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리뼈 일부만 발굴됐던 6·25전사자, 고 김학수 이병 신원확인
외증손자의 6·25 참전 증언이 신원확인의 결정적 역할
지난 2008년 강원도 인제군 서화면에서 발굴된 6·25전사자 유해의 신원이 고 김학수 이병으로 확인됐다.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이하 국유단)은 2008년 9월 25일 국유단과 육군 12사단 장병들의 노력으로 발굴된 6·25전사자 유해의 신원이 14년 만에 고 김학수 이병으로 확인되어 가족의 품으로 돌아갈 수 있게 되었다고 25일 밝혔다.
국유단에 따르면 2008년 발굴 당시 고인은 신체의 일부분만 확인된 부분유해의 형태로 발굴되었다. 고인은 6·25전쟁 당시 교통호로 사용된 것으로 추정되는 지역을 12사단 장병들이 기초발굴하던 중 정강이뼈 일부가 발견되면서 전문 발굴병력이 투입되었고, 주변을 확장하여 발굴한 결과 골반을 포함한 다리뼈 일부를 발굴하였다.
고인의 유해 주변에서 전투화 밑창과 우의 조각이 발굴되었지만, 그러한 유품만으로는 신원을 특정할 수 없었다고 국유단은 전했다.
고인의 신원확인은 2019년 군 복무 중이던 고인의 외증손자가 유해발굴사업을 접하게 되면서 외증조부의 6·25전쟁 참전 사실을 떠올렸고, 이러한 사실을 바탕으로 자신의 아버지(고인의 외손자)에게 유전자 시료 채취를 권유하면서 시작되었다.
국유단은 고인 외손자의 유전자분석을 통해 가족관계일 것으로 추정되는 유해를 특정할 수 있었고, 정확한 검사를 위해 고인의 딸인 김정순 씨의 유전자 시료를 채취하여 두 번의 유전자분석 끝에 고인과 부녀관계임을 확인하였다.
1925년 5월 14일, 충북 진천군에서 6남 3녀 중 막내로 태어난 고인은 고 이소저 씨과 결혼하여 슬하에 1녀를 두었으며, 외동딸이 3살이 되던 1951년 3월 16일 입대했다. 고인은 입대한 그 해 서화리 전투(1951.6.4.~17.)에서 전사했다.
서화리 전투는 유엔군사령부가 캔사스선을 방어하기 위한 핵심지역 점령과정에서 발생한 전투이며, 고인이 소속되었던 국군 제5사단은 ‘파일드라이브 작전’의 일환으로 원통 북방의 서화리 일대를 공격하게 되었다.
1951년 6월 4일부터 17일까지 14일간 국군 제5사단은 서화축선의 요충지를 점령하면서 적을 격파하는 등 부여된 임무를 완수하였지만, 고인은 해당 전투에서 장렬히 전사하였다.
고인의 배우자 이소저씨도 1959년 31세의 나이로 작고했다.
고인의 외동딸 김정순 씨는 “아버지가 전사 후 손·발톱이 든 네모난 상자가 태극기로 둘러싸여 집으로 돌아왔다고 들었다”면서 “어머니가 어린 나를 재울 때 아버지를 눈물로 그리워하며 부르시던 ‘비 내리는 고모령’의 노랫가락이 아버지와 어머니, 나를 교감시키는 매개체”라며 고인에 대한 그리움을 표했다.
이번에 신원이 확인된 김학수 이병을 포함해 2000년 유해발굴사업이 시작된 이후 신원이 확인된 전사자는 총 190명이다.
국유단은 고 김학수 이병의 ‘호국의 영웅 귀환행사’를 오는 28일 경기 오산시에 위치한 외동딸 김정순 씨의 자택에서 고인의 참전 과정과 유해발굴 경과를 설명하고, ‘호국의 얼 함’을 전달하는 내용으로 진행한다.
국유단은 “이번 신원확인은 외증조부의 6·25전쟁 참전 사실을 어렴풋이 기억하고, 이를 가족들과 의논한 군 장병으로부터 시작되었다”며 “유해발굴사업은 6·25전쟁에 참전한 친인척이 계신지 여부를 확인하는 것으로도 충분히 참여 가능한 사업”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6·25전쟁에 참전했으나 생사를 확인하지 못한 친인척이 있으면 국유단 대표번호 1577-5625(오! 6·25)로 연락하거나 보건소, 보훈병원, 군병원 등에서 실시하는 유전자 시료채취에 적극적인 참여를 부탁드린다”고 당부했다.
6·25전쟁 국군전사자 및 경찰, 학도병, UN군 등의 유해소재 제보시 최대 70만원, 유해의 신원확인시 최대 1,000만원의 포상금이 지급된다.(konas)
코나스 이숙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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