화를 존재하게 해준 호국영령들의 고마움을 잊어서는 안된다. 누군가의 아들이자, 남편, 아버지, 형제였던 호국영웅 55인과 생존 장병들의 희생을 영원히 기억하고 고귀한 뜻이 절대 헛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살아 남은 우리의 의무요 책임이다.(konas)

코나스 최경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